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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유령들 -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황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평점 :
그로부터 이 년 뒤 어머니가 죽었다. 췌장암이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지 육 개월 만에 죽었다. 그로부터 삼 년 뒤 징의 아버지도 죽었다. 간암이었다. 암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고, 오수 삼촌은 언젠가 곱창을 씹으며 말했다. 농담으로 듣고 피식 웃자 오수 삼촌은 불판 위를 서성이던 젓가락을 테이블에 반듯이 내려놓은 뒤 정색한 채 목소리를 잔뜩 깔고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어떤 시절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죽는다."
(황여정, 『알제리의 유령들』)
농담에는 소질이 없다.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사람이기에 가급적 웃기만 한다. 누군가를 웃기려고 하다가 종종 나 자신이 우스워진 적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는 쓸데없는 소리도 지껄이기도 했는데. 사회에 나와서는 그런 게 허용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안 순간부터는 입을 다문다. 좌중을 휘어잡고 중심에 서기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음식만 축내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황여정의 데뷔 장편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은 사소한 농담 하나로 생긴 일을 그린다. 기분이 좋아져서. 술자리에서 시작한 이야기 하나가 점점 커지고 부풀려진다. 사실을 그리다 보니 허구가 필요했다. 그럴듯한 허구. 네 명의 친구는 연극 대사를 맞춰가며 희곡을 쓴다. 1980년도에 금기시되었던 마르크스의 일화를 빌려온다. 자신들이 희곡을 창작해 놓고 마르크스가 유일하게 쓴 희곡으로 몰아가자, 이상한 농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혁명과 변혁을 꾀했지만 젊은이들은 쉽게 좌절했고 무기력해졌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농담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희곡을 만들어 내어 웃어 보자는 것이었다. 단순한 거짓말이었지만 그럴듯한 허구를 갖다 붙이자 진실이 되어 버렸다. 『알제리의 유령들』에는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이 등장한다. 연극을 사랑한 네 명의 젊은이가 각자의 언어로 만들어낸 희곡.
그렇지만 『알제리의 유령들』을 쓴 사람에는 그들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 붙는다. 마르크스가 쓴 유일한 희곡이라는 이야기로 주변 지인들에게 퍼져 나간다. 네 명 중에 두 명이 속한 독서회 모임이 발각되면서 『알제리의 유령들』은 문제가 되었다. 그 희곡은 마르크스가 쓴 게 아니라고 말해도 수사관은 믿지 않았다. 고문을 당했고 시간이 지나 그 사건은 무죄가 되었지만 네 젊은이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알제리의 유령들』은 엄혹한 8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이후를 그린다. 책을 읽고 연극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꿈은 좌절되었고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부모 세대의 아픔과 그것을 목격한 자식의 현재를 네 개의 이야기로 그려낸다. 각각의 이야기를 모으다 보면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알제리의 유령들』을 쓴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농담 하나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과거를 부정하기 위해 종이를 모두 불태운다. 그들은 몰랐다. 웃자고 꾸민 농담이 인생을 절벽 아래로 밀어 넣을 줄은. 80년대는 그런 시절이었다. 웃고 떠들 수 없었던 시절. 어디로 가야 하고 왜 이곳에 모였는지 끊임없이 의문해야 하는 시절. 황여정은 이상하고 낯선 방식으로 가장 진부한 주제를 소설로서 펼쳐 놓는다.
소설 속 오수는 율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시절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죽는다.' 어떤 시절이라고 한정했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현재는 안다. 어떤 시절은 모든 시절이 되어 버렸다. 그걸 알고도 살아간다. 떠난 이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기 위해 도망친다. 『알제리의 유령들』은 삶에 존재하는 거짓과 진실의 행방을 찾기 위한 황여정의 여정이 시작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