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드롭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가끔이 아닌 자주 혼자라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도 혼자.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더 드롭』의 주인공 밥처럼 생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건 우리가 아닌 나다. 나 혼자 무거운 삶을 끌고 간다. 사촌 마브의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밥은 사회성이 부족하다. 우리 식대로 이야기하자만 그렇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대화에 끼지도 않고 엄마와 살았던 집에서 엄마가 쓰던 물건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밥. 다른 식대로 본다면 그는 혼자가 아니다. 커다란 지하실이 있고 사라진 리치 휠런을 추모하는 자리의 사람들에게 공짜술을 주기도 한다. 


  성탄절이 지난 이틀 후 밥은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한다. 개를 발견한 시점부터 그는 혼자가 아니다. 강아지는 피투성이가 된 채 쓰레기 더미 아래 깔려 있었다.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밥은 복서 종이라고 착각한다. 쓰레기통 주인인 나디아가 나와 강아지는 인기 없는 종인 핏불이라고 알려준다. 얼어붙은 추위 속에 버려진 강아지와의 만남은 밥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안내한다. 목에 상처가 있는 나디아는 강아지와 밥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결국 강아지를 때린 주인에게 돌려보내지리라는 나디아의 말을 들은 밥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혼자 살았다. 사촌 마브의 바가 어떤 곳인지 알면서도 묵묵히 바텐더 일을 했다. 도시의 온갖 더러운 돈이 모여드는 곳. 실제 마브의 바는 그가 주인이 아니다. 어느 갱단이 운영하고 있으며 마브는 이름만 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들과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음에 안도하는 밥. 사람들은 밥을 궁금해 하기는커녕 호기심만을 보일 뿐이다. 물과 공기가 발견된 곳. 우주에서 보면 한없이 푸른 별 지구에서 밥은 고독을 탐하는 여행자로 살아간다. 


  개에게는 로코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독신자와 순교자의 수호성인 그리고······개의 수호성인'이라는 뜻의. 나디아의 도움으로 로코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사면서 밥은 희열을 느낀다. 누군가를 위해 돈을 쓴다는 행위를 처음 해보는 것이다. 지하실 깡통에 돈을 모을 줄만 알았던 밥이었다. 로코가 엄마의 카펫에 똥과 마룻바닥에 오줌을 쌀 때 당황하지만 이내 괜찮아라고 말한다. 밥은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일이 괜찮은 사람. 


"누구나 상대한테 얘기하고 싶어 해요. 뭐든 자기 얘기를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는 거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정체를 보여 줄 때가 되면, 찔끔 움츠리고 말아요, 나디아.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더 많이 떠들어 위장하는 겁니다. 해명이 불가능한 일을 해명하려는 거예요. 그다음엔 다른 사람에 대해 심하게 떠들어 대요. 도대체 말이 됩니까?"

나디아의 미소가 작아졌다. 호기심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내면으로 숨어든 것이다. 

"잘 모르겠어요."


  밥은 나디아에게 당신 흉터니까 얘기하고 싶을 때 해도 된다고 말한다. 나디아는 밥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신원을 먼저 확인했다. 얼굴 사진을 찍고 사람들이 그를 아는지 보려고 전송한다.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될 때 비로소 안심한다. 지구별은 이제 서로를 믿지도 의지하지도 못하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안전하다고 느끼면 눈짓을 주고받고 악수를 한다. 혼자로 살아가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인 셈이다. 만남에 서툴고 이별은 힘들다. 나디아는 과거와 제대로 이별하지 못해 두려움 속에서 현재를 살아간다. 밥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과거를 로코라는 이름의 강아지와 함께 지워 보려 한다. 


  돈과 욕망에 눈먼 사람들이 밥을 괴롭히고 이용한다. 밥은 스스로를 지켜낸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개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삶이 더러운 쓰레기통으로 떨어질 때 그곳에는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낑낑대는 존재가 있었다. 추락은 죽음이 아닌 삶의 시작이었다. 밥과 로코, 나디아 모두에게 말이다. 검은 돈이 흘러들고 그 돈을 차지하려는 더러운 욕심이 쌓이는 새벽 2시, 나는 문을 닫고 그곳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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