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 상하이에 두고 온 사람들 People I Left in Shanghai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47
공선옥 지음, 전승희 옮김, 데이비드 윌리엄 홍 감수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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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소설은 뒤끝이 길다. 끝이 났는데 한동안 소설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인물의 고단한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라서 내게도 그 시간을 대입해 보는 것이다. 남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보여줄 수 없는 내 인생을 공선옥은 소설 안에서 부려 놓는다. 나 대신 울어주는 소설을 공선옥은 쓴다. 비평에 실려 있는 말처럼 공선옥은 우리 시대에 참으로 귀한 작가임이 틀림없다.

소설 『상하이에 두고 온 사람들』에서 주인공 '나'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으로부터 파혼을 당한다. 이렇게는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다소 애매한 이유로 말이다.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는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상하이로 여행을 떠나온다. 그곳에서 민박집 주인과 손님을 만난다. 성이 같다고 '나'를 반가워하는 민박집 주인. 그녀가 그토록 '나'를 반가워했던 이유가 나중에 드러난다.

중국으로 떠난 아버지를 찾으러 온 노숙자 출신의 노인과 대화 상대가 된 '나'.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그들의 삶에서 '나' 역시 이방인의 삶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감에 젖어든다. 다음날이 되어 항주로 떠나려는데 민박집 주인은 잘 차려 입고 따라나선다. 표를 끊어 주겠다는 것이다. 노인 역시 따라나선다. 민박집 주인은 한국으로 자신을 친척으로 해서 초청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돈 800만 원을 들여 위장 결혼을 했는데 남자가 돈만 가지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빚을 갚고 남자도 찾아야 한다. 그러니 같은 성을 가진 것도 인연이니 부디 한국으로, 한국으로. 노인은 그 옆에서 한 술 더 뜬다. 자신도 항주루 가겠다는 것이다. 이상한 동행을 만났고 기이한 부탁을 받았다. 부담스러워진 '나'는 그들을 피해 다른 길로 떠난다.

떠났지만 그들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상하이에 두고 온 사람들』은 한국 바깥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스산한 인생을 그린다. 국가의 보호막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구호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다. 사실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는 누구에게도 없다. 누가 누굴 도울 수 있을 것인가. 도망치기에 바쁜 '나'의 모습에서 서글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국에서 버린 사람' 간의 기묘한 연대를 가진 민박집 주인을 기억해 내지만 곧 그들을 잊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씁쓸하고 안타까운 뒷맛을 남기고 『상하이에 두고 온 사람들』은 끝이 난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고 누구라도 좋으니 대화를 하고 싶어 여행지까지 바꾸는 그들. 잊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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