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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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새벽은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는다. 얼른 자야 하는데 그래야 내일 일어나서 일하러 갈 텐데. 잠은 쉽게 오지 않고 비가 올 듯 말 듯 해서 습기로 집안이 가득 차 있다. 귀찮아서 발걸레로 바닥을 쓱쓱 닦기만 했다. 걸레받이에서 묻어 나오는 검은 먼지. 드러누워 있다가 이대로는 잠들지 못할 것 같아 책을 펼쳐 든다. 읽고 나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뜻의 이야미스의 대표 주자 마리 유키코의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을 읽어 나간다.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재미있어. 반쯤 누워 있다가 자세를 바로잡고 읽어 나간다.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흥청망청 쓰는 부모 밑에서 살아가는 열한 살 소녀 후지코. 엄마에게 급식비를 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주지 않는다. 동생에게 먹일 된장국에 밥을 죽처럼 끓이고 체육복 한 벌로 두 자매가 번갈아 입는다. 빵점 부모 밑에서 살아가는 후지코.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과 심한 괴롭힘을 당한다.

어느 날 몸이 아파 집으로 가던 중 못살게 구는 K를 만난다.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후지코는 무사히 건널목을 건너지만 K는 그렇지 못한다. 사고를 당하는 K. 그런 자신과 K를 지켜보는 엄마. 집으로 달려간 후지코는 죽임을 당한 가족을 만난다. 자신의 목을 베어버리는 누군가. 정신을 잃은 후지코. 혼자만 살아남은 후지코에게 이모가 찾아온다. 유일한 생존자인 후지코는 그날 이후로 비뚤어진 삶을 살아간다.

괴롭힘 당하지 않고 버림받지 않으며 살아가기 위한 후지코의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된다. 끊임없이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후지코. 못생긴 외모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후지코. 쉽게 마음을 열어 버리는 탓에 상처를 받는다.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은 인간의 욕망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사랑받고 싶다. 부자가 되어 살고 싶다. 모두에게 주목받고 싶다.

각자의 마음속에 있지만 섣불리 말하지 못하는 욕망을 마리 유키코는 들춰낸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악마적인 본성을 소설을 읽으며 느낄 수 있다. 가독성이 뛰어난 문장으로. 다음 장을 펼치게 만드는 긴장감 있는 서사로.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은 일요일 새벽을 스릴 넘치게 만든다. 조금만 읽고 자야지 했는데 다 읽고 아침이 밝아오는 걸 보고야 말았다.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후지코를 둘러싼 비밀은 압도적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불사하는 후지코. 그녀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충동을 참지 못하고 살인으로써 자신의 삶을 지키려 했는지 마리 유키코는 친절하게 진실을 알려준다.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이른바 업보라고 말하는 불행에 저항할 수 있는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할만한 힘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어두운 인간 심리를 깊이 있게 포착해내는 능력에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이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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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몽전파사 소설Q
신해욱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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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시는 꿈에서 출발한다. 시의 기원은 꿈이다. 신해욱의 『해몽전파사』는 이렇게 말하는 소설이다. 망가진 헤어드라이어기를 고치러 찾아간 그곳에서 '각종 꿈 매입'이라는 글귀를 본다. 꿈을 사겠다니. 전날 꾸고 기록에 남겨 두었던 꿈을 가게 앞에 적힌 번호로 보낸다. 이층으로 올라오라는 답신이 왔다. 해몽전파사 앞에서의 일이었다. 그날부터 학원에서 수업을 하는 신선생인 나는 해몽전파사 이층으로 가게 된다.

주인인 초로의 여자에게 꿈을 팔고 돈을 받았다. 그 돈으로 늦은 저녁밥을 먹고 복숭아를 샀다. 꿈에 관한 책을 읽고 서로의 꿈에 대해 들려주는 해몽 전파사의 모임에 들어간다. 자주 꿈을 꾸고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애쓰던 중이었으니까. 『해몽전파사』는 소모임과 강좌가 진행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꾸는 꿈을 들려준다. 그들이 해몽 전파사에서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오직 꿈에 관한 것이다.

다들 가게라고 부르는 곳에서 간밤에 꾼 꿈을 나눈다. 모임의 주체인 그녀를 진주 씨라고 부르며. 진주 씨는 유방 초음파에서 암이 발견되었고 나에게 제안을 한다. 자신이 죽기 전 천 개의 꿈을 모으면 전파사를 주겠다는. 웃음이 나왔다. 웃지 말아야 할 순간에 터지는 웃음. 삶의 시련은 갑자기 터지는 웃음처럼 뜬금없다. 이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하고 생각될 때가 있다.

