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밀리언셀러 클럽 69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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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데니스 루헤인의 단편집 『코로나도』의 인물들은 절망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제목과 인물, 사건은 다르지만 그들이 나누는 공허는 비슷한 색채를 띠고 있다. 미래는 없고 과거는 사라진 불안 속에서 부랑자로 떠돈다. 짧은 이야기 안에서 그들이 느끼는 공포와 슬픔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가상의 인물이고 책을 덮으면 사라질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데니스 루헤인이 만든 가짜 역할극에 충실한 배우이지만 그들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 싶다. 


  「들개 사냥」의 배경은 어둡고 스산하다. 마을의 활성화를 위해 에덴동산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사람들은 그 마을을 '똥개 무덤'이라고 부른다. 애초에 개를 사육한 게 문제였다. 개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새끼를 쳤고 그러다 사람들을 위협하게 되었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가로지르며 문제가 생겼다. 차에 치여 죽는 개들 때문에 골칫거리였고 시장은 앨진과 블루에게 나무 위에 올라가 개를 사냥할 것을 주문한다. 앨진은 그 일이 탐탁지 않다. 블루는 그러니까 앨진이 유일한 친구 블루는 들개 사냥에 열을 올린다. 그 일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듯이. 앨진은 친구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선택을 한다. 선택은 잔인하고 파괴적이다. 


  하루 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된 남자의 이야기 「ICU」의 결말은 쓸쓸하다. 대니얼이라고 불리는 그가 언제까지 그들을 피해 다닐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가족인 척 병원 생활을 하는 대니얼의 내일을 응원해보지만 의미가 없다. 풋볼 경기에서 진 탓을 상대팀 선수에게 돌려 그의 집을 방문한 악동들의 하루를 그린 「코퍼스 가는 길」에서 꿈이란 별 볼 일 없는 가치들 중에 하나이다. 좋은 대학에 가기를 희망했지만 단 한 번의 패배로 '나'의 꿈은 좌절된다. 복수를 하기 위해 그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그 집에서 선수의 여동생을 만나 다른 집을 엉망으로 만들기 위해 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고개를 든다. '나'도 '나의 아버지'에게도 미래란 개나 줘버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독버섯」은 우리는 한때 소년, 소녀였음을 기억하게 해준다. 기억만 하게 해준다. 기억을 헤집어 그 안에서 추억을 발견하게 하진 않는다. 더럽고 오해했고 상처받은 과거만 떠올리게 해줄 뿐이다. 우리에겐 거지 같은 시절이 있었어라는 식의. 「그웬을 만나기 전」은 지구 최악의 아버지가 나온다. 이 소설은 희곡 「코로나도」로 이어진다. 「그웬을 만나기 전」은 단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소설이다. 약동하는 인물들과 반전을 기다리고 있는 사건 그리고 독자의 심장을 아프게 하고 숨을 참게 하는 서글픔까지. 소설은 우리가 가진 꿈이 비루하지 않다고 말한다. 


  「코로나도」는 「그웬을 만나기 전」에서 만날 수 없었던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새롭게 그린다. 데니스 루헤인의 형 게리 루헤인이 연극에서 악당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그웬을 만나기 전」의 결말에서 쓸쓸함을 느꼈다면 희곡  「코로나도」는 농도가 짙어진 극한의 슬픔을 만날 수 있다. 


바비: 브이는 어떻게 됐죠?

지나: 브이?

바비: 비델리아. 여기 종업원이었어요. 아주 오래됐는데.

지나: 오, 그녀한테 남자가 생겼어요. 정말 괜찮은 남잔데, 함께 코로나도에 갔다고 하더군요. 남자가 음악가래요. 

바비: 음악 하는 도신 가요, 코로나도는? 처음 듣네요.

지나: 어떤 곳인지 알 거예요.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모두가 음악이 되는 곳이니까.


