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단련 - 이슬아 산문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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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쓴다, 와는 다른 어감이다. 쓴다와 써야 한다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전자는 쓰는 주체는 나이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개념이고 후자는 다른 외부적인 요소들이 쓰는 주체를 몰아붙인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누구나 일상을 살아가지만 누구도 일상을 쉽게 살아가지는 못한다. 그 안에는 자신이 정한 수많은 규칙이 존재하고 그걸 지키기 위해 애를 쓰는 자신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이슬아는 그걸 해낸다. 명목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한 것이었지만 평소 자신을 단련하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메일로 쏴준다. 말 그대로 글을 쏴주는 일. 한 편당 500원의 글은 와이파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날아간다. 6개월 연재를 했더니 빚을 다 갚았더란다. 빚을 갚고 빛을 얻었다. <일간 이슬아>는 그렇게 시작되고 글이 좋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대단한데 독립 출판까지 해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발행한다. 동네 서점에 입고한 책은 또 좋다는 소문이 나서 1만 부가 팔린다. 대형 서점에도 납품하고 싶어서 그는 사업자 등록을 하고 통장을 개설하고 엄마 복희를 직원으로 써서 '헤엄 출판사'를 차린다. 나 같은 허약한 인간이 보기에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다. <일간 이슬아>는 <인간 이슬아>라고도 잘못 알려져 있다고도 하는데 '인간 이슬아'는 대단한 사람이다.

『심신 단련』은 <일간 이슬아> 시즌 2의 연재분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은 나는 <일간 이슬아>의 독자는 아니지만 책을 부지런히 읽기에 『심신 단련』은 읽을 수 있었다. 단순하게 감상을 말하자면, 좋았다. 미슬아(미래의 이슬아)를 위해 과슬아(과거의 이슬아)가 청소를 해놓고 자이언트 우먼을 찾아가 트레이닝을 받고 보증금과 월세의 상관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추억 여행을 하는 심심하지만 어찌 보면 익사이팅 한 일상의 단면을 그리는 글이, 좋았다.

이런 건 나도 쓸 수 있겠네 하는 책이 이제는 훌륭한 책이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과거의 허술하고 허세 가득한 나는 난해하고 현학적인 잘난척하기 좋은 책들만을 읽으며 누군가 들을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읽고 그걸 추천하고 나는 이런 걸 읽기 때문에 잘난 사람이야, 재수 없는 애였다. 안다, 이제는. 나도 쓸 수 있겠네 하는 책은 나는 쓸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을. 쉽게 쓰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집과 몸, 마음, 돈, 우정에 대한 진지하고 솔직한 이야기가 『심신 단련』을 채운다. 돈 이야기를 하는 이슬아 편이 유쾌했다. 대리 만족까지 느껴야 했다. 그래서 얼마 줄 건데요?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돈 이야기라는 걸 모른척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위를 차지하고 있다. 프리랜서로서 살아가는 이슬아. 이 행사의 취지는 무엇이고 어떤 부분을 확장한 것인지를 말하면서 돈 이야기는 하지 않는 메일에 정확한 돈의 액수와 지급일을 물어보는 이슬아.

등단을 못한 것이지 안 한 게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이슬아. 재택근무자로서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하고 운동하고 책을 읽고 낮잠을 잔다고 한다. 자신의 책에 추천사를 써주는 금정연에게 원고를 받기도 전에 원고료를 입금해서 금정연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자신의 일에 대한 통찰과 반성을 하게 했단다. 그래서일까. 금정연의 추천사는 훌륭하다. 왜 그런지는 직접 읽어보시길.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낄 줄 안다는 충만한 느낌을 『심신 단련』으로부터 받았다. 모든 글의 핵심은 쓰는 나를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할 것인가로 나온다. 수필로 소통되는 이슬아의 글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이슬아의 이야기가 있다. 그중에서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가 아닌 쓴다는 마음으로 책상을 향해 걸어가는 이슬아를 응원한다. 괜찮은 척하는 나가 아닌 괜찮은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을 읽는 일은 소중하다. 『심신 단련』이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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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입자 - 청소년 테마 소설 문학동네 청소년 40
김리리 외 지음, 유영진 엮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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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갯빛 소설이 여기 모여 있다. 사랑을 테마로 쓰인 일곱 편의 이야기는 누구라도 읽어도 좋다. 『사랑의 입자』는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애만 태우던 그 시절의 나를 사랑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던 과거의 나를 만나게 해준다. 혜성이 지나가는 밤에 말하지 못한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사기당한 누나를 위로하는 일찍 철이 든 소년의 애틋함이 있다.

