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이형의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에는 총 열한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나는 전반부의 이야기가 훨씬 좋았다. 앞쪽에 실린 다섯 개의 소설을 읽으며 나의 작은 마음과 편협함과 무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소설의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보다 좋았던 부분과 오래 눈길이 머물렀던 문장을 옮기다 보면 새벽의 시간은 별 탈 없이 흘러갈 것 같다.

소설을 읽기에 세계는 늘 논쟁 중이고 뜨겁고 첨예하다. 소설이 아닌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십상이다. 싸워야 하고 싸워서 지켜야 하며 지키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도 이 작은 책 안에는 우리가 놓쳐 버리고 지나가 버리면 안 되는 '마음'이 있다. 집회에 나가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많은 엄마들이 온라인에서 만든 모임을 그린 「작은마음동호회」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마음이 작다.' 마음의 크기와 넓이를 가늠할 수 있을까.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함부로 꺼내 보이기 힘든 마음.

마음을 내 보이면 쉽게 상처받을까 봐 꼭꼭 숨기곤 했다. 그러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는 뭉클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쓰는 나 자신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승혜와 미오」는 여성 커플의 불안한 현재에 관한 소설이다. 소수자와 다수자로 나눌 수밖에 없는 이분법의 서글픔을 그렸다. 「마흔셋」의 이야기 역시 소수자로 불리는 인물의 풍경을 보여준다.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가 되려는 동생의 몸을 보며 죽은 엄마에게 이별을 고한다.

「피클」은 작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마음에 대한 소설이다. 사내 성폭력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그 일이 타자가 아닌 나라는 주체를 주변으로 일어날 때 취해야 할 태도를 집요하게 묻는다. 「이웃의 선한 사람」에서는 선의로서 세계를 대할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전반부의 이야기에서 윤이형은 한국 사회가 가지는 편견과 혐오, 소수를 향한 분노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후반부의 이야기는 이곳과는 다른 세계에서 펼쳐진다.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각각의 소설은 우리가 사는 논쟁과 경쟁으로 가득한 여기를 그린다. 작은 마음들이 모인 소설을 읽으며 큰마음에 대해 상상한다.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도록 잘못을 덮고 용서를 말할 수 있는 마음이면 좋겠다. 『작은마음동호회』는 상처받은 마음이 있다면 숨기지 말라고 말하는 책이다. 울고 싶은 땐 울고 화를 내야 할 때는 화를 낼 수 있는 우리를 만들어 가자고 하는 것이다.

오늘 나의 마음은 어땠나를 물어오는 소설이 있어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겠다. 부서진 마음을 모아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는 일. 『작은마음동호회』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웃음을 선물할게 창비청소년문학 91
김이설 외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웃음이 많은 사람이다. 별일 아닌 일에도 웃고 별일이어서 웃고 별일일까 의심하면서 웃는다. 못생겼으니 웃기라도 하자. 설마 웃는 얼굴에 침 뱉을까. 침을 뱉으면 어때. 그래도 웃어버리지 하며 웃는다. 사회에 나와보니 의외로 사람들은 많이 웃지 않았다. 무표정 가면이라도 쓴 것처럼. 원래 안 웃는 건가. 사회에 나오니 웃지 않게 된 건가.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좀 웃지. 아닌가. 웃으면 복이 오는 게 아니라 복이 와서 웃는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까지 내가 버티며 살아온 이유 중에 하나는 끊임없이 웃었기 때문이다.

웃음을 주제로 열 편의 소설이 담겨 있는 『웃음을 선물할게』에서 과거의 나를 발견한다. 박상영의 「망나뇽의 눈물」에는 나와 비슷한 아이가 나온다. 포켓몬 빵을 먹으며 스티커를 모으고 자신 없는 외모를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아이. 망나뇽 스티커만 일찍 나왔어도 살이 찌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며 단 한 명의 친구를 찾고 싶어 했던 아이. 『웃음을 선물할게』에는 웃고 싶은 아이, 웃을 수 없는 아이, 웃고 싶지만 웃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이 나온다.

소설가들은 자신만의 웃음 철학을 소설 안에 풀어 놓는다. 좋아하는 아이를 따라 춤을 추며 그 아이가 웃어 주기를 바라고(「저스트 댄스」) 부모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이 순간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배꼽」). 보건실에서 만나 친구가 된 순간의 기억과(「보건실의 화성인」) 성적보다 중요한 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간다(「마음을 함께해 준다면」).

누구나 목덜미에 야옹야옹 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씩은 둘러메고 있지 않나고 말하며(「여름의 고양이」) 젊은 사자의 일탈을 사랑스럽게 보아준다(「정글이 빙글빙글」). 자퇴하기 직전 숙려 기간에 웃기는 의자를 만들며 높은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기도 한다(「웃기는 의자들」). '피해자 다움'을 요구하는 폭력에 맞서 연대하며 살아가고(「웃어도 괜찮아」) 선생님과 우리는 다르지 않으며 다들 웃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끝」).

