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평 반의 우주 - 솔직당당 90년생의 웃프지만 현실적인 독립 에세이
김슬 지음 / 북라이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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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그 집을 계약한 건 햇살 때문이었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방 있음'이라는 전단지를 보고 전화를 걸고 찾아갔다. 노부부가 사는 집이었다. 대문을 들어가면 방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었다. 방 하나 부엌 하나. 화장실은 공동으로 써야 했다. 나는 운 좋게도 집의 가장 안쪽으로 노부부가 사는 옆집을 소개받았다. 아무래도 혼자 사는 건 무서우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 살면 보호를 좀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오후에 보러 갔는데 방 전체에 햇살이 들어와 있었다. 환했다. 애매한 위치에 기둥이 있긴 했지만 밝고 환하다는 것. 무엇보다 월세가 싸다는 것. 이사 올게요. 그러나. 이사 오고 나서야 알았다. 그 집은 서향이었다. 내가 간 시간이 오후라서 그렇게 환하게 햇살이 쏟아질 듯 들어올 수 있었다. 서향은 피해야 한다는 걸 그 집에 10년 살면서 알게 되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서향.

김슬의 『9평 반의 우주』에서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대학을 가기 위해 올라온 서울에서 김슬은 다양한 집을 만난다. 기숙사. 언덕 위의 집.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난방이 되지 않는 집. 겨울에 보일러가 터져 이구아수 폭포를 눈앞에서 보여주는 집. 화장실이 깨끗한 집을 찾다가 장판과 도배가 잘 되어 있는 집을 덜컥 계약했는데 보일러 선이 듬성듬성 깔려 있었다. 결로 현상이 심해 곰팡이와 살기도 했다. 이야기의 각 장마다 독립 생활자로서 사회 초년생에게 들려주는 당부의 말이 웃프다.

90년 생이면 올해 서른 살이다. 세상에 아파트 천지인데 내 몸 하나 누일 공간은 없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서울에 내 명의로 그 나이에 집을 갖기란 요원한 일이다. 김슬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 나간다. 『9평 반의 우주』는 현실적인 집 구하기 요령과 세상 풍파에 지치지 않고 나만의 행복을 찾는 소소함이 담겨 있다. 과일을 많이 먹고 집을 구하러 갈 때는 공인 중개사의 차에 타지 않고 걸어가 보라고 한다.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며 우주를 꾸려간다.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 독립이 주는 즐거움. 어른의 품격. 동네 친구가 들려주는 고민 같은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끄덕. 『9평 반의 우주』에서 인상 깊은 일화는 이렇다. '산뜻한 어른이 되기 위한 생활신조!'를 밝히며 들려주는 아이유의 생활신조. '첫째, 나는 행운아다. 둘째, 들뜨지 말자. 셋째, 일은 적을수록 좋다.' 서른이 되었다는 자각과 함께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밀려오는 허무함을 김슬은 유쾌하게 풀어난다. '청첩장을 받으면 식장의 정체를 잘 확인'하라는 사회 초년생을 위한 교훈까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충고가 아닌 실패를 반복한 이가 들려주는 망한 이야기이다. 그때는 망했지만 지금은 망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음에 행복해한다. 과일을 많이 먹으면 행복해진다고 하네요, 여러분. 꼭 요리해서 밥을 챙겨 먹지 않아도 되고요.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살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도 나의 우주에서 꿈을 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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