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누나는 연애중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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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가 돌아왔다. 항상 예의 바르고 자기 주관이 철저한 '내 누나'. 이번엔 남동생과 연애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내 누나는 연애중』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내 누나' 시리즈 3탄인 이 책은 연애, 일상, 관계, 미래의 고민을 그리고 있다. 누나와 남동생이 저녁이 되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현실 남매의 모습에서 웃음과 따뜻함을 만날 수 있다.

내 누나 지하루는 연애 중이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솔직하게 말을 걸기도 하고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법도 가지고 있다. 솔직함이 무기인 내 누나는 연애뿐만이 아니라 일과 관계에 있어서도 가식을 떨지 않는다. 남동생의 고민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사랑스럽다. 단순히 사랑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 그들의 대화는 타인을 이해하는 태도까지도 보여준다.

자신에게 관대하는 대하는 법. 좋은 상사의 조건. 지금 원하고 하고 싶은 것. 좋은 사람의 다음 단계는 무엇. 저녁의 대화 주제치고는 다소 심오할 수도 있지만 마스다 미리는 섬세하고 따뜻함으로 일상을 격려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읽고 있으면 내일의 걱정도 불안도 잠시 잊어버릴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다독이고 사랑하는 법이라고 알려준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일상의 모습은 '작은 행복'이라고도 말한다. 남동생 준페이와 누나 지하루가 살아가는 하루를 엿보면서 나의 일상을 되돌아본다. 나를 향해 웃어주고 초콜릿을 사다 주는 가족. 행복이 무엇인지 의문하다가도 내 곁에서 나를 응원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하루.

지겹게 생각되었던 일상이 그리워지는 요즘, 『내 누나는 연애중』을 읽으며 생각에 빠졌다. 지하루가 하는 말, '직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게는 직장이 있어라고 생각하면 극복할 수 있는 일도 있어!'. 매번 살을 3킬로 정도 빼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디저트를 듬뿍 먹는 지하루. 마음을 다스리는 요령에는 책 읽기, 음악 듣기, 달달한 음식 먹기가 있다.

『내 누나는 연애중』에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위로가 담겨 있다. 재치 있고 위트 있는 현실 남매의 대화를 통해서 지친 나의 마음을 다독인다. 불안한 마음이 들면 심심한 그림을 보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인물이 하는 말을 들으며 긴 호흡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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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밥을 먹고 느슨한 옷을 입습니다 - 우리의 일상 속 생활의 변화를 취재하다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이언숙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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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버리고 생활을 간소하게 살라는 지침이 있는 줄 알았다. 사사키 도시나오의 『느긋하게 밥을 먹고 느슨한 옷을 입습니다』의 제목만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어떻게 하면 생활을 간단하게 살 수 있으려나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나갔다. 시작은 흥미로웠다. 채소를 인터넷 판매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다. 오이식스라는 회사는 농가와 연결해서 소비자에게 택배로 채소를 파는 곳이다.

당도가 높고 맛있는 채소를 경작하는 곳을 찾아가 판매를 부탁한다. 인터넷 판매가 무엇인지 모르는 농부는 일단 거절한다. 오이식스 바이어는 꾸준히 찾아가 설득에 성공한다. 채소를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 판매가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클릭 몇 번으로 유기농 제품을 집까지 받아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가족에게 질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일 수 있는지 고민이 많아지면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느긋하게 밥을 먹고 느슨한 옷을 입습니다』는 안전한 먹거리에서 출발한 간소한 살기의 형태가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를 찾아가는 책이다. 역사적 배경과 책의 인용, 저자의 취재를 통해 음식, 주거, 인터넷의 변화를 서술한다. 세계적으로 부는 미니멀리즘 열풍의 원인을 분석한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단순하게 살아가기의 시작이었다. 많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삶을 속박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저자가 직접 해먹는 간단한 음식 조리법이 실려 있다. 최소한의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집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위로 위로'와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밖으로 밖으로'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피력한다. 대신 타인과의 연결로써 자신을 보호받을 수 있는 '옆으로 옆으로'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한다.

