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의 유령들 -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황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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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 년 뒤 어머니가 죽었다. 췌장암이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지 육 개월 만에 죽었다. 그로부터 삼 년 뒤 징의 아버지도 죽었다. 간암이었다. 암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고, 오수 삼촌은 언젠가 곱창을 씹으며 말했다. 농담으로 듣고 피식 웃자 오수 삼촌은 불판 위를 서성이던 젓가락을 테이블에 반듯이 내려놓은 뒤 정색한 채 목소리를 잔뜩 깔고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어떤 시절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죽는다."
(황여정, 『알제리의 유령들』)

농담에는 소질이 없다.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사람이기에 가급적 웃기만 한다. 누군가를 웃기려고 하다가 종종 나 자신이 우스워진 적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는 쓸데없는 소리도 지껄이기도 했는데. 사회에 나와서는 그런 게 허용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안 순간부터는 입을 다문다. 좌중을 휘어잡고 중심에 서기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음식만 축내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황여정의 데뷔 장편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은 사소한 농담 하나로 생긴 일을 그린다. 기분이 좋아져서. 술자리에서 시작한 이야기 하나가 점점 커지고 부풀려진다. 사실을 그리다 보니 허구가 필요했다. 그럴듯한 허구. 네 명의 친구는 연극 대사를 맞춰가며 희곡을 쓴다. 1980년도에 금기시되었던 마르크스의 일화를 빌려온다. 자신들이 희곡을 창작해 놓고 마르크스가 유일하게 쓴 희곡으로 몰아가자, 이상한 농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혁명과 변혁을 꾀했지만 젊은이들은 쉽게 좌절했고 무기력해졌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농담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희곡을 만들어 내어 웃어 보자는 것이었다. 단순한 거짓말이었지만 그럴듯한 허구를 갖다 붙이자 진실이 되어 버렸다. 『알제리의 유령들』에는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이 등장한다. 연극을 사랑한 네 명의 젊은이가 각자의 언어로 만들어낸 희곡.

그렇지만 『알제리의 유령들』을 쓴 사람에는 그들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 붙는다. 마르크스가 쓴 유일한 희곡이라는 이야기로 주변 지인들에게 퍼져 나간다. 네 명 중에 두 명이 속한 독서회 모임이 발각되면서 『알제리의 유령들』은 문제가 되었다. 그 희곡은 마르크스가 쓴 게 아니라고 말해도 수사관은 믿지 않았다. 고문을 당했고 시간이 지나 그 사건은 무죄가 되었지만 네 젊은이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알제리의 유령들』은 엄혹한 8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이후를 그린다. 책을 읽고 연극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꿈은 좌절되었고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부모 세대의 아픔과 그것을 목격한 자식의 현재를 네 개의 이야기로 그려낸다. 각각의 이야기를 모으다 보면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알제리의 유령들』을 쓴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농담 하나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과거를 부정하기 위해 종이를 모두 불태운다. 그들은 몰랐다. 웃자고 꾸민 농담이 인생을 절벽 아래로 밀어 넣을 줄은. 80년대는 그런 시절이었다. 웃고 떠들 수 없었던 시절. 어디로 가야 하고 왜 이곳에 모였는지 끊임없이 의문해야 하는 시절. 황여정은 이상하고 낯선 방식으로 가장 진부한 주제를 소설로서 펼쳐 놓는다.

소설 속 오수는 율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시절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죽는다.' 어떤 시절이라고 한정했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현재는 안다. 어떤 시절은 모든 시절이 되어 버렸다. 그걸 알고도 살아간다. 떠난 이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기 위해 도망친다. 『알제리의 유령들』은 삶에 존재하는 거짓과 진실의 행방을 찾기 위한 황여정의 여정이 시작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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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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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M. 댄포스의 『사라지지 않는 여름』 속 주인공 캐머런은 일단 인형의 집을 꾸미는 것으로 상실의 상처를 달랜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는 순간 캐머런은 여자 친구인 아이린과 키스를 하고 물건을 훔치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후에 자신의 그런 행동 때문에 자책에 휩싸인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인형의 집을 꾸미고 영화 보기에 빠진다. 후에 '하나님의 약속'에서 만난 선생 리디아는 그런 중독이 캐머런 자신을 동성매력장애로 이끌고 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 말은 리디아가 되지도 않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지껄이는 것이라고 캐머런은 나중에야 깨닫는다.