열 편의 이야기 안에는 각기 다른 열 개의 웃음이 있다. 청소년 소설로 그 안에는 아이들을 대하는 사랑스러움과 다정함이 듬뿍 담겨 있다. 공부 잘하는 방법이나 싸움에서 이기는 법이 아닌 웃음을 주겠다는 세상의 어른들의 따뜻함이 『웃음을 선물할게』 안에 있다. 알고 보면 기막힌 사실 하나. 아이들이 더 웃지 않는다. 피곤과 스트레스에 찌든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 웃음 치료사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 웃음 치료사 열 명이 모여 만든 책이 있다. 할머니가 하는 슈퍼에서 라면을 먹고 광화문 천막 농성에 가져갈 케이크를 사는 아이들을 위한. 나는 다행히 책을 읽으며 자랄 수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세상을 긍정할 용기를 얻었다. 욕을 해도 인상을 써도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남들 눈에 바보 같고 만만하게 보여도 웃었다. 그 힘을 책에서 받았다. 『웃음을 선물할게』를 읽어도 웃음이 안 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읽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얘들아 웃자. 그리고 읽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일본산고(日本散考)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식민지 시대 11년간을 서울에서 살았고 진짜 콜론(식민자)의 아들이었다고 말하는 다나카 씨는 그 시절에 대한 짙은 향수를 토로하고 있는데, 특히 독립운동가, 그 시대의 독립정신에 대해서는 감탄과 외경의 염(念)까지 느꼈다고 했는데, 일본 특유의 그런 감상은 상당히 메스껍다.
그는 말했다. 그 시절이 좋았다고, 그 시절의 민족정신은 고귀하고 긴장되고 아름다웠다고. 한데 지금은 뭐냐, 그렇게 그는 말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그 시절의 비극을 가슴 아프게 아름다운 것으로 회상한다. 그러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은 것은 "천만의 말씀!"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현재 반일(反日) 하는 것이며,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반일하는 것이며, 다나카 씨 같은 일본인이 있기 때문에 반일하는 것이다.
(박경리, 『일본산고』中에서)

박경리의 『일본산고』의 저 부분이 요즘을 대변하는 시대의 말이다. 왜 우리가 독립운동은 하지 못해도 불매 운동을 해야 하는지 박경리는 철저하게 가르쳐 준다. 강단 있는 언어로 일본을 뼈 때리는 『일본산고』에는 밑줄을 긋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맞아 맞아하며 읽어야 할 문장이 너무나 많다. 나는 멍청이였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나는 이제 멍청이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멍청이었음을 알고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현실에 대해. 소외와 불의에 대해. 알지 못했고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니다. 조금씩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뉴스를 챙겨 보기 시작했으며 잘 이해가 안 되더라도 문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책도 읽고 있다. 박경리의 『일본산고』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이 되기까지 제국주의 역사에서 살아간 작가의 일본론이다. 박경리는 일제 강점기를 온몸으로 겪었으며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견해를 읽으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지금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먼저 일본 역사의 허상으로 시작한다. 신국(神國)이라 칭하면서 가지는 일본이라는 정체성의 오류를 밝혀낸다. 신(神)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일본이 원폭의 피해자임을 강조하면서 은근슬쩍 전쟁과 식민의 잘못을 가리려는 가해자의 만행까지도. 소설가답게 일본 문학이 가지는 탐미주의와 죽음의 대한 선망 역시 엽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섬나라라는 지형학적 위치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 것이라 해도 그들은 잘못을 감추고 피해 사실만 드러내는 왜곡과 반성을 모르는 민족이라고 말한다.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 날아든 한 편의 예언서인 『일본산고』는 한국인이 가져야 할 태도를 일러준다. 다나카가 쓴 "한국인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라고 쓴 편지를 읽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그 편지에 적힌 말이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 편지를 받고 박경리는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라는 제목으로 구구절절 옳은 소리로 일관하는 답장을 날린다. 이쯤 되면 그가 살아 있어서 쓰려고 했던 '일본론'이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반일하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대신했을 것 같은데. 무척이나 아쉽다. 안타깝다.

다나카 씨는 일본에 유학 온 각국 학생들의 예비 코스인 일어학교 교사로부터 들은 얘기부터 풀어놨다. 한국인이 싫다는 내용의 중국인 학생 작문에 관한 것인데 그 입김이 대단히 나약했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너를 그렇게 생각지 않는데 아무개가 너를 싫어하더라" 투가 그랬다. 이것은 고자질이다.
'내가 싫다 하기는 좀 거북하고 아무개가 싫다더라 해야지.'