  우리는 음악이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도와 레를 누르고 미를 친다. 그렇게 미친다. 우리의 꿈과 절망이 가닿는 곳, 코로나도. 사랑과 이별이 당신을 기다리는 곳, 코로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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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드롭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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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이 아닌 자주 혼자라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도 혼자.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더 드롭』의 주인공 밥처럼 생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건 우리가 아닌 나다. 나 혼자 무거운 삶을 끌고 간다. 사촌 마브의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밥은 사회성이 부족하다. 우리 식대로 이야기하자만 그렇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대화에 끼지도 않고 엄마와 살았던 집에서 엄마가 쓰던 물건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밥. 다른 식대로 본다면 그는 혼자가 아니다. 커다란 지하실이 있고 사라진 리치 휠런을 추모하는 자리의 사람들에게 공짜술을 주기도 한다. 


  성탄절이 지난 이틀 후 밥은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한다. 개를 발견한 시점부터 그는 혼자가 아니다. 강아지는 피투성이가 된 채 쓰레기 더미 아래 깔려 있었다.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밥은 복서 종이라고 착각한다. 쓰레기통 주인인 나디아가 나와 강아지는 인기 없는 종인 핏불이라고 알려준다. 얼어붙은 추위 속에 버려진 강아지와의 만남은 밥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안내한다. 목에 상처가 있는 나디아는 강아지와 밥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결국 강아지를 때린 주인에게 돌려보내지리라는 나디아의 말을 들은 밥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혼자 살았다. 사촌 마브의 바가 어떤 곳인지 알면서도 묵묵히 바텐더 일을 했다. 도시의 온갖 더러운 돈이 모여드는 곳. 실제 마브의 바는 그가 주인이 아니다. 어느 갱단이 운영하고 있으며 마브는 이름만 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들과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음에 안도하는 밥. 사람들은 밥을 궁금해 하기는커녕 호기심만을 보일 뿐이다. 물과 공기가 발견된 곳. 우주에서 보면 한없이 푸른 별 지구에서 밥은 고독을 탐하는 여행자로 살아간다. 


  개에게는 로코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독신자와 순교자의 수호성인 그리고······개의 수호성인'이라는 뜻의. 나디아의 도움으로 로코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사면서 밥은 희열을 느낀다. 누군가를 위해 돈을 쓴다는 행위를 처음 해보는 것이다. 지하실 깡통에 돈을 모을 줄만 알았던 밥이었다. 로코가 엄마의 카펫에 똥과 마룻바닥에 오줌을 쌀 때 당황하지만 이내 괜찮아라고 말한다. 밥은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일이 괜찮은 사람. 


"누구나 상대한테 얘기하고 싶어 해요. 뭐든 자기 얘기를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는 거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정체를 보여 줄 때가 되면, 찔끔 움츠리고 말아요, 나디아.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더 많이 떠들어 위장하는 겁니다. 해명이 불가능한 일을 해명하려는 거예요. 그다음엔 다른 사람에 대해 심하게 떠들어 대요. 도대체 말이 됩니까?"

나디아의 미소가 작아졌다. 호기심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내면으로 숨어든 것이다. 

"잘 모르겠어요."


  밥은 나디아에게 당신 흉터니까 얘기하고 싶을 때 해도 된다고 말한다. 나디아는 밥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신원을 먼저 확인했다. 얼굴 사진을 찍고 사람들이 그를 아는지 보려고 전송한다.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될 때 비로소 안심한다. 지구별은 이제 서로를 믿지도 의지하지도 못하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안전하다고 느끼면 눈짓을 주고받고 악수를 한다. 혼자로 살아가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인 셈이다. 만남에 서툴고 이별은 힘들다. 나디아는 과거와 제대로 이별하지 못해 두려움 속에서 현재를 살아간다. 밥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과거를 로코라는 이름의 강아지와 함께 지워 보려 한다. 