10대 소녀의 이야기. 덧붙이면 레즈비언 10대 소녀의 이야기.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이 남자아이의 내면을 조명하고 이후의 시간을 희망했다면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10대 소녀가 알을 깨고 자신이 정립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이다. 책이 출간되고 아이들이 읽기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금서 취급을 당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캐머런은 루스 이모와 할머니와 함께 산다. 캐머런은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동성애에 눈을 뜬다. 아이린, 린지, 콜리에 이르기까지. 캐머런은 이끌리고 따라갈 뿐이었다. 불안하고 취약한 내면을 가진 캐머런이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시도가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 담겨 있다. 캐머런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어서 벌을 주려고, 내가 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려고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는 루스 이모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뿐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엄마가 지진을 피해 살아남은 뒤 30년이 지나 결국은 퀘이크 호수에서 익사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무슨 교훈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른들과 분위기에 의해서 캐머런은 자신이 잘못 행동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여자를 사랑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캐머런은 깊은 고독과 불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캐머런은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닌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으로 생긴 일이라는 점을 상기한다.

너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거야. 그건 틀린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며 우리를 우리가 아니게 만들어가는 어른들이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캐머런 주변의 어른들은 폭력적이지 않다. 학대의 기미도 없을뿐더러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캐머런에게 '잘못된 교육'을 받게 한다. 콜리와의 일이 발각되고 캐머런은 목사와 루스 이모에 의해 동성애를 치료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들어간다. 캐머런은 저항하지 않는다. 짐을 싸고 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산을 헐어서 학비를 낸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약속'에 들어가 자신을 부정하고 지식을 넓히는 게 아닌 치료를 목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캐머런은 씩씩한 척 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없고 정직한 시선으로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어울린다. 제인, 애덤과 대마초를 피우고 사소한 규율을 어기면서 생활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제인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거라고 했는데, 딱 맞는 표현 같았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지원 세션'은 나의 과거가 올바른 과거가 아니며, 만약 내가 과거가 달랐다면 애초 하나님의 약속에 올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믿게 만들기 위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것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그런 면담이 되풀이되었다.

"방금 다 말했잖아요. 이곳의 설립 목적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어서 변하게 만들려는 거라고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해야 한단 말이에요."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캐머런은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자신을 이곳에 보냈을까 의문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행동을 하기로 한다. 하나님의 약속에서 하는 일이란 온통 캐머런의 과거를 부정하고 나쁜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도대체가 자신을 혐오한다고 해서 더 좋은 나로 바꾸어 갈 수 있다는 발상을 하는 세계 라면 왜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는 것일까. 내가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알아내고 원인을 분석해서 얻은 결과가 나를 부정하고 버리기라고 한다면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가 요구하는 평균화된 가치와 논리가 있다. 단지 나이를 더 먹고 세상을 조금 더 알았다는 이유로 어른이 아이에게 주입하는 규율과 규칙을 깨기 위한 시도로써 에밀리 M. 댄포스의 소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존재한다. 원래 이 소설의 원제는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이었다. 캐머런에게 가해지는 '잘못된 교육'은 캐머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정적인 언어로 난폭한 캐머런의 내면을 표현하면서 독자를 봉인해 두었던 10대의 기억 속으로 데리고 간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시간. 무얼 모르지도 않지만 무얼 알지도 못했던 시간 속으로. 소설의 결말은 뜨겁고 아름답다. 결말에서 행해지는 캐머런의 행동은 자신에게 가해졌던 잘못된 교육을 비웃고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불행하고 답답한 오늘을 돌파할 용기를 얻는다. 넘어지지 않고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를 지키기 위해 캐머런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다.

