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창문 - 2019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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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를 정리했다. 이사 오기 전 버리고 오자던 물건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거야라는 말로 가득한 곳. 쓰지 않지만 쓸 예정인 물건들. 짝이 없는 양말을 버리지 못했고 내복 몇 벌을 꺼내서 물에 담가 두었다. 가볍게 살아야지. 없으면 없는 대로. 그 마음을 먹자마자 쇼핑 앱을 열어 곧 떨어질 화장지를 사려고 검색하는 나.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이런 마음은 대체 왜 자꾸만 휘발되는 걸까.

편혜영의 소설 「호텔 창문」에는 죽음에 대한 죄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인물이 있다. 어느 여름날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려다 죽은 사촌 형의 죽음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는 '나'. 큰어머니는 '나'가 자라고 어른이 되어갈 때까지 형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형의 제삿날 큰 집에 찾아가야 하지만 불이 난 호텔을 바라볼 뿐이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남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수상작인 편혜영의 「호텔 창문」은 그런 소설이다. 이 삶은 내게 무얼 요구하는가를 집요하게 묻는. 매일 한 편씩 읽어 나갔다. 7명의 작가의 7편의 소설. 하루는 길기도 짧기도 한 애매한 시간이니까.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새로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할지를 모르는 김금희의 「기괴의 탄생」. 관계란 헐겁고 사소한 추측으로도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을 매개로 친해진 진아/지나 씨와의 한 시절을 회상하는 최은미의 「보내는 이」에서도 야속한 관계의 속상을 그린다.

이주란은 처음 읽는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속 이모와 조카, 엄마의 관계가 내내 이어지기를 바란다. 파트너의 친구에게 선물할 800리터 냉장고를 결제해야 하는 「자정 무렵」에서 김혜진은 사회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관계의 붕괴를 염원한다. 「여자아이는 자라서」 어떻게 될까. 조남주는 그 미래가 여전히 어두울 수 있음을 전망한다. 내게 이 삶은 무엇일까. 삶을 쓰려다 사람이 되었다. 지우지 않고 써 보면. 내게 이 사람은 무엇일까. 삶과 사람의 의미를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에 담긴 소설은 물어온다.

다시 창고 이야기로 돌아가면 언젠가는 써야지 하는 물건과 계절이 바뀌면 써야 할 물건이 있다. 내일을 위한 마음이 있다. 충실함보다는 성실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물건은 잘 버리지 못하지만 관계는 다르다. 맺고 끊어야 할 때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삶과 사람에 대해 물어온다면 이렇게 말한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게 좋은 거였네요.'(「한 사람을 위한 마음」)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해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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