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바라는 기도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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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렌 니콜스의 의뢰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순진하게만 볼 것 같은 여인 카렌의 의뢰는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의 스토킹을 멈춰 달라는 것이었다. 양말도 다려 입을 것 같은 여자. 자신이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의뢰를 한다는 것에 미안함을 가진 여자. 켄지는 그의 친구 부바와 함께 일을 처리한다. 제나로는 전작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선택의 문제 때문에 켄지와 결별한 상태다. 전직 군인, 지금은 무기 거래상. 얼굴은 동안에 덩치는 거대한 친구 부바는 카렌의 스토킹남 코디 포크를 만나 총알이 없는 총으로 잔뜩 겁을 준다. 그 와중에도 코디는 자신은 절대 카렌의 차를 망가뜨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켄지는 그 말을 흘려듣는다. 


  카렌은 일의 보수로 수표를 보내온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수표를 보내온 지 6주 후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휴가를 떠나는 켄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켄지는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카렌의 쉰 목소리를 듣는다. 그게, 무슨 문제가 있으니, 자신에게 전화 한 통 걸어 달라는 말이 담긴 전화였다. 밖에서는 여자친구가 클랙슨을 누르고 있고 켄지는 휴가를 다녀온 뒤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녹음을 지운다. 


  그 후 켄지는 전화 거는 것을 잊어버렸다. 길이 막히고 차 뒤쪽에는 술 취한 범죄자가 있는 상황에서 켄지는 카렌 니콜스가 26층 건물에서 뛰어 자살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도시에는 카렌 니콜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쉰 목소리로 전화 한 통을 부탁했던 그녀였다.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 켄지는 한 번 사건을 해결한 죽은 의뢰인의 사건을 파고 들어간다. 카렌을 스토킹 한 코디 포크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쫓아다닌 건 맞지만 카렌의 차는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말을. 그리고 켄지는 카렌의 전화 부탁에 응했어야 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차분하고 아름답고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어둠이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자였다. 미래는 밝고 희망차고 원하기만 하면 모든 걸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불과 6개월 만에 인생을 끝장낸 것이다. 켄지는 그녀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그녀 주변을 조사해 들어간다. 자신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미안함의 표현이기도 했다.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이 철저하게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연이었고 사고였다. 목격자가 존재하고 증언이 있었다. 카렌의 애인 데이비드 워터로가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면서 그녀는 무너졌다. 켄지는 교통사고 역시 조작된 것임을 밝혀 낸다. 사막에서 비가 내리기를 바라며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카렌은 타인은 모르는 자신만의 두려움으로부터 구원받고 싶어 했다. 그것은 끔찍이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26층으로 올라가던 한 여인의 머릿속에는 생을 끝장내는 것이 아닌 간절히 살아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날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러 상대와 통화를 했었더라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한 수사는 인간의 잔혹한 욕망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죽음으로 고통을 끝낼 수 없다. 고통은 끝까지 생을 살아내는 사람만이 끝낼 수 있다. 구원의 기도는 우리의 삶이 끝날 때 비로소 하늘에 가닿는다. 비는 그때서야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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