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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평점 :
나는 바쁜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빵 구워 먹고 사과도 깎아 먹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빨래를 걷고 갠다. 밤에 읽은 책을 이어서 읽고 다 읽으면 책상에 앉아 리뷰를 쓴다. 보일러를 틀지 않는 대신 커튼을 쳐 놓고 햇빛이 들어오게 한다. 시간이 흐르면 실내 온도가 0.5도 정도 올라가 있는 걸 볼 수 있다. 신간이 나왔는지 확인하고 장바구니에 넣어 놓는다. 희망 도서로 신청해 놓은 책이 들어왔다는 문자가 가장 반갑다.
일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정리한다. 매일 일기를 쓰고 이삼일에 한 번씩 가계부 정리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도 알아야 하겠기에 유튜브를 보다가 책을 읽으러 방으로 들어간다. 잠이 올 때까지 책을 읽는다. 와우. 바쁘다. 바빠. 모임이나 만남 약속은 되도록 잡지 않는다. 주말에는 집에만 있다. 혼자 있어도 좋다. 혼자 있어서 좋다. 이병률의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는 나를 위한 맞춤 책처럼 느껴진다. 시인이기도 한 이병률을 산문집 『끌림』을 통해 처음 알았다.
생일 선물로 받은 그 책을 읽으며 마음이 울렁거렸다. 흑백과 컬러로 찍은 여행 사진을 보며 여기가 아닌 거기를 꿈꾸곤 했다. 부랴부랴 시집을 사서 읽으며 좋은 글에 대해 생각했다.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는 지금은 그때보다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나이를 먹었고 사는 곳을 옮겼다. 이러다 책에 치이지 않을까 걱정하며 종이책을 정리했다. 전자책 리더기를 사서 책을 읽고 있다. 사진이 있는 책을 읽을 때에는 모든 풍경이 흑백으로 다가온다.
『혼자가 혼자에게』에는 이병률이 직접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여전히 그는 섬세하고 따뜻한 풍경을 담는다. 컬러 사진일 텐데 전자책으로 읽기에 흑백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당신이 혼자임을 외로워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는 글과 함께. 그는 일상에 지칠 때면 여행을 떠난다. 낯선 세계로 도착하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중국 상해에 가서 요리를 배우고 불가리아의 어느 도시를 걷다가 칼을 사곤 한다.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은 분명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어떻게 혼자인 당신에게 위기가 없을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막막함으로부터 탈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닥쳐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 외로움 앞에서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써야 한다.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中에서)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걷는 것도 싫어하는 나는 여행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늘 그랬듯 집 안에서 혼자 바쁘고 즐겁겠다. 낯선 나라의 공기와 바람, 풍경의 상념이 가득한 책을 읽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겠다. 『혼자가 혼자에게』에서 만난 여행의 기억은 나를 지구 밖으로 데리고 간다. 이 세계에서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당신이 쓴 글과 찍은 사진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져 내 방으로 도착했다. 그 인연으로 혼자인 우리들이 손을 잡는다.
차가운 나의 손은 이내 온기로 뒤덮인다. 새벽으로 달려가는 시간에 늘 들었던 라디오 방송이 있었다. 디제이의 물기 묻은 음성으로 듣는 사연과 하루에 대한 단상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방송의 라디오 작가가 이병률이었다.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으며 안 사실이다. 인연이라는 거창한 말을 쓰기 민망하지만 왜 당신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흔들렸는지 이해가 간다. 이름도 몰랐던 누군가로부터 위로받았고 이제는 위로의 출처를 알아서 기쁜 혼자의 시간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