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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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M. 댄포스의 『사라지지 않는 여름』 속 주인공 캐머런은 일단 인형의 집을 꾸미는 것으로 상실의 상처를 달랜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는 순간 캐머런은 여자 친구인 아이린과 키스를 하고 물건을 훔치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후에 자신의 그런 행동 때문에 자책에 휩싸인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인형의 집을 꾸미고 영화 보기에 빠진다. 후에 '하나님의 약속'에서 만난 선생 리디아는 그런 중독이 캐머런 자신을 동성매력장애로 이끌고 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 말은 리디아가 되지도 않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지껄이는 것이라고 캐머런은 나중에야 깨닫는다.

10대 소녀의 이야기. 덧붙이면 레즈비언 10대 소녀의 이야기.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이 남자아이의 내면을 조명하고 이후의 시간을 희망했다면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10대 소녀가 알을 깨고 자신이 정립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이다. 책이 출간되고 아이들이 읽기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금서 취급을 당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캐머런은 루스 이모와 할머니와 함께 산다. 캐머런은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동성애에 눈을 뜬다. 아이린, 린지, 콜리에 이르기까지. 캐머런은 이끌리고 따라갈 뿐이었다. 불안하고 취약한 내면을 가진 캐머런이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시도가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 담겨 있다. 캐머런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어서 벌을 주려고, 내가 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려고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는 루스 이모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뿐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엄마가 지진을 피해 살아남은 뒤 30년이 지나 결국은 퀘이크 호수에서 익사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무슨 교훈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른들과 분위기에 의해서 캐머런은 자신이 잘못 행동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여자를 사랑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캐머런은 깊은 고독과 불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캐머런은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닌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으로 생긴 일이라는 점을 상기한다.

너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거야. 그건 틀린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며 우리를 우리가 아니게 만들어가는 어른들이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캐머런 주변의 어른들은 폭력적이지 않다. 학대의 기미도 없을뿐더러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캐머런에게 '잘못된 교육'을 받게 한다. 콜리와의 일이 발각되고 캐머런은 목사와 루스 이모에 의해 동성애를 치료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들어간다. 캐머런은 저항하지 않는다. 짐을 싸고 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산을 헐어서 학비를 낸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약속'에 들어가 자신을 부정하고 지식을 넓히는 게 아닌 치료를 목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캐머런은 씩씩한 척 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없고 정직한 시선으로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어울린다. 제인, 애덤과 대마초를 피우고 사소한 규율을 어기면서 생활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제인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거라고 했는데, 딱 맞는 표현 같았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지원 세션'은 나의 과거가 올바른 과거가 아니며, 만약 내가 과거가 달랐다면 애초 하나님의 약속에 올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믿게 만들기 위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것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그런 면담이 되풀이되었다.

"방금 다 말했잖아요. 이곳의 설립 목적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어서 변하게 만들려는 거라고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해야 한단 말이에요."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캐머런은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자신을 이곳에 보냈을까 의문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행동을 하기로 한다. 하나님의 약속에서 하는 일이란 온통 캐머런의 과거를 부정하고 나쁜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도대체가 자신을 혐오한다고 해서 더 좋은 나로 바꾸어 갈 수 있다는 발상을 하는 세계 라면 왜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는 것일까. 내가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알아내고 원인을 분석해서 얻은 결과가 나를 부정하고 버리기라고 한다면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가 요구하는 평균화된 가치와 논리가 있다. 단지 나이를 더 먹고 세상을 조금 더 알았다는 이유로 어른이 아이에게 주입하는 규율과 규칙을 깨기 위한 시도로써 에밀리 M. 댄포스의 소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존재한다. 원래 이 소설의 원제는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이었다. 캐머런에게 가해지는 '잘못된 교육'은 캐머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정적인 언어로 난폭한 캐머런의 내면을 표현하면서 독자를 봉인해 두었던 10대의 기억 속으로 데리고 간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시간. 무얼 모르지도 않지만 무얼 알지도 못했던 시간 속으로. 소설의 결말은 뜨겁고 아름답다. 결말에서 행해지는 캐머런의 행동은 자신에게 가해졌던 잘못된 교육을 비웃고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불행하고 답답한 오늘을 돌파할 용기를 얻는다. 넘어지지 않고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를 지키기 위해 캐머런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다.

애도의 의식을 행함으로써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일이 전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고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자책에 빠지지 않고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 세상을 밝히는 건 촛불 하나로써도 가능하다는 것. 캐머런이 나아갈 세상에는 성장하는 아이에게 자신을 부정하는 교육을 받게 하는 어른이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은 캐머런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기억의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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