아주 먼 미래를 그린 소설에서도 사랑은 따뜻하고 빨갛고 짠하게 그려진다. '뭔가 달라 보여'라고 느끼는 순간, 사랑이 찾아왔음을 알아챈다. 친구의 거짓말을 이해하려는 순수함. 엄마, 아빠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현재를 사랑한다. 태어나자 버려졌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을 닫고 살다가도 주변을 돌아보면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은 섬처럼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이 있어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안심할 수 있다고 『사랑의 입자』는 말한다. 공부, 성적, 대학, 입시, 친구, 부유함, 눈치 보기, 주눅 들지 않는 것…. 신경 쓰고 챙길 게 많은 아이들. 몸은 아직 자라지 않았지만 마음은 크고도 깊어졌다. 이해시키고 강요하려고 하기 보다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사랑은. 어리다고 너는 아직 세상을 모른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책을 읽는다.

전삼혜의 「모르는 이야기」의 주인공 소년은 한 가지로 보이는 색깔을 수백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 그냥 빨간색이 아닌 다양한 감정을 담은 빨간색으로 보는 것이다. 말하지 못하는 소년이 볼 수 있는 세상의 다양한 감정의 빛깔.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말이 아닌 기분과 태도를 느끼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미처 표현하지도 못한 채 친구를 떠나보낸다면? 「우주 소녀」는 거짓말일지도 모를 친구의 이야기를 믿기로 결심하는 아이가 나온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어주는 소설의 결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를 오해하기는 쉽다. 이해하기 귀찮아서 오해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을 탐지해내는 능력을 찾아가는 것. 가시광선의 끝에는 환하게 빛나는 무지개가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고 하늘 한 편에 나타나는 무지개. 일곱 가지 색깔의 사랑을 찾아 떠나는 『사랑의 입자』의 여정에 너와 함께 하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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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도시 이야기
최정화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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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가 있다. 중앙 국가로부터 폐쇄 조치를 받은. L시. 아이들이 실종되고 온몸이 하얀 가루로 변하는 전염병이 도는 그곳. 손목이 떨어져 나가고 다른 이에게 전염이 되면 병이 낫는다. 다기조라고 불리는 전염병이 도시를 점령했다. 타인에게 옮겨간 후에야 바이러스는 사라진다. 사람들은 그 점 때문에 다기조를 두려워했다. 최정화의 『흰 도시 이야기』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L시를 배경으로 슬픔의 서사를 펼쳐 나간다.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나'는 근무 점수가 낮아 교역소로 발령을 받는다. 다기조 감염이 의심되는 부부를 만난 기억을 시작으로 '나'는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중앙 국가는 L시를 다기조 발병 지역으로 보고 은밀히 폐쇄 조치를 취한다. 다기조에 걸리고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벌이는 '흰개들'은 중앙 국가가 L시를 의도적으로 폐기하는 시도를 한다고 주장한다.

신체가 떨어져 나가고 온몸이 각질로 뒤덮이며 기억을 잃어간다. L시에 사는 주민들은 두 가지로 분리된다. L시 안에서 손목이 떨어지고 다른 이에게 다기조를 전염한 주민이 있고 모래 마을이라는 곳에서 다기조를 그대로 앓는 주민이 있다. 『흰 도시 이야기』는 전염병이 퍼지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염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증세는 어떤 사건으로 시작 되었음을 암시한다.

최정화는 전염병 서사 아래에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을 가지고 들어온다. '나'는 아이를 잃었다. 고요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와 살았고 사고에 의해 아이를 잃었던 기억을 병 때문에 잊어버렸다. '나'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L시를 벗어난다. 교역소에서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모래 마을에 아직 아이들이 있음을 알고 그곳으로 간다. 자신의 아이 고요의 흔적을 찾아가면서 '나'의 기억은 열린다.

슬픔으로 가득한 도시가 있었다. 중앙 정부는 그곳이 슬픔의 발원지라 여기고 이상한 소문으로 도시를 봉쇄했다. 죽음은 우연한 사건으로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인과 관계가 없다고도 했다.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고 했지만 입들을 막았다. 소설가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사진을 받고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위로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 『흰 도시 이야기』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쓰인 소설이다.