몇 해 전의 일이다. 일본의 어느 잡지사 편집장이 내 집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면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박경리, 『일본산고』中에서)

나도 싫은데 내가 싫다고 하는 것은 그러니 누가 너 싫다더라 하는 식의 이간질로 역사 왜곡과 반성 없는 일본의 야비한 속성을 박경리는 간파한다. 지식인이라고 한 자의 역사 인식이 저 정도인데 역사 교육을 받지 않고 제국주의의 화려한 시절만 학습한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더할 것인가. 일본을 이웃으로 둔 불운함이 우리에게 있을 뿐이었다. 위안부 문제에 앞장선 활동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일본은 사과할 기회를 스스로 날리고 있는 것이라고. 박경리는 말한다.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으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 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반일과 친일은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책을 읽은 자와 읽지 않은 자의 차이로 규정한다. 역사에 빚을 지지 않은 세대. 역사에 객관을 유지한 채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세대. 우리. 박경리는 일본 문학지의 편집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자신을 "철두철미 반일(反日) 작가다"라고 소개했다. 그 말을 듣고 그들은 놀랐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그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용서라는 거룩한 마음으로 일본을 대해야 한다고 뻔뻔하게 여기는 마음. 용서라는 것은 사과를 하고 반성해야지 따라오는 수순 아니던가. 『일본산고』는 지켜볼 것이다. 이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앤서니 호로비츠의 『맥파이 살인 사건』은 대단한 소설이다. 올해 읽은(아직 올해가 가진 않았지만) 추리 소설 중 최고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전자책으로 읽어 종이책의 압도적인 무게를 느끼지 않았다. 내가 가진 리더기 그랑데로 보니 전체 페이지 수는 738쪽이다.(폰트와 글씨 크기, 상하좌우 여백 비율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놀랐는가. 놀라지 마시라 『맥파이 살인 사건』은 시작부터 끝까지 독자와 추리 게임을 하느라 페이지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게 만든다. 방대한 페이지수는 잊어 버리는 것이다.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온 작가란 말인가, 앤서니 호로비츠는.

그는 영국 태생으로 아서 코넌 도일 재단에서 처음 출간하는 공식 셜록 홈즈 작가로 지정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영국이 어떤 나라인가. 고전 추리 소설의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보유한 나라 아닌가. 『맥파이 살인 사건』은 영국의 고전 추리 소설 문법을 그대로 따라간다. 액자 소설 방식으로 외화와 내화의 이야기가 맞물려 돌아간다. 문장은 탄탄하고 비유는 최고급만 쓴다. 사건의 진상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범인을 찾는 구성 방식은 치밀하다.

클로버리프 북스 출판사의 편집자인 수전은 주말을 앨런 콘웨이가 쓴 원고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읽는다. 장면이 바뀌면서 『맥파이 살인 사건』의 무대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색스비온에이번의 한 공동묘지로 말이다. 얼마 전 매그너스 파이경의 가정부로 일하는 메리가 죽었다. 그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메리는 같은 집에서 일하는 브렌트에 의해 발견되었다. 청소를 하다 전선에 발이 걸려 계단을 구른 것이다. 사고사로 처리되지만 그녀의 아들 로버트가 의심을 받는다.

로버트의 약혼녀 조이는 아티쿠스 퓐트라는 영국 최고의 탐정을 찾아가 약혼자가 받는 의심을 벗겨줄 것을 부탁한다. 퓐트는 뇌종양에 걸렸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다. 얼마 후 같은 마을에서 이번에는 메리의 고용주 매그너스가 목이 잘려 죽는다. 퓐트는 탐정의 직감으로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수사에 착수한다. 그는 마을로 가서 메리와 매그너스 주변을 탐문한다.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범인을 알아낸다.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려는 순간 소설이 갑자기 끝나버렸다.

결말이 사라진 것이다. 『맥파이 살인 사건』의 바깥에서 소설을 읽던 수전은 황당해하며 월요일 아침이 되기를 기다린다. 경악스러운 소식을 듣게 된다. 『맥파이 살인 사건』을 쓴 작가 앨런 콘웨이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수전은 다년간의 추리 소설 편집자의 감으로 앨런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다. 소설은 두 가지 사건을 뭉쳐 놨다. 먼저 앨런이 쓴 『맥파이 살인 사건』 속 메리와 매그너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맥파이 살인 사건』을 빠져나오면 만나는 앨런의 자살 이야기.