  돈과 욕망에 눈먼 사람들이 밥을 괴롭히고 이용한다. 밥은 스스로를 지켜낸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개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삶이 더러운 쓰레기통으로 떨어질 때 그곳에는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낑낑대는 존재가 있었다. 추락은 죽음이 아닌 삶의 시작이었다. 밥과 로코, 나디아 모두에게 말이다. 검은 돈이 흘러들고 그 돈을 차지하려는 더러운 욕심이 쌓이는 새벽 2시, 나는 문을 닫고 그곳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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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마일 밀리언셀러 클럽 85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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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라이트 마일』에서 우리의 주인공 켄지와 제나로는 많은 변화를 보여준다. 그동안 사립탐정으로서 거친 현장에 투입돼 총에 맞고 얼굴을 다치고 손의 신경이 손상되었다. 그들이 맡은 사건의 특성상 경찰 보다 험한 일을 당하기 부지기수였다. 연쇄 살인마를 잡고 폭력배들 소굴로 들어가 협상을 하는 등 켄지와 제나로는 힘들게 살아왔다. 『문라이트 마일』은 켄지가 정규직을 따 내기 위해 부잣집 도련님을 감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제나로를 이용해 미끼를 던지고 도련님이 물기를 기다린다. 작전은 성공. 정규직으로 채용되려나 싶었는데 그만 도련님에게 모욕을 주었다는 의뢰인의 항의에 정규직 보류. 


  현실의 시간과 더불어 소설 속의 시간도 충실히 흘러갔다. 그동안 그들은 결혼을 했고 네 살 된 딸 가브리엘라를 두었다. 자식이 생겼으니 더 이상 위험한 일을 하기 힘들다. 제나로는 학교에 들어갔고 켄지는 각종 보험료와 학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충실히 하고 있다. 거칠게 없고 아무 말이나 툭툭 내 뱉고 언어유희를 일삼는 켄지는 이제 입조심까지 해야 한다. 뻔뻔하게 사람을 치고도 돈을 써서 형량을 줄이고 재산을 빼돌리는 의뢰인들을 정규직 채용이라는 이유로 굽어살펴야 한다. 까짓것 뭐, 켄지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 하려고 한다. 어떻게든 두하멜 스탠드포드 정규직 자리로 들어가야 한다. 


  세상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면 이야기 진행이 안된다. 능글맞은 사장이 이번 건만 잘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켄지 앞에 베아트리체 맥크레디가 나온다.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면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조카 아만다를 잃어버렸다고 켄지와 제나로를 찾아온 여인이다. 그렇다. 『문라이트 마일』은 『가라, 아이야, 가라』의 이후를 다룬다. 켄지는 아만다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네 살의 아만다는 우여곡절을 겪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12년 후인 아만다가 열여설 살이 된 현재를 다룬다. 이번에도 아만다가 실종되었다. 베아트리체는 다시 한 번 실종된 조카딸을 찾아달라고 켄지 앞에 나타난다. 


  약쟁이, 알코올 중독자 엄마 곁에서 아만다는 잘 자랐다. 객관적으로 보기엔 그랬다. 아만다의 행방을 쫓기 위해 그녀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약과 술에 전 엄마 대신에 자신에 관한 일은 스스로 결정했다. 각종 장학금 신청을 해서 받았고 성적도 좋았다. 이대로만 간다면 하버드나, 예일은 문제없었다. 그런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켄지는 정규직 채용 보다 지금의 안락한 가정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한다. 


  그들은 위험한 일에서는 손을 털기로 했다. 학교에 다니고 매일 회사에 출근해 던킨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늙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서른 초반에 총알이 날아다니고 덩치들의 위협에도 기가 죽지 않았던 탐정들은 나이가 먹었다. 마흔이 넘었고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딸이 있다. 파산 지경에 가지 않으려면 안정된 직장이 필요하다. 정의, 용서, 정직, 관용, 포용에 걸맞은 일보다 현실, 보험료, 차량 유지비, 베이비시터 구하기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나이에 들어선 것이다.