"그 사람이 모래마을 사람이 아니면, 그러면 안도해도 되는 건가요? 어차피 그 일은 일어나버렸는데, 모래마을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가 개죽음을 당한 거예요. 그건 안도할 일이 아닌데, 나는 안도하겠죠. 그게 누구를 위한 안도인지, 생각해봤어요?"
(최정화, 『흰 도시 이야기』中에서)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누구도 안도해서는 안 된다고 『흰 도시 이야기』는 말한다. 다기조는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시작되었다. 국가는 그걸 모르지 않았고 L시를 폐쇄하는 것으로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도시는…. 아이와 함께 했던 기억을 그 도시의 사람들은…. 슬픔에 사무쳐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 몸이 바스러지는 걸 겪으면서도 살아 나간다. 왜 사는지조차 잊어가면서.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과연 L시를 떠나는 것으로 이 치유할 수 없는 슬픔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까. 세계의 모든 곳이 L시가 되어가는 걸 막기 위한 탈주를 보여줌으로써 『흰 도시 이야기』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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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살던 별 문학동네 청소년 36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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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럴 거야? 이렇게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한 거 맞지? 난 몰라. 읽으면서 울어도. 눈이 퉁퉁 부은 채 잠들어도. 난 몰라. 그래도 읽어보면 좋겠어. 내 진심이야. 세상에 다시는 없을 것 같은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도 하거든. 김선정의 『멧돼지가 살던 별』이라는 책이야.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알잖아, 책이란 나이의 경계를 간단히 무너뜨리게 한다는 걸.

있잖아. 그거 알아? 일하러 가지 않는 주말에 눈이 일찍 떠진다는 거. 오늘은 토요일인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어. 아, 오늘은 쉬는 날인데. 다시 잠들 수도 있었지만 내 머리맡에는 『멧돼지가 살던 별』이 놓여 있었어. 표지가 예쁜 책이라 선물 받고서 당장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 하지만 어른이인 나는 일도 해야 하고 자잘한 정리 정돈도 해야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기도 해야 하니까. 일단 표지를 쓰다듬고 놓아두었어. 나는 책을 소중히 여겨.

내게 처음 온 책은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읽으려는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해. 멧돼지가 위에 있고 그 아래 지구로 추측되는 별에 사람과 기차, 집이 알록달록 예쁘게 그려져 있는 『멧돼지가 살던 별』을 토요일 오전에 읽기 시작했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버렸어. 지하철역에 잘못 내려온 멧돼지를 유림이가 만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돼. 유림이는 음, 그러니까 슬픈 아이야. 엄마는 없고 엄격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이 아버지 정말 나빠. 너도 읽어보면 알게 될 거야. 어른만 아니라면…. 뒤에 말은 생략할게.

유림이가 지하철역에서 멧돼지 산바를 만난 날은 아버지한테 맞아서 입안이 헐고 피가 딱지처럼 붙어 있어 마스크를 쓰고 있었어. 전철은 들어오는데 산바는 꿈쩍도 안 했어. 유림이가 산바를 보고 이렇게 말해. "그러다 죽어." 산바는 그 말을 알아듣고 씨익 웃으며 진짜야 씨익 웃었다니까 웃으며 다시 산으로 올라가. 그렇게 둘의 고요하고도 이상한 만남은 시작되지. 유림이는 말이야. 열다섯인데 초등학생처럼 보여.

맞아. 못 먹어서 키가 작아서 그래. 학교를 다녔는데 아버지가 가지 말라고 해서 집에서 명심보감을 쓰면서 지내. 명심보감 다섯 장을 써야 하는데 못 쓰면 맞아. 밥을 먹다 반찬을 흘리면 맞아. 쩝쩝대고 먹는다고 맞아. 설거지를 안 해놨다고 맞아. 빨래를 못 갠다고 맞아. 유림이는 매일 맞아. 친아버지한테 말이야. 여섯 살부터 계속 그랬어. 아무도 그런 유림이를 구해주지 않았어. 누군가 유림이에게 관심을 가질만하면 아버지 홍기수가 나서서 화를 내고 도망치듯 유림이를 데리고 숨어버려.

그런 유림이 앞에 멧돼지 산바가 나타나. 잘못 맞아서 이가 부러져 치과에 가는 길에 우연히 '겨울 서원'을 알게 되지. 그곳에서 주호와 화신을 만나. 유림이는 생각하지.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다고. 체념하면서 살아갔어. 『멧돼지가 살던 별』은 말해. 너의 삶을 네가 포기하게 두지 말라고. 세상은 아름다운 연대로 가득하다고 말이야. 유림이를 도와주고 세상 밖으로 끌어내주는 건 산에 사는 멧돼지였고 피도 섞이지 않은 완벽한 타인인 주호와 화신이었어.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은 없어. 아름답고 행복한 결말만을 간직한 동화 속 세상은 없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지구별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기억해. 동화 속 세상보다 지구라는 작은 별이 더 소중해질 날이 올 거야. 책을 읽다 보면.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었어. 그 이유는 책을 읽으며 지냈기 때문이야. 『멧돼지가 살던 별』에는 울지 않는 그래서 꼬옥 안아주고 싶은 사람들이 등장해. 너의 삶이 어떤 모습이든 너는 후회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랄게. 상처가 있다면 혼자 아파하지 마. 산바, 주호, 화신 그리고 유림이가 너의 곁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줘.

