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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빠 알레르기 : 고은규 소설집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6년 7월
평점 :
고은규의 소설집 『오빠 알레르기』의 세계는 익숙하고도 낯설다. 일곱 편의 소설은 매운맛과 순한 맛의 인생살이가 혼재되어 있다. 매운맛인 줄 알고 먹었는데 순한 맛이기도 한 이상한 세계의 이야기. 거친 인생의 풍랑을 맞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는 인물의 고달픔. 순한 맛이라고 안심하고 먹었는데 눈물을 쏙 빼놓을 정도의 매운맛의 고통. 다 먹고 나면 이런 게 인생의 쓴맛인가 한숨을 쉬게 된다.
오빠를 오빠라고 부르지 못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표제작이기도 한 「오빠 알레르기」의 이야기이다. 자신을 꼰대라고 부르는 '나'는 회사 신입 직원이 상사를 오빠라고 부르는 '꼴'을 보지 못한다. 그런 역사의 기원은 '나'의 대학 시절로 올라간다. 오빠를 오빠라고 불렀다가 화장실에서 선배에게 뺨을 맞았다. 오빠가 아닌 '형'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사채업자만이 나의 실종 상태를 알아챌 수 있는 암담한 시기를 살고 있는 「차고 어두운 상자」는 또 어떤가. 슬프고도 뜨거운 매운맛이지만 소설의 결말에 가면 차갑고도 입속이 아린 매운맛의 진실을 알 수 있다. 「맥스웰의 은빛 망치」는 스토킹이라는 뜨거운 화두를 던진다. 10년 동안 자신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쫓아다닌 한 남자를 피해 다니는 여자의 어둡고 스산한 이야기.
여기까지 읽고 나서 한숨을 돌린다. 입안이 뜨거워져 더는 못 읽을 것 같지만 고은규의 이야기 세계는 힘이 있다. 독자를 독려하는. 가수에 빠져 집 안에 돈이 되는 건 들고 튄 언니를 쫓는 「엔진룸」.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사고를 당한 오빠를 잊지 못하는 아내를 옆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급류 타기」속 남자의 사연. 그들 부부가 부디 툭하면 정전이 되는 집에서 나오기를 희망한다.
시위 현장에서 오빠를 잃어버린 기억을 가진 '나'는 이후에 딸기를 먹지 못한다. 소설 「딸기」에서 가족의 집은 허물어지지만 현수막에 쓰인 문구는 나중에 찾아올 환희를 기대하게 한다. 「명화」가 그리는 내일은 어떨까. 죽은 아버지의 틀니가 하수도에 막힌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명화. 낡은 집에서 청춘을 보내지 말고 어떻게든 힘을 내서 집을 치우기를 바란다.
열심으로 안 되는 일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태반이고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일이 이상하게 꼬여간다. 후회와 탄식으로 남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오빠 알레르기』의 인물들에게 고은규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버티라는 뻔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도 잘 살아왔구나 위로한다. 첫 소설만 읽었을 때 『오빠 알레르기』는 재기 발랄해서 통통 튀는 유머 가득한 소설집인 줄 알았다.
순한맛 노노. 징하게 매운맛. 각오하시고 읽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