  『문라이트 마일』의 결말을 읽다 보면 이제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는 안 나올 것 같은 불길함에 휩싸인다. 그들은 안정과 평화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걸 보는 독자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소설 속에서 그들이 펼치는 활약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쑤시고 덩치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겁부터 나는 탐정이 되었지만 껄렁껄렁한 말로 상대를 약 올리는 기술만은 변하지 않았다. 탐정도 나도 늙는다. 그래도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이듦의 반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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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바라는 기도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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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카렌 니콜스의 의뢰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순진하게만 볼 것 같은 여인 카렌의 의뢰는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의 스토킹을 멈춰 달라는 것이었다. 양말도 다려 입을 것 같은 여자. 자신이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의뢰를 한다는 것에 미안함을 가진 여자. 켄지는 그의 친구 부바와 함께 일을 처리한다. 제나로는 전작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선택의 문제 때문에 켄지와 결별한 상태다. 전직 군인, 지금은 무기 거래상. 얼굴은 동안에 덩치는 거대한 친구 부바는 카렌의 스토킹남 코디 포크를 만나 총알이 없는 총으로 잔뜩 겁을 준다. 그 와중에도 코디는 자신은 절대 카렌의 차를 망가뜨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켄지는 그 말을 흘려듣는다. 


  카렌은 일의 보수로 수표를 보내온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수표를 보내온 지 6주 후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휴가를 떠나는 켄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켄지는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카렌의 쉰 목소리를 듣는다. 그게, 무슨 문제가 있으니, 자신에게 전화 한 통 걸어 달라는 말이 담긴 전화였다. 밖에서는 여자친구가 클랙슨을 누르고 있고 켄지는 휴가를 다녀온 뒤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녹음을 지운다. 


  그 후 켄지는 전화 거는 것을 잊어버렸다. 길이 막히고 차 뒤쪽에는 술 취한 범죄자가 있는 상황에서 켄지는 카렌 니콜스가 26층 건물에서 뛰어 자살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도시에는 카렌 니콜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쉰 목소리로 전화 한 통을 부탁했던 그녀였다.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 켄지는 한 번 사건을 해결한 죽은 의뢰인의 사건을 파고 들어간다. 카렌을 스토킹 한 코디 포크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쫓아다닌 건 맞지만 카렌의 차는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말을. 그리고 켄지는 카렌의 전화 부탁에 응했어야 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차분하고 아름답고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어둠이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자였다. 미래는 밝고 희망차고 원하기만 하면 모든 걸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불과 6개월 만에 인생을 끝장낸 것이다. 켄지는 그녀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그녀 주변을 조사해 들어간다. 자신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미안함의 표현이기도 했다.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이 철저하게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연이었고 사고였다. 목격자가 존재하고 증언이 있었다. 카렌의 애인 데이비드 워터로가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면서 그녀는 무너졌다. 켄지는 교통사고 역시 조작된 것임을 밝혀 낸다. 사막에서 비가 내리기를 바라며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카렌은 타인은 모르는 자신만의 두려움으로부터 구원받고 싶어 했다. 그것은 끔찍이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26층으로 올라가던 한 여인의 머릿속에는 생을 끝장내는 것이 아닌 간절히 살아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날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러 상대와 통화를 했었더라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한 수사는 인간의 잔혹한 욕망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죽음으로 고통을 끝낼 수 없다. 고통은 끝까지 생을 살아내는 사람만이 끝낼 수 있다. 구원의 기도는 우리의 삶이 끝날 때 비로소 하늘에 가닿는다. 비는 그때서야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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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아이야, 가라 1 밀리언셀러 클럽 46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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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지가 실종 아동을 발견하고 우는 순간 나의 마음도 함께 무너졌다. 일곱 살 남자아이. 새뮤얼 피에트로. 실종된 후 2주 동안 그 아이가 먹은 것이라곤 감자칩과 고구마칩, 맥주가 전부였다. 오른손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수갑에 묶여 있었고 등과 엉덩이에 채찍질을 당했다. 아동 성범죄자 전과가 있는 놈들의 짓이었다. 켄지는 네 살 된 아만다 맥크레디를 찾다가 포기한 후였다. 아만다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구 부바에게 동일 전과가 있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줬다. 부바는 시간이 흐른 뒤 응답해 왔다. 켄지가 보여준 세 사람의 거처를 찾은 것 같다고 했다. 그곳에서 켄지는 새뮤얼의 모자를 쓰고 있는 레온을 본다. 아이는 켄지가 찾아가기 45분 전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가라, 아이야, 가라』는 아동 실종을 다루고 있다. 아이들은 한 해에 몇만 명씩 사라지며 대부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아무도 아이들의 행방을 모른다. 전작 『신성한 관계』에서 처단한 게리 글린은 사람 좋은 전직 경찰의 얼굴을 하고 아이들을 죽였다. 그가 죽었기 때문에 몇 명의 아이들을 사라지게 했는지 정확한 통계치를 알 수 없다. 『가라, 아이야, 가라』는 게리 글린들의 의해 사라지는 아이들을 찾기 위한 켄지와 제나로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다. 


