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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박상영이 핫하다고 요즘 뜬다고. 그런 걸 내가 놓칠 리가 없으니 일단 책은 사둔다. 사 놓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나중에야 읽었다. 멀쩡히 소설집이 있는데 젊은작가상에 실린 단편들을 먼저 읽었다. 자이툰 부대에 가서 운명적인 남자를 만나고 우럭인지 광어인지 중요하지도 않은데 그런 거나 따지는 남자가 나오고. 남자가 나오고. 남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첫 번째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와 자이툰 파스타』는 찌질하고 우스운 이야기의 집합체였다. 인스타 중독에 술 먹고 물건 훔치고 바람피우는 거 적발하고 헤어지면서 울고불고 난리. 두 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은 전작에 비해 얌전해졌다고 할까.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와 자이툰 파스타』가 사랑에 때문에 대환장 파티를 벌이며 나 좀 알아달라고 했다면 『대도시의 사랑법』은 사랑과 이별의 폭풍이 한차례 지나가고 인생의 쓴맛, 매운맛, 단맛은 다 본 자의 쓸쓸함을 보여준다.
『대도시의 사랑법』에는 네 편의 단편이 연작 형식으로 실려 있는데 어머나 세상에, 나 두 편이나 읽어본 적이 있네. 「재희」는 게이 남자와 여자의 우정을 그린다. 스무 살에 만난 '나'와 '재희'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운명적으로 자신들이 아웃사이더라는 걸 캐치해낸다. '나'의 비밀을 재희는 지켜주고 '나'는 재희가 만나는 몹쓸 남자들과 스토커를 처리해 준다. 그들은 한 시절을 서로가 가진 약점을 보듬어 주며 지낸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암이 재발한 어머니를 간병하며 지독하게 앓았던 사랑의 추억을 곱씹는 '나'가 나온다. 열두 살 띠동갑 프리랜서 편집자와 만났던 시절을 복기하며 추억이란 기습적으로 나타나 뒤통수를 때릴 준비를 하는 불청객임을 깨닫는다. '규호의 규호에 의한 규호를 위한' 연가로써 읽히는 「대도시의 사랑법」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사랑이 대체 무엇인데 이 난리인 건지 한심하면서도 짠하고 결국에는 뭉클해서 그래 임마 너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소설이다.
네 편의 소설은 '사랑 없인 못 살아'가 공통 주제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끊임없이 '나'를 소개한다. 혐오와 멸시를 당해도 웃고 애인이 자신을 부끄러워해도 화를 내지 않는 '나'. 고등학교 때 남자애와 놀이터에서 키스하다 걸려서 엄마가 강제로 정신 병원에 집어넣어도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 '나'. '카일리'와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될 수 없었던 걸 어쩔 수 없음으로 치환해서 긍정하는 '나'. 원하는 건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고 싶어' 같은 노래를 부르며 킹사이즈 침대를 사서 '너'와 함께 하고 싶은 '나'.
이런 '나'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죽여? 살려? '나'의 엄마는 죽기 전까지도 당신의 그런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때 열렬했던 우정과 사랑의 시간이 지나가고 어깨를 잔뜩 구부리고 그렇고 그러했던 과거를 애써 담담한 척 굴며 '소설'을 쓰는 '나'만이 남는다. 결핍과 외로움을 누구도 대신 채워줄 수 없으며 사랑은 기대와 환상이라는 콜라보로 밥 먹듯이 배반을 때리는 한심한 녀석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나'만이.
사랑 없인 못 살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나'는 살아가겠지. 「늦은 우기의 바캉스」의 마지막 문단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무수히 많은 소원 리스트를 지우고 썼던 단 하나의 소원이 애틋해서. 누가 누굴 사랑하는지 따지는 건 2020년에는 세련되지 못한 사상임을 인정하자. '대도시의 사랑법'에 그런 조항은 없으니까. 누굴 사랑하든 말든 각자 알아서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지침이 『대도시의 사랑법』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