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를 닮은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도심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평온하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사망자 중에 헤어진 애인이 있었다.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 『나를 닮은 사람』은 이렇게 시작한다. 테러 소식이 들려왔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와서 저녁을 해결하고 잠이 드는 일상. 월급은 박봉이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이지만 만족하면서 보내던 참이었다.
『나를 닮은 사람』은 테러 사건을 둘러싸고 각각의 인물들의 경우를 보여주면서 일본 사회의 그늘을 보여준다. '히쿠치 다쓰로의 경우'의 이야기에서 발전한 서사는 다양한 시각으로써 사건을 진행한다. 히쿠치 다쓰로의 애인 사야는 트럭을 몰고 건물로 돌진한 테러범에 의해 죽었다. 다쓰로는 자신과 헤어지고 사야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싶어진다. 부디 행복했기를 바라며. 친구에 의해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현재 애인에게 폭력을 당했다는 암울한 이야기였다.
챕터가 바뀌고 '오무라 요시히로의 경우'로 이야기는 넘어간다. 파견 사원으로 단순 작업을 하는 요시히로는 말더듬이 증세를 보인다. 긴장하면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회사에서 겉도는 존재다. 길고양이 꼬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인터넷 채팅방에서 만난 미도링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간다. 용기가 나지 않아 도베라는 인물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도베는 요시히로에게 적절한 조언과 용기를 주는 말을 한다.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요시히로는 트럭을 몰고 건물로 돌진한다. 소설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나를 닮은 사람』이라. 사회파 추리 소설을 쓰는 누쿠이 도쿠로는 이 소설에서 추리의 기법을 배제한 채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개인주의와 불합리를 끊임없이 인물들의 입을 통해 분출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개인주의 때문에 젊은 세대가 가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논의한다.
꿈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가지고 있는 꿈이라고 해봤자 지극히 소박하다. 편의점 도시락에서 튀김이 들어 있는 제품을 고를 수 있는 하루. 차를 가지고 집을 소유해서 가정을 꾸리는 내일. 파견 사원 자리라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는 현재. 『나를 닮은 사람』에 나오는 인물들은 테러 사건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한 명씩 따로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닮아 있다.
행복하지 않은 과거를 가지고 있고 현재를 돌파해 나갈 힘이 없다는 것. 개인이 가진 불행을 나눌 때가 없다. 인터넷에서 만난 도베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뭉친다. 도베는 사회에 책임이 있음을 말하고 행동을 촉구한다. 우리의 잘못이 아님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소규모 테러를 일으켜야 한다는 무서운 발상을 주입한다. 파편화된 관계와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를 주저 없이 꼬집는다.
자신의 불행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길 수 없다. 복수를 해도 남는 것은 죄의식뿐이다. 누구를 원망해서도 안된다. 그렇게 된다면 '나를 닮은 사람'을 만들어 낼 뿐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려는 '나를 닮은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더 어지럽게 만든다. 그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란 의문이 남는다. 터무니없는 꿈이 아닌 가장 보통의 행복을 위해 나를 돌보기.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기. 책임 전가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현재의 불행을 돌파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