현실과 소설이 만나면서 독자를 점점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몰아간다. 소설 속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범인과 현실 속 앨런의 죽음의 배후를 알아내야 한다. 나는 추리에 실패했다. 곳곳에 작가가 숨겨 놓은 단서를 하나로 모으지 못했다. 눈 밝은 독자라면 두 개의 이야기 안에 숨겨진 조각을 맞추어 가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과연 그럴까?) 소설 『맥파이 살인 사건』은 새롭고 놀랍다는 수식어를 쓸 수밖에 없다. 마치 독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전개로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

탐정 소설을 쓰는 작가가 남긴 마지막 소설. 결말이 사라졌고 작가는 자살을 했다. 그가 쓴 소설과 비슷하게 작가 주변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힘을 모으시라.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앤서니 호로비츠는 고전적인 수법과 현대적인 기법으로 재미있는 추리 소설을 써냈다.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며.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읽지 않은 당신은 좋겠다. 곧 재미있는 시간이 펼쳐질 테니까.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읽은 당신도 좋겠다. 방금 막 재미있는 시간을 경험했으니까. 『맥파이 살인 사건』은 우리에게 추리 소설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을 안겨 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관문에 잠금장치를 달아야 되는 거 아닐까. 『새벽의 방문자들』을 읽고 든 생각이다. 여섯 편의 소설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묶인 책을 읽으며 겨우 든 생각이란 나의 안위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장류진의 소설 「새벽의 방문자들」을 시작으로 여기 미약하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담긴 소설이 있다. 화자는 달라도 그들이 말하고자 한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여기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은 누군가에게 상처로 돌아간다고.

「새벽의 방문자들」은 포털 사이트에 달리는 악성 댓글을 지우는 일을 하는 '여자'의 하우스 호러를 그린다. 새로 이사 간 오피스텔에서 새벽에 뜻밖의 방문자를 맞이한다. 택배가 올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추측과 가정을 통해 알아 본 그들은 성매수자들이었다. 처음에 여자는 놀라지만 이내 그들의 얼굴을 찍어 프린트해 놓는다. 자신의 집과 비슷한 다른 오피스텔과 헛갈려 잘못 찾아온 것으로 생각하니 그럴 수 있는 행동이었다. 여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같은 호수의 맞은편 오피스텔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은?

하유지의 「룰루와 랄라」는 프리랜서 여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남자의 현실을 웃프게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같은 동에 사는 여자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 엄마에게 룰라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한다. 그들과 아이 엄마가 헤쳐 나가야 할 현실에는 반말과 하대로 일삼는 개념을 밥 말아 먹은 사람들이 없기를 바란다. 정지향의 「베이비 그루피」는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다가 밴드의 한 멤버와 사귀는 고등학생이 나온다. 그루피라는 단어를 소설에서 처음 알았다. 소설은 이렇듯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데리고 가곤 한다.

「예의 바른 악당」에서 박민정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체를 밝힌다. 연대라는 이름으로 베푸는 폭력에 대해 과감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다들 예의 바르게 악당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는 것이다. 김현의 「유미의 기분」은 스쿨 미투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때는 몰랐다. 자의식도 아직 생기기 전이었으니까.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우리를 우리로 살지 못하게 했음을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김현진의 「누구세요?」는 낯설지만 익숙한 서사의 구조를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 지윤이 자신을 낯설게 여기게 되는 과정이 현실적이다.

한 여자 한 남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새벽의 방문자들』에 담겨 있다. 낯선 누군가가 집까지 따라와 문을 두드리고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무섭게 눌러대는 게 소설의 일만은 아니었음을 우리는 얼마 전에 보지 않았는가. 어머니뻘 되는 사람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며 업무 지시를 하는 상황은 왜 이토록 또 익숙한지(「룰루와 랄라」). 어리다고 너희들이 뭘 알겠느냐며 수행평가 점수를 인질로 삼아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며 배움을 행하는 자들의 뻔뻔함까지(「유미의 기분」).

더치페이는 당연한 것 아니냐며 데이트 통장에 넣을 돈을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헤어지면서 돌려달라고 하니 증거가 없고 너의 잘못으로 헤어졌으니 이건 위자료라며 경찰에 신고해 보라고 말하는 전 남자친구(「누구세요?)」은 소설에서만 과장되게 그린 인물일까. 평등과 정의 구현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애인을 흙수저라고 깔보는 사람까지(「예의 바른 악당」). 모두 소설의 일로 치부하기엔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다. 집에 들어갔는데 침대 밑에 귀신이 있는 게 무섭겠는가 사람이 있는 게 무섭겠는가라는 질문에서 주저 없이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귀신 보다 무서운 사람에 대한 공포.

낯선 자의 방문은 소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어서 잠깐 공포의 기분을 맛보는 것이면 좋겠다. 『새벽의 방문자들』에 담긴 이야기가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지지 않아 슬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