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오늘의 젊은 작가 39
김홍 지음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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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에(이런 질문을 해주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어서, 좋다. 계속 질문해 주시라.) 『엉엉』이라고 답했다. 엉엉? 응, 엉엉. 『엉엉』은 그런 책이다. 엉엉이라고 말하는 순간 엉엉 울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말한 듯해서 후련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계속 그런 시기가 있지 않은가. 내내 계속 엉엉 속으로 울면서 지내는 시간들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나의 본체가 떠난 이후의 일상을 그린다. 본체는 집이 좁고 더워서 떠난 듯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본체가 비상금까지 훔쳐서 나가고 나서 든 깨달음이다. 나의 집은 나와 본체를 담기에는 비좁다. 본체는 고지서로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고소장은 덤이고. 나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채무의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다 본체의 소식이 끊겼다. 고지서도 독촉장도 오지 않았다. 나는 집을 옮긴다. 지금보다는 넓은 집으로. 그 사이에 본체가 전화를 걸어오면 새 주소를 알려줄 텐데. 전화는 오지 않으니까 이사를 했다. 마스크 공장에서 일을 했다. 본체가 떠난 후로 계속 울었다. 울면서도 일은 하고 쿠팡에서 고양이 밥도 주문했다. 울어도 생활은 해야 하니까 울면서 살았다. 내가 울 때마다 비가 내렸다. 


건전지를 모아서 동사무소에 갖다주러 갔다가 '슬픈 사람 모이세요'라는 전단지를 발견한다. 나와 동그람 씨는 매주 모여서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본체에게서 연락이 오고 본체를 잃어버린 사람들 틈에서 나는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지낸다.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다. 유튜브나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음구처럼 하는 말이다. 


그런 나도 이상한 사람.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건 의외로 쉬운 일일 수도. 같이 이상해지면 되니까. 『엉엉』의 설정은 낯설지 않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또 다른 나이지만 같은 나. 나를 혹은 나의 환경을 견디지 못해서 나의 나는 떠난다. 불법적인 일 같은 거 하지 않고 빚도 지지 말고 살면 좋을 텐데. 그러면 같이 행복해질 텐데. 본체는 내 안의 무수한 나들의 은유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내가 울면 하늘도 같이 운다는 설정 또한 은유라고. 내가 슬프면 세상도 같이 슬퍼야 하지 않겠느냐는 하소연 같은 거라고. 『엉엉』을 다 읽고 황정은이 떠올랐다. 『엉엉』의 쓸쓸과 황정은의 쓸쓸이 겹친다. 노력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남겨진 우리들은 고지서의 숫자를 볼 때마다 엉엉 울고 있다. 본체가 나를 떠난 이유를 생각하면 자꾸 슬퍼진다. 


소설은 모두의 근황을 알려주면서 끝난다. 이런 결말이 좋다. 그런 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지 소설 속으로 들어가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화를 내고 웃길 땐 웃으면서 계속 누워 있어도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고 지내자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본체가 떠나지 않으니까. 3월의 고지서를 받고 이체를 하면서 엉엉. 4월은 4월에 엉엉하자. 엉엉 울면서 살아보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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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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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담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에 실린 단편 「안(安)」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답답했다. 엄마가 그토록 원한 의과 대학이 아니라 사회학과에 간 주인공 '나'는 기자가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결혼은 여자한테 손해이며 지옥불로 걸어들어가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혼 생활은 이어졌다. 매주 토요일에 남편의 본가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왔다. 시누이 가족과 모여서 밥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고 과일과 차를 내놓았다. 음식을 준비하는 건 시모의 몫이었고 치우는 건 며느리인 '나'만이 했다. 


결국 '나'는 어떻게 했을까.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요즘 최애 친구인 유튜브 앱을 실행. 이건 뭐지. 카카오 TV에서 제작한 드라마 《며느라기》 몰아보기가 상단 화면에 뜨는 것이 아닌가. 정말 무섭다, 무서워. 그렇지만 이런 알고리즘 좋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 빵 터진 장면이 있었다. 시모가 아들에게는 갈치를 며느리에게는 무 조림을 얹어 주는 것이 아닌가. 새 밥을 아들과 남편 밥그릇에 담고 아침에 한 밥은 우리 둘이 먹어치우자고 명랑하게 말한다. 


드라마라서 과장하는 건가, 줏대 없는 나는 다른 이의 생각이 필요하기에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웬걸. 드라마라서 과장하는 거 아니야라는 글이 달려 있을 줄 알았지만 격하게 공감한다와 이 드라마를 공중파에서 매일 같이 틀어줘야 한다는 댓글의 연속이었다. 갈치와 무 조림. 새 밥과 헌 밥. 나는 무 조림과 헌 밥을 좋아해서 그렇게 줘도 타격감은 없을 것 같지만. 막상 그렇다면.