사랑해. 너와 내가 살아갈 지구별의 모든 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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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
윤이나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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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필요했다. 더불어 희망도. 받고 미래까지. 쓰고 보니 터무니없다는 생각도 든다. 용기, 희망, 미래라니. 물성이 없는 이 말들은 자칫 사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현실에서 이런 말을 주절거리는 이를 만난다면 피하고 볼 일이다. 책은 다르지 않지 않나. 책 표지에 용기, 미래, 태도, 고취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책이라면 말이다. 윤이나의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는 '내리막에 익숙한 밀레니얼을 위한 용기 고취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는다.

뭐든지 규정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밀레니얼 세대'는 다름 아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일 터.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를 쓴 윤이나까지. 밀레니얼들은 어디에든 존재한다. 2000년 즈음에 성인이 된 사람들. 용기를 가지기도 전에 IMF가 와서 용기를 가져가 버리고 희망을 찾기도 전에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나 희망을 빼앗긴 세대.

한없이 가난해질 수도 한없이 부자가 될 수도 있는.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윤이나는 1983년 생으로 선배 밀레니얼에 속한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사교육 없이도 들어갈 수 있던 아슬아슬한 선배 밀레니얼이다. 졸업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정규직 일자리는 얻지 못했고 말이 좋은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각종 매체에 글을 쓰고 서른이 되던 해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얻어 떠났다.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출산은 미래 계획에 없다. 현재 나 자신이 즐거운 삶으로 미래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는 밀레니얼 세대란 이렇고 저렇고 하는 특징적인 성격을 체계적인 분석과 수치로 정의하, 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가진 현실적인 어려움이 어디에서 기인했고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윤이나만의 담백한 시선으로 풀어 놓는다. 결혼, 출산, 취업에 관한 산뜻하고도 눈치 보지 않는 관점이 좋았다.

평등보다는 공정으로 밀레니얼이 겪는 문제를 이겨내자고 말한다. 우리의 문제를 미래를 볼모로 잡고 우리를 위협하는 기성세대에게 맡겨 놓는 게 아닌 '우리가 미래가 되어 가자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여러 부분에 책갈피로 표시해 놓았다.

그러니까 '남들 다 하는 결혼을 안 하면 대체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애초에 잘못됐다. 결혼을 안 하면 무엇을 하느냐면, 살던 대로 산다.

지금도 여전히 주변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겠냐고,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다. 서른 중반이 되어 내가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사실은 삶은 대개 불안하다는 것이다. 남편도, 결혼이라는 계약도 내가 가진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할 것이다. 내 불안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인 복지 안전망과 경제적 안정으로 해소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미래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그 미래를 쓰는 과정에 있다는 것뿐이다. 이 말은 결국 우리가 빛을 향해 걸어갈 때에만 이 어둠을 벗어난 빛 속의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일 테다.
(윤이나,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中에서)

이사를 다니면서 커튼은 포기하고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삶. 영화 <소공녀>의 이야기를 빌어 우리가 어떤 선택에 의해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 아닌 능동적인 선택으로 삶의 방향을 조정해 나갈 수 있다는 부분에서 격하게 공감했다. 커튼을 달지 안 달지를 오랫동안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튼 대신 얇은 이불을 압정으로 꽂아 놓고 10년을 살다가 책과 함께 그 방을 나왔다. 우리는 다른 공간에서 비슷한 밀레니얼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생기는 선택의 문제.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다른 세대 보다 더 많은 선택의 문제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자. 선택으로 포기되는 기회비용이 많아 미래 따윈 개나 줘 버려 라면서 울 수도 있겠지만 실체 없는 미래 따위에 기대지 말자. 각자 살도록 하되 문제가 생기면 서로와 우리를 찾으면서 미래가 되어 보는 것이다. 위로 올라가기 보다 앞으로 걸어나가자고 말하는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는 그토록 찾고 싶었던 미래란 여기 있는 '나'라고 알려준다.

알죠? 파랑새가 어디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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