무수히 많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 평소에 가지던 불안감과 두려움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늘을 날고 쫓기고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다소 어두운 얼굴로 출현한다. 꿈을 받아 적을 수 있을까. 『해몽전파사』에 번호가 매겨진 꿈은 시가 된다. 인과 관계없이 오로지 꿈의 장면을 펼쳐 놓는다. 모임에 나오던 그들이 일상의 고난을 마주할 때 서로의 꿈을 들려주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한다.

천 개의 꿈을 모으지 못하고 소설은 끝이 난다. '일요일만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페이지가 바람에 날려 무수히 넘어간다'를 끝으로. '일요일에 연락할게'라고도. 참으로 애틋한 말. 좋은 말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하며 쓰고 싶다. 일요일에 연락할게. 기억나지 않는 어지러운 꿈을 꾸고 일어난 일요일 오후에 날아오는 그런 말이라면 힘이 난다. 간밤에 꾼 꿈이 내 삶에 힌트가 되지 않을까. 알 수 없는 내일 때문에 불안해하는 나를 위로하지 않을까. 꿈의 역할은 그런 의문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면 된다.

꿈을 나누는 일이 천 개의 꿈을 모으는 일이 당신을 살게 한다면 기꺼이 내 꿈을 나누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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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사나이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2
강태식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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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의 『두 얼굴의 사나이』를 읽고 소설에 관한 내용을 써야 하는데 자꾸 딴 생각이 든다. 이틀에 걸쳐 책을 읽었다. 전자책으로 111페이지였다. 이 정도면 하루 안에는 끝낼 수 있는 분량인데. 소설을 읽는 동안 집중을 하지 못한 결과이리라. 두병이라는 인물이 주인공. 왠지 두 명을 나름 은유적으로 바꿔서 두병이라고 지은 것 같은 의심이 살짝 들기도 한다.

두병의 머릿속에서 누군가 말한다. '돌아가'라고. 그는 그 목소리에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응수하고. 이쯤 되면 정신분열증에 걸린 인물이겠거니 눈치채야 맞다. 그런데 나 못 챘다. 이상하게 딴 생각. 그러니까 들어오기로 한 돈은 언제 들어올 것이며 몸을 움직여서 무언갈 먹으면 좋을 텐데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책을 읽어온 가닥이 있어 이야기를 쫓아간다.

두병은 이리저리 거리를 배회하고 그를 쫓는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전직 경찰관 종현. 그는 술만 먹으면 다른 사람이 된다.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술에 취해 사고를 쳤고 경찰을 그만두어야 했다. 처음엔 술집을 했다가 간판을 바꿔 심부름센터를 연다. 그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한눈에도 부자인 듯한 남자는 일주일에 천만 원이라는 보수를 주면서 어떤 남자를 감시해 달라고 한다.

그 남자는 두병이기도 하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배회하는 인물. 두병의 처참한 사연이 나오고 그가 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지 그는 왜 자신을 감시해 달라는지 이야기는 펼쳐진다. 『두 얼굴의 사나이』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 꽤 두둑한 돈을 받은 종현은 서점에서 금색 만년필을 산다. 돈 걱정 없이 물건을 사는 홀가분한 경험을 한다. 나 왜 이 장면이 좋은지 추리했더니…….

『두 얼굴의 사나이』는 다른 인격이 되어버리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까.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만나는 고난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를 묻다 미쳐버린 두 사나이. 두 사나이는 두 얼굴로 살아가기로 한다. 각기 다른 모습의 네 사나이를 만날 수 있다. '계량기가 돌고' 공과금이 나온다. 슬픔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말이다.

소설의 줄거리를 전부 파악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인다. 나를 위로하는 일로 힘을 낸다. 버티지 못한다고 누가 나를 나무랄 것인가. 나에게 관대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 얼굴의 사나이』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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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 상하이에 두고 온 사람들 People I Left in Shanghai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47
공선옥 지음, 전승희 옮김, 데이비드 윌리엄 홍 감수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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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소설은 뒤끝이 길다. 끝이 났는데 한동안 소설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인물의 고단한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라서 내게도 그 시간을 대입해 보는 것이다. 남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보여줄 수 없는 내 인생을 공선옥은 소설 안에서 부려 놓는다. 나 대신 울어주는 소설을 공선옥은 쓴다. 비평에 실려 있는 말처럼 공선옥은 우리 시대에 참으로 귀한 작가임이 틀림없다.