『돌보는 마음』에는 열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열 편 모두 가독성이 좋다. 현실감 있는 이야기들이 잔뜩 있다. 여자와 여자 주변의 이야기라고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여자와 나의 이야기가 『돌보는 마음』에 있다. 병상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위해 담을 넘어 대추를 서리하고 감옥에 간 동생의 석방을 위해 가족이 외면한 이를 찾아간다. 직장에서는 마음을 나누는 건 절대 금기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고 그때 사지 못한 집의 시세가 높아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린다. 


가족을 돌보는 건 누구인가. 가족을 떠나는 건 누구인가. 대답해 주시라. 자꾸 모른다고 하지 말고. 표제작 「돌보는 마음」은 미연이 시터 면접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터 임화숙은 미연이 잘못 알고 있다고 그 말을 반복한다. 설사 잘못 알고 있다고 해도 상대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마음이 상한다. 미연은 임화숙 대신 친구가 소개해 준 업체에서 시터를 고용한다. 미연은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한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CCTV를 확인한다. 


돌봄의 대상이었다가 돌봐야 하는 주체가 된다, 여성들은. 죽음의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돌봄 노동에서 벗어난다. 뉴스는 특집으로 인구 절벽을 다룬다. 입학생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고 소득이 적을수록 연애 경험이 없다는 수치를 보여준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물론 경제적인 부분이 크다. 중산층 정도가 되어야 결혼과 출산이 가능하다는 농담 같지만 사실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엄마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온다. 일 하다가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에게는? 김유담의 『돌보는 마음』은 비현실 같은 현실을 그린다.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 놓고 저녁이 되면 어느새 어두워진 마음을 발견하며 울적해지는 시간을 『돌보는 마음』은 선사한다. 내내 어두웠구나. 마음. 오늘은 지워지고 내일은 아득한 늦저녁에 『돌보는 마음』 읽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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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무 슬픔
멀리사 브로더 지음, 김지현 옮김 / 플레이타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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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무 슬픔』은 정지음의 『오색 찬란한 실패담』에 소개된 문장을 읽고 공감받아서 어머 이건 읽어야 해 하면서 읽었다. 몸과 다이어트에 관한 그 문장들은 실패한 다이어터의 고뇌와 참회가 담겨 있었다. 숫자를 먹는 바보. 허영을 먹는 바보.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바보. 책의 저자 멀리사 브로더는 『오늘 너무 슬픔』에서 바보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주저하지 않는 정도가 온갖 것으로의 중독으로 점철된 과거를 있는 그대로 진짜 이렇게까지 할 거야 정도로 낱낱이 밝힌다. 중간에 정신줄 놓고 마구 먹어댄 1년을 제외하고는 근 10년째 다이어터와 유지어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매일 아침 반려 저울에 올라가서 몸무게를 확인하다. 어떤 날은 드디어 저울이 맛이 갔구나 바꿔야지 할 정도로 납득이 가지 않는 숫자를 우에엑 토해내는 반려 저울, 미워. 


『오늘 너무 슬픔』에서는 멀리사 브로더는 의문한다. 내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다이어트를 했었을까. 남자였다면 그냥 그렇게 칼로리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살지 않았을까. 그는 평균 이상의 몸무게로 태어난 먹보다. 엄마는 그가 뚱뚱해질까 봐 겁에 질렸고 음식을 통제했다. 멀리사는 폭식증과 거식증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키가 168센티미터인데 몸무게는 45킬로그램이었다. 


「온전하고도 깡마른 사람이 되고 싶어」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다. 어떤가. 읽고 싶은 마음이 무한으로 치솟지 않는가. 이 에세이의 첫 문단은 '먹보다'로 종결한다. 어떤 행동을 해도 멀리사의 정체성은 먹보다. 책을 읽을 에너지조차 바닥이 났을 때 자기 전에 누워서 먹방을 본다. 보고 있으면 잠이 온다. 바쁘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신종 자장가, 먹방. 나는 먹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잘 먹음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응원한다. 


다이어트 중독 말고도 『오늘 너무 슬픔』에서는 여러 중독 이야기가 많다. 멀리사는 중독에 중독된 자신의 삶을 놓지 않았다. 트위터에 오늘너무슬픔이라는 비밀 계정을 만들었다. 그곳에서는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었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나를 말할 수 있다니. 어느 중독자는 누구나의 중독자가 되었다. 매번 나만 이런가에 시달린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내가 잘못 살고 있는가라는 '머릿속 위원회'의 비난에 몸부림치면서. 