  약쟁이로 의심되는 헬렌은(실제 그녀는 대단한 마약 중독자였다. 물론 알코올 중독까지도 포함한다.) 네 살 된 딸 아만다를 두고 심지어 문도 잠그지 않고 친구 집에 텔레비전을 보러 갔다. 그 사이 아이는 증발하듯 사라졌다. 아이가 반항한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아이를 본 이웃도 없다. 골든 타임을 넘기고 있었다. 납치의 경우 하루를 넘기면 생존율은 반으로 줄어든다. 3일이 흘렀고 헬렌의 오빠와 새언니 베아트리체가 켄지와 제나로를 찾아왔다. 이미 경찰이 수사력을 모으고 있음에도 그들은 조카를 찾기 위해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찾아온 것이다. 


  헬렌은 다정한 엄마는 아니었다. 그녀는 아만다를 방치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녀는 마약 거래 현장에 아만다를 데리고 갔다. 심지어 헬렌은 경찰에게 거짓말까지 했다. 아만다가 사라진 시각 그녀는 친구 집이 아닌 필모어라는 술집에 그녀 애인과 함께 있었다. 실마리조차 없던 아만다의 실종 사건은 헬렌이 애인과 저지른 현금 강탈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단서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 겨우 네 살. 무관심이 익숙한 어린아이. 아만다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신성한 관계'까지 나아갔던 켄지와 제나로의 관계는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파탄이 나고 만다. 켄지의 선택에 제나로가 반대를 표하면서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소설은 아동 학대와 방임, 폭력을 다루면서 우리가 매 순간하는 선택의 문제가 옳은지 묻는다. 아만다 실종 사건 배후에는 법을 초월한 선택을 하려는 어른들의 욕심이 있었다. 아동을 학대하고 방임해도 친권을 가져올 수 없다. 심지어 아이를 죽여도 단기형을 살고 다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어른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할 것인가 『가라, 아이야, 가라』는 집요하게 물어 온다. 


  실종 아동을 찾는 추리 소설을 읽으며 가슴이 찢어지다니. 주인공이 울 때 같이 울어 버리다니. 독자의 마음을 이토록 아프게 만들다니. 데니스 루헤인은 소설이 무엇인지 아는 작가이다. 장면의 전환이 빠르고 이야기를 뒤집고 비틀면서 독자의 마음까지도 쥐락펴락하는 천재다. 『가라, 아이야, 가라』의 결말의 켄지가 헬렌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이 세계는 바뀌지 않을 것임을 그래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마음이 찢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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