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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평점 :
일할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열심히 하는 척해 보는데 오 분이나 십 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대신 주말은 시간이 뭉텅이로 쓸려 나간다. 늦게 일어나서 밥 먹고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바깥은 어둠. 대충 씻고 누워 핸드폰 좀 하다가 잠이 든다. 이틀 중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버렸다. 요즘에는 꿈을 많이 꾸는데 대개 기억에 나진 않는다. 그래도 간밤에 꿈 하나는 기억에 남는다. 꿈에서 나는 열아홉이었다. 생각한다. 아직 열아홉 밖에는 안 되었구나. 깜짝 놀라 일어났다. 현실의 나는…….
서유미의 소설집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에는 하루하루가 힘겨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세 올려줄 걱정을 하는 자매. 성매매 알선을 하며 살아가는 청년. 모처럼 휴가를 맞이했지만 이상한 불안에 시달리는 부부. 설악산으로 결혼기념일 여행을 떠났다가 남편을 잃어버린 여자. 이혼 후 사우나를 전전하며 사는 남자. 아이를 키워 놓고 황혼 이혼을 해서 홀가분하게 노후를 시작하려는 중년 여성.
이십 대 초반부터 중년의 삶까지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는 아우른다. 책을 읽는 독자의 나이대는 다양할 것이다. 소설집에 들어 있는 어느 소설을 읽더라도 지금의 자신의 삶을 대입해서 읽으면 된다. 읽으며 내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생각에 잠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다. 보증금 천만 원을 올려주든가. 월세 십만 원을 올려주든가. 이런 문제가 있고.
어렸을 때 잠깐 알았던 엄마의 애인이 과거의 나를 기억하며 남겨준 사진과 약간의 돈을 받아 구질구질한 삶을 청산할 것인가의 문제. 어렵게 낸 휴가 날을 맞이해서 외식을 할 것인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것인가의 문제. 각각의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하루를 그린다. 누군가의 하루를 엿보면서 위안과 불안을 공유하면서 오늘을 버텨 나간다. 10주년 결혼 기념을 기념하는 여행지에서 남편은 말도 없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추측하는 하루는 고단한다.
딸아이가 아이를 낳는다는 소식을 듣고 치매에 걸린 엄마를 양로원으로 모시고 가는 하루는 착잡하다. 이런 하루들은 실제의 하루가 아닌 꿈속의 하루가 아닐까. 앞뒤가 맞지 않는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서유미의 소설 속 하루는 꿈의 일처럼 아득하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데도 소설 속 인물이 사는 하루는 꿈결 같다. 할인된 케이크를 사서 밤중에 집을 보러 다니는 하루. 택배가 사라지고 핸드폰 액정에 금이 가는 하루.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를 읽다 보면 나만이 불안을 느끼고 괜찮은 척했던 건 아니었구나 안도감이 밀려온다. 무의미한 하루를 사는 듯해도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비록 그들의 하루가 기분 좋은 내일로 도달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더라도. 책을 덮고 펼쳐진 나의 하루를 살아내면 된다. 각자의 희망과 기쁨을 찾아서.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는 아무와도 헤어지지 않는 하루이다. 열아홉의 하루는 꿈속의 일이었지만 꿈 바깥의 나에게는 그보다 여유가 있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