애도의 의식을 행함으로써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일이 전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고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자책에 빠지지 않고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 세상을 밝히는 건 촛불 하나로써도 가능하다는 것. 캐머런이 나아갈 세상에는 성장하는 아이에게 자신을 부정하는 교육을 받게 하는 어른이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은 캐머런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기억의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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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사라지지 않는 여름 1~2 - 전2권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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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M. 댄포스의 『사라지지 않는 여름』 속 주인공 캐머런은 일단 인형의 집을 꾸미는 것으로 상실의 상처를 달랜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는 순간 캐머런은 여자 친구인 아이린과 키스를 하고 물건을 훔치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후에 자신의 그런 행동 때문에 자책에 휩싸인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인형의 집을 꾸미고 영화 보기에 빠진다. 후에 '하나님의 약속'에서 만난 선생 리디아는 그런 중독이 캐머런 자신을 동성매력장애로 이끌고 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 말은 리디아가 되지도 않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지껄이는 것이라고 캐머런은 나중에야 깨닫는다.

10대 소녀의 이야기. 덧붙이면 레즈비언 10대 소녀의 이야기.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이 남자아이의 내면을 조명하고 이후의 시간을 희망했다면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10대 소녀가 알을 깨고 자신이 정립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이다. 책이 출간되고 아이들이 읽기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금서 취급을 당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캐머런은 루스 이모와 할머니와 함께 산다. 캐머런은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동성애에 눈을 뜬다. 아이린, 린지, 콜리에 이르기까지. 캐머런은 이끌리고 따라갈 뿐이었다. 불안하고 취약한 내면을 가진 캐머런이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시도가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 담겨 있다. 캐머런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어서 벌을 주려고, 내가 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려고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는 루스 이모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뿐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엄마가 지진을 피해 살아남은 뒤 30년이 지나 결국은 퀘이크 호수에서 익사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무슨 교훈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른들과 분위기에 의해서 캐머런은 자신이 잘못 행동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여자를 사랑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캐머런은 깊은 고독과 불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캐머런은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닌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으로 생긴 일이라는 점을 상기한다.

너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거야. 그건 틀린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며 우리를 우리가 아니게 만들어가는 어른들이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캐머런 주변의 어른들은 폭력적이지 않다. 학대의 기미도 없을뿐더러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캐머런에게 '잘못된 교육'을 받게 한다. 콜리와의 일이 발각되고 캐머런은 목사와 루스 이모에 의해 동성애를 치료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들어간다. 캐머런은 저항하지 않는다. 짐을 싸고 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산을 헐어서 학비를 낸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약속'에 들어가 자신을 부정하고 지식을 넓히는 게 아닌 치료를 목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캐머런은 씩씩한 척 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없고 정직한 시선으로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어울린다. 제인, 애덤과 대마초를 피우고 사소한 규율을 어기면서 생활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제인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거라고 했는데, 딱 맞는 표현 같았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지원 세션'은 나의 과거가 올바른 과거가 아니며, 만약 내가 과거가 달랐다면 애초 하나님의 약속에 올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믿게 만들기 위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것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그런 면담이 되풀이되었다.