도시에서 전원으로 살기가 유행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전원에서 사는 건 탄소를 다량으로 배출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전원에서는 자동차가 필수품이다. 난방을 하기 위해서는 석유를 더 태워야 한다. 소비를 줄이고자 한다면 산속이 아닌 도시가 더 낫다는 것이다. 통념과 고정관념을 차분하게 반박하면서 '느긋하게 밥을 먹고 느슨한 옷을 입으며' 살아가기를 권유한다.

이렇게 해보세요,라는 지침은 없다. 『느긋하게 밥을 먹고 느슨한 옷을 입습니다』에서는. 미니멀리즘의 현상을 분석하고 발 빠르게 변화에 대응한 사람들의 사례를 취재해 이렇게도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책이다. 유행을 따라가는 게 아닌 유행이 무엇인지 모른 척 살아가는 느긋한 삶.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기보다 내 안의 나가 보내오는 신호에 반응하는 삶. 느긋하게 살기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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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의 세상 문학동네 청소년 43
최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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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봄이 왔다는 걸 실감하지도 못하고 있다. 세상을 잠깐 바깥에 두고 책을 읽는다. 죽은 아들을 저승 문턱까지 데려다주는 이야기. 몸이 분리되어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는 이야기. 붉은 손등을 가진 아이가 자신의 방에서 여러 사람과 대화하는 이야기. 다른 행성으로 공부하러 가다가 도중에 시험을 보는 이야기. 최상희의 소설 『 B의 세상』에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여덟 편의 소설이 담겨 있었다. 나는 『 B의 세상』이 장편 소설인 줄 알고 읽어 가기 시작했다. 「고스트 투어」는 다소 충격적인 결말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유나의 유나」로. 읽다가 조금 이상했다. 앞 이야기는 죽은 아들을 데리고 떠나는 서사였다. 뒤 이야기는 몸이 분리되어 주인공이 하기 싫은 일을 하러 다니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뤘다. 바로 연결은 되지 않았지만 죽은 아들의 과거나 미래의 이야기로 읽었다.

왜 이렇게 황당한 오독을 했던 걸까. 『 B의 세상』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현실과 비현실이 마구 혼재되어 나타난다. 배경은 지구였다가 다른 행성이고 우리나라였다가 외국이기도 한. 자유롭게 시공간을 넘나든다. 육체는 존재하지만 영혼이 희미해진 채 그걸 견디는 아이들이 나온다. 표제작 「B의 세상」은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고발문이 주요 사건으로 등장한다.

학교에서 당한 폭력과 성추행의 내용이 담긴 고발문을 읽고 모두가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쓴 글은 아닐까 하는. 선생 A를 B가 고발한 내용은 모두가 숨겨 놓은 일이었다. 어른들은 A를 감싸준다. 그러한 일로 B들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서글프고 아픈 소설이었다. 외계인이 우리 집에 방문한다면? 이런 상상으로 쓰인 소설 「방문」을 읽고 나면 가슴이 아린다. 모두가 추억하는 얼굴로 외계인이 우리 집에 찾아오는 것이다.

다른 내용과 다른 제목으로 묶인 여덟 편의 소설을 하나의 이야기로 읽게 된 착각에는 『 B의 세상』이 가지고 있는 환상성 때문이었다. 현실의 상처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 B의 세상』에서는 슬프게 보였다. 환상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게도 이곳의 현실은 무참했다. 꿈보다는 좌절을 희망보다는 절망을 먼저 알아버린 고독한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

나의 세상을 잠시 바깥에 놓아두고 있다. 때론 환상이 현실을 압도하면서 격려를 하기도 하니까. 도피는 아니다. 두고 온 세상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환상 속에서 빌어 보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희미해진다고 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희미하게 버텨 본다. 나의 세상이 완전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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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유령들 -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황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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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 년 뒤 어머니가 죽었다. 췌장암이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지 육 개월 만에 죽었다. 그로부터 삼 년 뒤 징의 아버지도 죽었다. 간암이었다. 암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고, 오수 삼촌은 언젠가 곱창을 씹으며 말했다. 농담으로 듣고 피식 웃자 오수 삼촌은 불판 위를 서성이던 젓가락을 테이블에 반듯이 내려놓은 뒤 정색한 채 목소리를 잔뜩 깔고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어떤 시절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죽는다."
(황여정, 『알제리의 유령들』)

