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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ㅣ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평점 :
현관문에 잠금장치를 달아야 되는 거 아닐까. 『새벽의 방문자들』을 읽고 든 생각이다. 여섯 편의 소설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묶인 책을 읽으며 겨우 든 생각이란 나의 안위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장류진의 소설 「새벽의 방문자들」을 시작으로 여기 미약하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담긴 소설이 있다. 화자는 달라도 그들이 말하고자 한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여기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은 누군가에게 상처로 돌아간다고.
「새벽의 방문자들」은 포털 사이트에 달리는 악성 댓글을 지우는 일을 하는 '여자'의 하우스 호러를 그린다. 새로 이사 간 오피스텔에서 새벽에 뜻밖의 방문자를 맞이한다. 택배가 올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추측과 가정을 통해 알아 본 그들은 성매수자들이었다. 처음에 여자는 놀라지만 이내 그들의 얼굴을 찍어 프린트해 놓는다. 자신의 집과 비슷한 다른 오피스텔과 헛갈려 잘못 찾아온 것으로 생각하니 그럴 수 있는 행동이었다. 여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같은 호수의 맞은편 오피스텔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은?
하유지의 「룰루와 랄라」는 프리랜서 여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남자의 현실을 웃프게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같은 동에 사는 여자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 엄마에게 룰라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한다. 그들과 아이 엄마가 헤쳐 나가야 할 현실에는 반말과 하대로 일삼는 개념을 밥 말아 먹은 사람들이 없기를 바란다. 정지향의 「베이비 그루피」는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다가 밴드의 한 멤버와 사귀는 고등학생이 나온다. 그루피라는 단어를 소설에서 처음 알았다. 소설은 이렇듯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데리고 가곤 한다.
「예의 바른 악당」에서 박민정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체를 밝힌다. 연대라는 이름으로 베푸는 폭력에 대해 과감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다들 예의 바르게 악당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는 것이다. 김현의 「유미의 기분」은 스쿨 미투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때는 몰랐다. 자의식도 아직 생기기 전이었으니까.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우리를 우리로 살지 못하게 했음을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김현진의 「누구세요?」는 낯설지만 익숙한 서사의 구조를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 지윤이 자신을 낯설게 여기게 되는 과정이 현실적이다.
한 여자 한 남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새벽의 방문자들』에 담겨 있다. 낯선 누군가가 집까지 따라와 문을 두드리고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무섭게 눌러대는 게 소설의 일만은 아니었음을 우리는 얼마 전에 보지 않았는가. 어머니뻘 되는 사람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며 업무 지시를 하는 상황은 왜 이토록 또 익숙한지(「룰루와 랄라」). 어리다고 너희들이 뭘 알겠느냐며 수행평가 점수를 인질로 삼아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며 배움을 행하는 자들의 뻔뻔함까지(「유미의 기분」).
더치페이는 당연한 것 아니냐며 데이트 통장에 넣을 돈을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헤어지면서 돌려달라고 하니 증거가 없고 너의 잘못으로 헤어졌으니 이건 위자료라며 경찰에 신고해 보라고 말하는 전 남자친구(「누구세요?)」은 소설에서만 과장되게 그린 인물일까. 평등과 정의 구현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애인을 흙수저라고 깔보는 사람까지(「예의 바른 악당」). 모두 소설의 일로 치부하기엔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다. 집에 들어갔는데 침대 밑에 귀신이 있는 게 무섭겠는가 사람이 있는 게 무섭겠는가라는 질문에서 주저 없이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귀신 보다 무서운 사람에 대한 공포.
낯선 자의 방문은 소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어서 잠깐 공포의 기분을 맛보는 것이면 좋겠다. 『새벽의 방문자들』에 담긴 이야기가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지지 않아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