"방금 다 말했잖아요. 이곳의 설립 목적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어서 변하게 만들려는 거라고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해야 한단 말이에요."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캐머런은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자신을 이곳에 보냈을까 의문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행동을 하기로 한다. 하나님의 약속에서 하는 일이란 온통 캐머런의 과거를 부정하고 나쁜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도대체가 자신을 혐오한다고 해서 더 좋은 나로 바꾸어 갈 수 있다는 발상을 하는 세계 라면 왜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는 것일까. 내가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알아내고 원인을 분석해서 얻은 결과가 나를 부정하고 버리기라고 한다면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가 요구하는 평균화된 가치와 논리가 있다. 단지 나이를 더 먹고 세상을 조금 더 알았다는 이유로 어른이 아이에게 주입하는 규율과 규칙을 깨기 위한 시도로써 에밀리 M. 댄포스의 소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존재한다. 원래 이 소설의 원제는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이었다. 캐머런에게 가해지는 '잘못된 교육'은 캐머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정적인 언어로 난폭한 캐머런의 내면을 표현하면서 독자를 봉인해 두었던 10대의 기억 속으로 데리고 간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시간. 무얼 모르지도 않지만 무얼 알지도 못했던 시간 속으로. 소설의 결말은 뜨겁고 아름답다. 결말에서 행해지는 캐머런의 행동은 자신에게 가해졌던 잘못된 교육을 비웃고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불행하고 답답한 오늘을 돌파할 용기를 얻는다. 넘어지지 않고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를 지키기 위해 캐머런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다.

애도의 의식을 행함으로써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일이 전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고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자책에 빠지지 않고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 세상을 밝히는 건 촛불 하나로써도 가능하다는 것. 캐머런이 나아갈 세상에는 성장하는 아이에게 자신을 부정하는 교육을 받게 하는 어른이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은 캐머런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기억의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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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 아작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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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미있다. 재미있으니까 자꾸 읽고 싶다. 읽다 보니 책이 끝났네. 정세랑의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정세랑이 쓴 SF 소설 여덟 편을 모은 이 책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인물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정세랑 월드의 사람들은 할 말 다하고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는 화끈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종종 이건 현실의 소설가가 대리 만족을 느끼기 위해 썼구나 라고 추측을 해본다.

아직도 읽지 않았다면 얼른 읽어보시길. 『목소리를 드릴게요』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시간 여행을 하고 모조 지구에서 탈출하는 다이내믹한 모험을 펼치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사랑이다, 오직. 그와 그녀들이 시간을 뛰어넘고 죽어가는 연인을 위해 다니던 직장에 휴가를 내는 이유는. 지렁이가 지구를 정복하더라도 좀비떼가 창궐하더라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

나만 아는 작가인 줄 알았는데, 정세랑은. 어느덧 유명해져서 너도 나도 정세랑을 읽고 있다. 괜찮아. 망해가는 지구에서 부자가 되어 소설을 쓸 수만 있다면. 안전 가옥을 구매할 재력을 가지고서 통신사 하나쯤을 사들여 정세랑이 쏘는 와이파이존에서 배달되는 전자책을 읽을 수 있다면. 『목소리를 드릴게요』의 모든 소설이 흥미진진하고 가독성이 높다.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인 나는 막연하고 우주적인 상상력이 없어 SF 소설로 쉽게 빠지지 못하는데.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그렇지 않다. 지구적이고 우주적이면서도 생활밀착 SF 소설이다. 한 발은 지구에 두고 한 발은 우주에 두면서 읽을 수 있다. 「11분의 1」에서 우리의 다혈질 주인공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를 사랑해서 우주 밖으로 떠난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아, 사랑이여.) 세 시간 동안 기억력을 증폭 시켜주는 알약이 개발되고 원래 일이라는 게 전부 계획대로 되지 않지 않아 알약이 이상한 곳에 쓰이는 역사를 다룬 「리틀 베이비블루 필」은 그런 약이 있다면 나는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표제작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목소리만으로도 살인 충돌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힌 학교 선생 여상균씨의 모험을 날렵하게 그린다. 여상균 씨 또한 마지막에는 인어공주의 길을 따른다. 사랑 없이 살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다. 파괴와 혐오, 무질서로 인한 혼돈으로 지구가 망해가도 사랑은 있다고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이야기한다. 짧았던 데이트의 추억을 가지고 좀비로 변해버린 애인의 방문을 받는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의 나. 애인을 깔끔하게 보내주기 위해 한 발의 화살을 남겨 두는 사랑을 가진 나.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하는 일이 지구에서 해야 할 마지막 임무라면 기꺼이 사랑을 하겠다. 정세랑은 소설을 통해 그렇게 말한다. 부디 사랑을 최고의 가치라 여기는 인물의 삶에 행복이라는 희귀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정세랑 월드의 문을 닫고 나온다. 『목소리를 드릴게요』의 소설의 결말은 그러한 희망의 불씨를 남겨 놓았다. 헬리콥터가 와서 참치캔만 주고 가더라도 그게 어딘가. 다양한 맛으로 부탁해요. 고추 참치 꼭 챙겨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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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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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평온하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사망자 중에 헤어진 애인이 있었다.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 『나를 닮은 사람』은 이렇게 시작한다. 테러 소식이 들려왔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와서 저녁을 해결하고 잠이 드는 일상. 월급은 박봉이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이지만 만족하면서 보내던 참이었다.