농담에는 소질이 없다.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사람이기에 가급적 웃기만 한다. 누군가를 웃기려고 하다가 종종 나 자신이 우스워진 적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는 쓸데없는 소리도 지껄이기도 했는데. 사회에 나와서는 그런 게 허용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안 순간부터는 입을 다문다. 좌중을 휘어잡고 중심에 서기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음식만 축내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황여정의 데뷔 장편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은 사소한 농담 하나로 생긴 일을 그린다. 기분이 좋아져서. 술자리에서 시작한 이야기 하나가 점점 커지고 부풀려진다. 사실을 그리다 보니 허구가 필요했다. 그럴듯한 허구. 네 명의 친구는 연극 대사를 맞춰가며 희곡을 쓴다. 1980년도에 금기시되었던 마르크스의 일화를 빌려온다. 자신들이 희곡을 창작해 놓고 마르크스가 유일하게 쓴 희곡으로 몰아가자, 이상한 농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혁명과 변혁을 꾀했지만 젊은이들은 쉽게 좌절했고 무기력해졌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농담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희곡을 만들어 내어 웃어 보자는 것이었다. 단순한 거짓말이었지만 그럴듯한 허구를 갖다 붙이자 진실이 되어 버렸다. 『알제리의 유령들』에는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이 등장한다. 연극을 사랑한 네 명의 젊은이가 각자의 언어로 만들어낸 희곡.

그렇지만 『알제리의 유령들』을 쓴 사람에는 그들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 붙는다. 마르크스가 쓴 유일한 희곡이라는 이야기로 주변 지인들에게 퍼져 나간다. 네 명 중에 두 명이 속한 독서회 모임이 발각되면서 『알제리의 유령들』은 문제가 되었다. 그 희곡은 마르크스가 쓴 게 아니라고 말해도 수사관은 믿지 않았다. 고문을 당했고 시간이 지나 그 사건은 무죄가 되었지만 네 젊은이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알제리의 유령들』은 엄혹한 8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이후를 그린다. 책을 읽고 연극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꿈은 좌절되었고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부모 세대의 아픔과 그것을 목격한 자식의 현재를 네 개의 이야기로 그려낸다. 각각의 이야기를 모으다 보면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알제리의 유령들』을 쓴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농담 하나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과거를 부정하기 위해 종이를 모두 불태운다. 그들은 몰랐다. 웃자고 꾸민 농담이 인생을 절벽 아래로 밀어 넣을 줄은. 80년대는 그런 시절이었다. 웃고 떠들 수 없었던 시절. 어디로 가야 하고 왜 이곳에 모였는지 끊임없이 의문해야 하는 시절. 황여정은 이상하고 낯선 방식으로 가장 진부한 주제를 소설로서 펼쳐 놓는다.

소설 속 오수는 율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시절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죽는다.' 어떤 시절이라고 한정했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현재는 안다. 어떤 시절은 모든 시절이 되어 버렸다. 그걸 알고도 살아간다. 떠난 이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기 위해 도망친다. 『알제리의 유령들』은 삶에 존재하는 거짓과 진실의 행방을 찾기 위한 황여정의 여정이 시작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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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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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M. 댄포스의 『사라지지 않는 여름』 속 주인공 캐머런은 일단 인형의 집을 꾸미는 것으로 상실의 상처를 달랜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는 순간 캐머런은 여자 친구인 아이린과 키스를 하고 물건을 훔치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후에 자신의 그런 행동 때문에 자책에 휩싸인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인형의 집을 꾸미고 영화 보기에 빠진다. 후에 '하나님의 약속'에서 만난 선생 리디아는 그런 중독이 캐머런 자신을 동성매력장애로 이끌고 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 말은 리디아가 되지도 않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지껄이는 것이라고 캐머런은 나중에야 깨닫는다.