『오늘 너무 슬픔』을 읽다 보면 그렇지 않고 우리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잘못 살고 있어서 그동안 겪은 고통과 비난은 쓸데없는 것이구나를 깨닫는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엉망이다. 얼마 전에 본 영화 《나는 살을 빼기로 결심했다》의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잘 가, 미래의 예뻐질 나 자신. 중독은 나쁜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없기에 멀리사는 오늘 왜 너무 슬픈지 중독이 왜 나쁜지 『오늘 너무 슬픔』에서 들려준다. 


미래의 나 자신이 예뻐질지 좋아질지 알 수 없다. 과거에 내가 있었고 현재에 내가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사실이다. 어쩌면 존재할 수도 있을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해 오늘 조금만 슬프기로 한다. 너무는 너무하니까 조금씩만 슬퍼하면서 그러다 슬픔이 아니게 될 때까지 나를 내일로 밀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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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날씨와 얼굴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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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러다 우리 다 죽겠다. 빙하가 녹다 못해 없어지고 겨울 가뭄 때문에 급수 제한을 하는 지역이 있다. 죽겠다 죽겠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굳이 그런 말 하지 않아도 대지구 종말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겠다. 영화에서처럼 밥을 먹다가 누워 있다가 거대한 해일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도 있다는 가정은 사실이 될 날이 멀지 않으리.


인간에게 돌아가야 할 식량은 인간이 식용하는 가축을 위해 먹이고 그들이 내뿜는 탄소는 지구의 평균 기온을 높이는데 쓰이고 있다. 순전히 다이어트를 위해 내면이 아닌 외면의 아름다움에 미쳐 채식을 한 적이 있다. 동물을 구하고 환경 보호에 앞장은 아니지만 누군가 앞에 서면 뒤에 서겠다는 신념 따윈 없었다. 오직 숫자로만 나타나 나를 평가하는 몸무게를 위해서 채식. 


나중에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고는 공장식 축산 특히 닭을 사육하는 열악한 환경을 알고 나서는 한동안 닭은(닭만은, 돼지나 소까지는 힘든 육식 인간이라) 먹지 않겠다 선언하고 어설픈 실천을 했다. 닭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시켜 먹던 시절의 일이었다. 일이 늦게 끝난 뒤 늦게 몰려든 허기를 잠재우느라 했던 쉬운 선택. 배달 닭 시켜 먹기. 


이슬아의 칼럼집 『날씨와 얼굴』은 대지구 종말 시대를 막기 위한 한 사람의 고요한 외침이 담긴 책이다. 망해 가는 지구를 위해서는 두 가지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선언이 있다. 기분만큼이나 열정 가득한 변화를 보이는 날씨와 인간의 허기와 즐거움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의 얼굴을 응시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리고 우리가 자고 있을 때 전날 저녁에 구매한 물건을 새벽 문 앞에 배송하기 위해 에어컨과 난방 시설이 없는 곳에서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와 타국으로 결혼해 온 이주 여성들의 얼굴까지도.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진 어린 시절을 지나 나조차도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눈 뜬 지금의 시절까지 세상은 갈수록 나빠지기만 하고 덩달아 나도 나빠지려는 미래를 가진 내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날씨와 얼굴』은 그래도 그래 우리 한 번 해보자 말한다. 양파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양파인데 닭이나 돼지, 소는 고기라는 명사를 따로 붙이는 수고를 하고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게 무엇인지 알려준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고찰이 담겨 있다.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그리고 물고기까지. 의심하지 않고 쓰는 단어에는 감추고 의도하고 그걸로 돈을 버는 사회의 부조리가 숨어 있었다. 마리라는 동물을 세는 수사 대신 명(목숨 명命)을 종평등한 언어에서는 쓰자는 변화의 물결이 찰랑이고 있다고도 알려준다. 닭 한 명, 돼지 한 명, 소 한 명. 물고기 말고 물살이. 매일 마주하는 얼굴을 보면 그들을 좁은 우리 안에 가두고 항생제 주사를 맞히고 도축장으로 끌고 갈 수 있겠는가. 『날씨와 얼굴』은 질문을 한다. 


