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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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텔레비전에서 해준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이 잊히질 않았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옥상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걸 보는 한 남자의 쓸쓸한 미소. 영화는 내내 좋았다. 죄수들이 맥주 마시는 걸 보면서 웃던 남자는 벽을 뚫어서 탈옥에 성공했다. 속도감 있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했다.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 따로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훗날 좋아하게 될 작가 스티븐 킹이 썼다는 걸 알고는 더 좋아져 버렸다.

영화의 원작 소설이 담긴 스티븐 킹의 사계 시리즈 중 봄과 여름의 이야기가 담긴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을 읽었다. 읽는 동안 시간은 느릿느릿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와 있었다. 여름에는 봄의 일이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 법이다. 앤디 듀프레인의 기막힌 일생을 관찰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으며 봄을, 어렴풋이 따뜻하고 포근했던 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희망의 봄'이라는 부제가 붙은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은 좋은 소설이다. 왜 좋은지를 말하고 싶은데 그게 잘 될까 의구심이 든다.

아내와 정부를 죽였다는 혐의로 유죄를 살게 된 은행가 앤디의 기나긴 집념의 시간은 우리에게 과연 희망이란 것이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들다가도 결국 희망은 있다는 희망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널린 게 시간인 감옥 안에서 우연히 벽을 긁다가 바스러지는 벽의 형태를 파악한 뒤 조금씩 천천히 은밀하게 벽을 뚫어 벽으로 사라지는 남자. 인생은 희망 아니면 포기를 모르는 집착이 우리를 끌고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은.

두 번째 소설인 「우등생」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 인물들의 이면을 낱낱이 파헤치는 소설이다. '타락의 여름'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 속의 인물인 토드, 듀샌더는 죄책감 따위는 갖지 않는다. 과거에 나치에 복무했던 듀샌더의 신원을 알아낸 열세 살 소년 토드의 기행은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연민과 동정을 거둘 수밖에 없게 만든다. 소년과 듀샌더의 타락은 멈출 수 있을까. 두 편의 소설에는 킹의 전매특허인 호러, 스릴러, 서스펜스, 기이함이 없다. 대신 소설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환하게 하거나 어둡게 하는 감정의 굴곡을 느끼게 해준다.

앤디의 이야기에서 희망을. 토드와 듀샌더의 행동에서 절망을.

혹은 완전히 타락할 수 없게 최소한의 희망을 두 개의 이야기 안에 적절하게 버무려 놓았다. 어둠과 가까이하는 자는 그것과 닮게 된다는 교훈도 들려준다. 봄에는 삶의 희망을 노래하다가 여름에는 점점 변해가는 타락해가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는 인간의 시간을 소설로써 형상해 놓았다. 내가 가진 능력이라곤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버텨내는 것인데 스티븐 킹은 지금보다 좀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해 준다. 놀라운 이야기들을 잔뜩 안겨주며.

스티븐 킹이 늘 말하는 것처럼 소설은 이야기로 가득해야 하고 그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있는 한 우리는 봄과 여름을 가을과 겨울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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