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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눈부시게! - 김보통의 내 멋대로 고민 상담
김보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평점 :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다. 이번 주는 내내 그랬다. 딱히 바쁜 일도 없으면서 바쁜 척하느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이 몸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봐야 돌아오는 건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무거운 마음뿐. 잘 보이고 싶고 좋은 사람이고 싶어 더 긴장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고 집에 와서 한숨만 쉬고 잠 못 이룬다. 이런 쪼다, 바보.
김보통의 『살아, 눈부시게』를 읽지 않았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내 곁엔 책이 있었다. 고독이와 미묘, 노골이가 한 마디씩 툭툭 건네며 나를 위로한다. '내 멋대로 고민 상담소'라는 타이틀이 붙은 『살아, 눈부시게』를 읽으며 피식 웃고 말았다. 분명 심각한 고민이다. 어렸을 때 받은 상처와 내일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 현재의 고통을 말하면 고독이가 미묘가 노골이가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핵심을 찔러서 답을 해준다.
포기하고 싶다는 이야기에 포기해도 된다고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 쉬는 건 포기가 아니라고. 불안해서 잠으로 도피한다는 고민자에게는 불안할 때 잠을 자는 건 도피가 아닌 충전이라고. 무겁고 아픈 고민을 듣고는 어떤 답을 해줘야 할까 싶은데도 재치 넘치는 말로써 마음을 녹이는 웃음과 다정함으로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이다. 도망쳐도 된다고. 아프면 꼭 병원에 가야 한다고도 말한다.
『살아, 눈부시게』에 담겨 있는 슬픔의 총량을 합치면 내가 겪는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 위로를 받는 게 아니다. 감당하지 못할 슬픔임에도 살고 싶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선뜻 꺼내는 용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울다가 웃으면 거기에 털 나는데. 글이 많은 책도 아닌데 쉽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어떤 말에는 웃음을 어떤 말에는 눈물이 났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자. 주눅 들지 말자. 할 말은 꼭 하고 살자. 수없이 다짐해도 막상 눈치를 보고 주눅이 든 채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시간들. 도저히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은 순간들. 그럴 때 김보통의 『살아, 눈부시게』를 곁에 두고 내내 읽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순서대로. 그다음부터는 손이 가는 페이지를 펼쳐서. 망가지지 않고 방치하지도 않은 미래에 나를 데려다 놓기 위해서라도.
꿈과 목표라는 말이 멀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이에게 화를 내고 따지고 싶다. 넌 뭐 그렇게 잘났냐. 『살아, 눈부시게』의 리뷰인 척 구질구질하게 힘들고 슬퍼서 죽겠다는 이야기를 길게도 하고 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징징대고 있다. 고독이는 미묘는 노골이는 이런 나를 한심해 하지 않을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임을 아니까. 후회는 해도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니까.
가끔 나에게 시련을 주는 이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어느 하루가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인생의 의미를 따지기보다 그냥 살아가야 한다는 고독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시원한 물을 들이켜고 일기를 쓰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수고했어, 오늘의 나 자신. 쓰담쓰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