인간을 위한 질문 역시 멈추지 않는다. 전국에 백 개 가까이 되는 쿠팡 물류센터 중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은 단 한 곳뿐이고 우리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고통을 헤아릴 능력이 있지 않냐고. 결혼을 해서 한국에 왔지만 빈번한 좌절 끝에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는 이주여성들의 얼굴을 알고 있지 않냐고. 책에 소개된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를 읽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응시해야 할 수많은 얼굴이 있다. 보이지 않음으로써 보이는 얼굴을 우리는 알고 있다. 태양이 폭발하고 그 영향이 지구까지 미치기 전까지 살아가기 위해서는 날씨의 얼굴을 얼굴의 얼굴을 보아야 한다. 오래도록 자세히 보면서 예쁘다는 걸 서로가 서로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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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찬란 실패담 - 만사에 고장이 잦은 뚝딱이의 정신 수양록
정지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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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러키 스타트업』을 읽고 재미와 감동, 위로, 공감 등 온갖 무해한 감정들을 선사받았기에 정지음의 책들을 무한 신뢰하기로 했으니 『오색 찬란 실패담』이라는 극강의 위로템 같은 제목을 달고 나온 신작 에세이를 사는 건 인지상정. 마침 평일 금요일 하루를 공휴일로 돌렸겠다.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했으니 읽기 시작. 책을 읽을 시간이란 확보하는 게 아닌 그냥 있는 시간을 사용하면 되는데. 바쁘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바쁜 일들이 천지이기 때문에 어떡하든 시간을 쥐어 짜내야 한다. 


꼭 봐야 할 유튜브 영상을 밀어 놓은 채 『오색 찬란 실패담』을 읽었다. 실패담에 관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오색 찬란하기 때문에 요란하고 명랑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한 다발이다. 요즘 꽃값이 비싸다는데 비싼 꽃다발 대신 오색 찬란한 꽃 같은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물하면 가성비 짱. 성공과 실패는 한 끗 차이라는데 한 끗이 뭐야 열 끗 아닌가 할 정도로 성공은 먼 무용담 같기만 하다. 요즘같이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시대에는. 그래서 절약한다고 그게 돈이 됩니까.


『오색 찬란 실패담』에 나온 대로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어디 나와 같은 사람이 없나 탐색하기 위해서다. 행동반경이 1Km도 되지 않은지라 주변인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라면 더더욱 책에 의존할 수밖에. 유튜브도 요즘엔 괜찮다. 신이 아닐까 사료되는 알고리즘이 나의 취향에 딱 맞은 영상을 추천해 주니까. 옆으로 누워서 나의 고민을 대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소심한 목소리로 응원을 보낸다. 다들 파이팅. 


책의 시작부터 실패에 관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요가 첫날 뚝딱이의 모습을 노출하고 익숙해지자 누군가의 뚝딱거리는 모습을 발견해 같이 넘어진다. 실패 선배님 다운 멋진 행동이다. 나의 실패로 너의 실패를 응원하는 가슴 뜨끈한 연대의 현장이다. 회사에서 정신이 고장 나지 않게 버티는 조언도 해준다. 남이 하는 말을 걸러듣고 일의 망침이 나의 망침이 아니라는 것. 회사에서 책임지고 벌받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고. 


월세를 살며 반려동물 맷돌이와 지내다가 주인이 전세로 돌리겠다고 하니 공인중개사에게 자신이 잘하는 싹싹 빌기를 시전한다. 제발 맷돌이와 살게 해주세요.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답니다. 우울한 사람에게는 위로와 공감보다는 육아 서적을 선물하라고도 한다. 가장 쉬운 언어로 우울한 당신을 다독여준다고. 꼭 해봐야겠다. 마음이 어두울 땐 빛이 있다는 사실도 잊는다. 어두운 마음을 내려놓고 집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친절한 친구처럼 집까지 데리고 온다. 


하루에 꼬박꼬박 하는 규칙적인 게 있다면 그건 실패에 대한 무용담 혼자 곱씹기이다. 무례를 밥 말아 먹은 그 사람에게는 한 마디 쏘아줬어야 하는데 가스라이팅 당한 것처럼 왜 죄송하다고 했지? 나의 미안함은 잘못을 해놓고도 사과하지 않은 당신이 미안해해줬으면 하는 건데 왜 그걸 모르지? 누워 있다가 얼굴이 뜨거워진다. 나의 실패는 오색 찬란하진 않고 그레이 색이다. 칙칙한 그레이 색. 그래 이 새끼야. 


『오색 찬란 실패담』의 실패담을 실패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아닌 서 있는 오토바이에 부딪혀 스스로 정형외과를 찾아가고 유튜브를 보다가 유튜브를 찍고 사이비에 당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실패일까. 실패를 가장한 어제와 오늘의 성공 스토리. 오색 찬란 성공담이라는 속편을 기다린다. 재수 없는 제목이라고 생각해서 안 팔릴 것 같지만 『오색 찬란 실패담』처럼 반어적인 컨셉으로 밀면 된다. 실패담은 성공담이고 성공담은 실패담. 각자의 자유대로 생각하게 놔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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