『나를 닮은 사람』은 테러 사건을 둘러싸고 각각의 인물들의 경우를 보여주면서 일본 사회의 그늘을 보여준다. '히쿠치 다쓰로의 경우'의 이야기에서 발전한 서사는 다양한 시각으로써 사건을 진행한다. 히쿠치 다쓰로의 애인 사야는 트럭을 몰고 건물로 돌진한 테러범에 의해 죽었다. 다쓰로는 자신과 헤어지고 사야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싶어진다. 부디 행복했기를 바라며. 친구에 의해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현재 애인에게 폭력을 당했다는 암울한 이야기였다.

챕터가 바뀌고 '오무라 요시히로의 경우'로 이야기는 넘어간다. 파견 사원으로 단순 작업을 하는 요시히로는 말더듬이 증세를 보인다. 긴장하면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회사에서 겉도는 존재다. 길고양이 꼬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인터넷 채팅방에서 만난 미도링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간다. 용기가 나지 않아 도베라는 인물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도베는 요시히로에게 적절한 조언과 용기를 주는 말을 한다.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요시히로는 트럭을 몰고 건물로 돌진한다. 소설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나를 닮은 사람』이라. 사회파 추리 소설을 쓰는 누쿠이 도쿠로는 이 소설에서 추리의 기법을 배제한 채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개인주의와 불합리를 끊임없이 인물들의 입을 통해 분출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개인주의 때문에 젊은 세대가 가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논의한다.

꿈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가지고 있는 꿈이라고 해봤자 지극히 소박하다. 편의점 도시락에서 튀김이 들어 있는 제품을 고를 수 있는 하루. 차를 가지고 집을 소유해서 가정을 꾸리는 내일. 파견 사원 자리라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는 현재. 『나를 닮은 사람』에 나오는 인물들은 테러 사건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한 명씩 따로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닮아 있다.

행복하지 않은 과거를 가지고 있고 현재를 돌파해 나갈 힘이 없다는 것. 개인이 가진 불행을 나눌 때가 없다. 인터넷에서 만난 도베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뭉친다. 도베는 사회에 책임이 있음을 말하고 행동을 촉구한다. 우리의 잘못이 아님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소규모 테러를 일으켜야 한다는 무서운 발상을 주입한다. 파편화된 관계와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를 주저 없이 꼬집는다.

자신의 불행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길 수 없다. 복수를 해도 남는 것은 죄의식뿐이다. 누구를 원망해서도 안된다. 그렇게 된다면 '나를 닮은 사람'을 만들어 낼 뿐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려는 '나를 닮은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더 어지럽게 만든다. 그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란 의문이 남는다. 터무니없는 꿈이 아닌 가장 보통의 행복을 위해 나를 돌보기.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기. 책임 전가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현재의 불행을 돌파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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