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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패밀리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5년 3월
평점 :
이상한 말이 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이런 말들에 혹했다. 내가 가진 게 무어냐. 젊다는 거 아닌가. 그럼 더 열심히 일하자.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퇴근했다.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월세 집에서의 탈출. 어느 날 문득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낸 월세를 계산해 본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일보다 그 시간에 다른 걸 해보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10년 넘게 낸 월세, 내 피 같은 돈. 그걸 모았으면…. 뜨이씨. 눈물이 앞을 가린다.
돈을 어느 정도 모았을 때, 기뻤을까. 기쁘지 않았다. 그 사이 집값은 훌쩍 올라 있었다. 좌절했다. 투잡을 뛰어야 할까. 나의 알바 역사의 시작은 고등학교 때로 올라간다. 시간당 임금 1700원. 하루 여섯 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받을 수 있는 돈은 30만 원 남짓. 돈을 벌어 좋았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고역이었다. 그래도 꾸준함과 끈기를 재능으로 가진 나는 일 년을 일했다.
고은규의 『알바 패밀리』는 알바로 살아가는 가족의 일상을 그린다. 호두 가구 공장 사장님 아버지. 마트 직원 어머니. 패션 정보 사이트 리뷰왕에 이어 수영장 알바, R 컬렉션 직원, 편의점 알바까지 쉼 없이 달리는 로라. 대학생이자 R 컬렉션 소각장 관리원으로 일하다 잘리는 로민. 네 가족의 하루하루는 쉽지가 않다. 아버지는 홈쇼핑에서 1+1 행사 때문에 가구 반품으로 도산 위기에 몰려 있다.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않은지 오래. 어머니를 중심으로 남매는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로민, 로라 남매는 이제 겨우 스물 초반. 그들은 학자금 대출 이자를 걱정하느라 제대로 학교생활을 하지 못한다. 로라는 물건을 사서 반품을 하는 식으로 리뷰왕으로 인터넷에서 유명해진다. 곧 블랙 컨슈머로 찍혀 내용 증명을 받고 엄마의 카드까지 막힌다. 로민은 어떤가. 노숙자에게 버려지는 R 컬렉션의 옷을 갖다 줬다가 회사 이미지에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잘린다.
그들에게 미래는 어떤 의미일까. 미래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로민, 로라 남매에게는 당장 내야 할 관리비와 학자금 대출이 먼저다. 물이 나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알바 패밀리』의 결말은 로민 가족의 미래가 꽤나 험난할 것을 암시한다. 일단 불안한 희망으로 고통을 봉합해 보려 한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낙관을 가져오지만 그건 낙관이라는 이름의 비관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사절하겠다.
『알바 패밀리』의 패밀리가 가짜 희망으로 겨우 웃을 수 있는 오늘이 아닌 진짜 희망으로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오늘을 기다린다. 우리의 어려움을 위로도 격려도 아닌 말로 당연시 여기면 안 된다. 고생은 사서 하는 게 아니고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고 노력은 이미 줄기차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