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도시 이야기
최정화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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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가 있다. 중앙 국가로부터 폐쇄 조치를 받은. L시. 아이들이 실종되고 온몸이 하얀 가루로 변하는 전염병이 도는 그곳. 손목이 떨어져 나가고 다른 이에게 전염이 되면 병이 낫는다. 다기조라고 불리는 전염병이 도시를 점령했다. 타인에게 옮겨간 후에야 바이러스는 사라진다. 사람들은 그 점 때문에 다기조를 두려워했다. 최정화의 『흰 도시 이야기』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L시를 배경으로 슬픔의 서사를 펼쳐 나간다.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나'는 근무 점수가 낮아 교역소로 발령을 받는다. 다기조 감염이 의심되는 부부를 만난 기억을 시작으로 '나'는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중앙 국가는 L시를 다기조 발병 지역으로 보고 은밀히 폐쇄 조치를 취한다. 다기조에 걸리고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벌이는 '흰개들'은 중앙 국가가 L시를 의도적으로 폐기하는 시도를 한다고 주장한다.

신체가 떨어져 나가고 온몸이 각질로 뒤덮이며 기억을 잃어간다. L시에 사는 주민들은 두 가지로 분리된다. L시 안에서 손목이 떨어지고 다른 이에게 다기조를 전염한 주민이 있고 모래 마을이라는 곳에서 다기조를 그대로 앓는 주민이 있다. 『흰 도시 이야기』는 전염병이 퍼지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염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증세는 어떤 사건으로 시작 되었음을 암시한다.

최정화는 전염병 서사 아래에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을 가지고 들어온다. '나'는 아이를 잃었다. 고요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와 살았고 사고에 의해 아이를 잃었던 기억을 병 때문에 잊어버렸다. '나'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L시를 벗어난다. 교역소에서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모래 마을에 아직 아이들이 있음을 알고 그곳으로 간다. 자신의 아이 고요의 흔적을 찾아가면서 '나'의 기억은 열린다.

슬픔으로 가득한 도시가 있었다. 중앙 정부는 그곳이 슬픔의 발원지라 여기고 이상한 소문으로 도시를 봉쇄했다. 죽음은 우연한 사건으로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인과 관계가 없다고도 했다.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고 했지만 입들을 막았다. 소설가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사진을 받고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위로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 『흰 도시 이야기』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쓰인 소설이다.

"그 사람이 모래마을 사람이 아니면, 그러면 안도해도 되는 건가요? 어차피 그 일은 일어나버렸는데, 모래마을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가 개죽음을 당한 거예요. 그건 안도할 일이 아닌데, 나는 안도하겠죠. 그게 누구를 위한 안도인지, 생각해봤어요?"
(최정화, 『흰 도시 이야기』中에서)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누구도 안도해서는 안 된다고 『흰 도시 이야기』는 말한다. 다기조는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시작되었다. 국가는 그걸 모르지 않았고 L시를 폐쇄하는 것으로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도시는…. 아이와 함께 했던 기억을 그 도시의 사람들은…. 슬픔에 사무쳐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 몸이 바스러지는 걸 겪으면서도 살아 나간다. 왜 사는지조차 잊어가면서.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과연 L시를 떠나는 것으로 이 치유할 수 없는 슬픔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까. 세계의 모든 곳이 L시가 되어가는 걸 막기 위한 탈주를 보여줌으로써 『흰 도시 이야기』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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