10대 소녀의 이야기. 덧붙이면 레즈비언 10대 소녀의 이야기.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이 남자아이의 내면을 조명하고 이후의 시간을 희망했다면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10대 소녀가 알을 깨고 자신이 정립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이다. 책이 출간되고 아이들이 읽기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금서 취급을 당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캐머런은 루스 이모와 할머니와 함께 산다. 캐머런은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동성애에 눈을 뜬다. 아이린, 린지, 콜리에 이르기까지. 캐머런은 이끌리고 따라갈 뿐이었다. 불안하고 취약한 내면을 가진 캐머런이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시도가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 담겨 있다. 캐머런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어서 벌을 주려고, 내가 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려고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는 루스 이모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뿐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엄마가 지진을 피해 살아남은 뒤 30년이 지나 결국은 퀘이크 호수에서 익사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무슨 교훈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른들과 분위기에 의해서 캐머런은 자신이 잘못 행동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여자를 사랑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캐머런은 깊은 고독과 불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캐머런은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닌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으로 생긴 일이라는 점을 상기한다.

너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거야. 그건 틀린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며 우리를 우리가 아니게 만들어가는 어른들이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캐머런 주변의 어른들은 폭력적이지 않다. 학대의 기미도 없을뿐더러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캐머런에게 '잘못된 교육'을 받게 한다. 콜리와의 일이 발각되고 캐머런은 목사와 루스 이모에 의해 동성애를 치료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들어간다. 캐머런은 저항하지 않는다. 짐을 싸고 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산을 헐어서 학비를 낸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약속'에 들어가 자신을 부정하고 지식을 넓히는 게 아닌 치료를 목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캐머런은 씩씩한 척 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없고 정직한 시선으로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어울린다. 제인, 애덤과 대마초를 피우고 사소한 규율을 어기면서 생활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제인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거라고 했는데, 딱 맞는 표현 같았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지원 세션'은 나의 과거가 올바른 과거가 아니며, 만약 내가 과거가 달랐다면 애초 하나님의 약속에 올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믿게 만들기 위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것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그런 면담이 되풀이되었다.

"방금 다 말했잖아요. 이곳의 설립 목적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어서 변하게 만들려는 거라고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해야 한단 말이에요."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캐머런은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자신을 이곳에 보냈을까 의문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행동을 하기로 한다. 하나님의 약속에서 하는 일이란 온통 캐머런의 과거를 부정하고 나쁜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도대체가 자신을 혐오한다고 해서 더 좋은 나로 바꾸어 갈 수 있다는 발상을 하는 세계 라면 왜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는 것일까. 내가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알아내고 원인을 분석해서 얻은 결과가 나를 부정하고 버리기라고 한다면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가 요구하는 평균화된 가치와 논리가 있다. 단지 나이를 더 먹고 세상을 조금 더 알았다는 이유로 어른이 아이에게 주입하는 규율과 규칙을 깨기 위한 시도로써 에밀리 M. 댄포스의 소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존재한다. 원래 이 소설의 원제는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이었다. 캐머런에게 가해지는 '잘못된 교육'은 캐머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정적인 언어로 난폭한 캐머런의 내면을 표현하면서 독자를 봉인해 두었던 10대의 기억 속으로 데리고 간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시간. 무얼 모르지도 않지만 무얼 알지도 못했던 시간 속으로. 소설의 결말은 뜨겁고 아름답다. 결말에서 행해지는 캐머런의 행동은 자신에게 가해졌던 잘못된 교육을 비웃고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불행하고 답답한 오늘을 돌파할 용기를 얻는다. 넘어지지 않고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를 지키기 위해 캐머런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다.

애도의 의식을 행함으로써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일이 전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고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자책에 빠지지 않고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 세상을 밝히는 건 촛불 하나로써도 가능하다는 것. 캐머런이 나아갈 세상에는 성장하는 아이에게 자신을 부정하는 교육을 받게 하는 어른이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은 캐머런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기억의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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