소설 『상하이에 두고 온 사람들』에서 주인공 '나'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으로부터 파혼을 당한다. 이렇게는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다소 애매한 이유로 말이다.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는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상하이로 여행을 떠나온다. 그곳에서 민박집 주인과 손님을 만난다. 성이 같다고 '나'를 반가워하는 민박집 주인. 그녀가 그토록 '나'를 반가워했던 이유가 나중에 드러난다.

중국으로 떠난 아버지를 찾으러 온 노숙자 출신의 노인과 대화 상대가 된 '나'.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그들의 삶에서 '나' 역시 이방인의 삶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감에 젖어든다. 다음날이 되어 항주로 떠나려는데 민박집 주인은 잘 차려 입고 따라나선다. 표를 끊어 주겠다는 것이다. 노인 역시 따라나선다. 민박집 주인은 한국으로 자신을 친척으로 해서 초청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돈 800만 원을 들여 위장 결혼을 했는데 남자가 돈만 가지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빚을 갚고 남자도 찾아야 한다. 그러니 같은 성을 가진 것도 인연이니 부디 한국으로, 한국으로. 노인은 그 옆에서 한 술 더 뜬다. 자신도 항주루 가겠다는 것이다. 이상한 동행을 만났고 기이한 부탁을 받았다. 부담스러워진 '나'는 그들을 피해 다른 길로 떠난다.

떠났지만 그들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상하이에 두고 온 사람들』은 한국 바깥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스산한 인생을 그린다. 국가의 보호막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구호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다. 사실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는 누구에게도 없다. 누가 누굴 도울 수 있을 것인가. 도망치기에 바쁜 '나'의 모습에서 서글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국에서 버린 사람' 간의 기묘한 연대를 가진 민박집 주인을 기억해 내지만 곧 그들을 잊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씁쓸하고 안타까운 뒷맛을 남기고 『상하이에 두고 온 사람들』은 끝이 난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고 누구라도 좋으니 대화를 하고 싶어 여행지까지 바꾸는 그들. 잊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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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 도청의 마지막 날, 그 새벽의 이야기
정도상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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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광주에게.

소설가 정도상은 긴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소설 『꽃잎처럼』은 진압군이 전남 도청으로 밀고 들어온 1980년 5월 26일에서 27일을 다룬다. 여자와 학생은 전부 나가라고 그 밤에 그들은 말했다. 도청에 남아 있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자정에 진압군이 작전을 개시할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명수는 들불 야학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두고 나갈 수가 없다. 자신의 첫사랑 희순이 부탁이 있기도 했다.

사랑의 목숨을 건 노명수는 도청을 나가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가족이 찾아와 자식을 데리고 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젖을뿐이다. 가난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시골에서 광주로 올라와 누나와 단칸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야학 강습을 받았다. 그곳에 희순을 다시 만났다. 희순은 명수가 처음 사랑에 빠지게 한 사람이었다. 대학생이었다가 노동자가 된 희순.

희순은 시민군 대변인을 맡고 있는 상우를 끝까지 지켜 달라고 했다. 부탁을 받은 명수는 도청에 남아 있기로 한다. 『꽃잎처럼』은 끝까지 도청에 남아 있었던 이들의 심정과 마음을 그린다. 총을 잡았지만 쏠 수는 없었다. 세 발의 총알을 장전했지만 잡고 있기만 했다. 진압군은 잔인했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총을 난사했다. 모습을 드러내면 살려준다고 했지만 그들은 어린 소년들까지도 무참하게 죽였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었다. 학교를 다니고 공장에 취직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꿈꾸었다. 신군부가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벌인 만행 앞에서 그들은 꿈과 사랑을 잠시 잊어야 했다. 적과 싸워야 할 군인들이 시민에게 총칼을 겨누었다. 5월 21일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시민에게 총을 쏘았다. 광주 시민들은 믿을 수 없었다. 언론은 침묵했고 광주에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나라면 도청에 남을 수 있었을까.

『꽃잎처럼』은 오월 광주를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그럼에도 죽음으로써 해야 할 말이 있었다.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을 눈앞에서 목격한 노명수는 '어제와 다른 새로운 생이 시작' 되었음을 직감한다. 소설가 정도상은 작가의 말에서 자신은 광주 사람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오월 광주를 겪지 않았으며 그런데도 문학의 출발은 광주였다고도.

『꽃잎처럼』의 원래 제목은 『도청』이었다. 도청을 지키며 남기고자 했던 것. 오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해야 함을 『꽃잎처럼』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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