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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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담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에 실린 단편 「안(安)」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답답했다. 엄마가 그토록 원한 의과 대학이 아니라 사회학과에 간 주인공 '나'는 기자가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결혼은 여자한테 손해이며 지옥불로 걸어들어가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혼 생활은 이어졌다. 매주 토요일에 남편의 본가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왔다. 시누이 가족과 모여서 밥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고 과일과 차를 내놓았다. 음식을 준비하는 건 시모의 몫이었고 치우는 건 며느리인 '나'만이 했다. 


결국 '나'는 어떻게 했을까.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요즘 최애 친구인 유튜브 앱을 실행. 이건 뭐지. 카카오 TV에서 제작한 드라마 《며느라기》 몰아보기가 상단 화면에 뜨는 것이 아닌가. 정말 무섭다, 무서워. 그렇지만 이런 알고리즘 좋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 빵 터진 장면이 있었다. 시모가 아들에게는 갈치를 며느리에게는 무 조림을 얹어 주는 것이 아닌가. 새 밥을 아들과 남편 밥그릇에 담고 아침에 한 밥은 우리 둘이 먹어치우자고 명랑하게 말한다. 


드라마라서 과장하는 건가, 줏대 없는 나는 다른 이의 생각이 필요하기에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웬걸. 드라마라서 과장하는 거 아니야라는 글이 달려 있을 줄 알았지만 격하게 공감한다와 이 드라마를 공중파에서 매일 같이 틀어줘야 한다는 댓글의 연속이었다. 갈치와 무 조림. 새 밥과 헌 밥. 나는 무 조림과 헌 밥을 좋아해서 그렇게 줘도 타격감은 없을 것 같지만. 막상 그렇다면.


『돌보는 마음』에는 열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열 편 모두 가독성이 좋다. 현실감 있는 이야기들이 잔뜩 있다. 여자와 여자 주변의 이야기라고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여자와 나의 이야기가 『돌보는 마음』에 있다. 병상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위해 담을 넘어 대추를 서리하고 감옥에 간 동생의 석방을 위해 가족이 외면한 이를 찾아간다. 직장에서는 마음을 나누는 건 절대 금기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고 그때 사지 못한 집의 시세가 높아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린다. 


가족을 돌보는 건 누구인가. 가족을 떠나는 건 누구인가. 대답해 주시라. 자꾸 모른다고 하지 말고. 표제작 「돌보는 마음」은 미연이 시터 면접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터 임화숙은 미연이 잘못 알고 있다고 그 말을 반복한다. 설사 잘못 알고 있다고 해도 상대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마음이 상한다. 미연은 임화숙 대신 친구가 소개해 준 업체에서 시터를 고용한다. 미연은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한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CCTV를 확인한다. 


돌봄의 대상이었다가 돌봐야 하는 주체가 된다, 여성들은. 죽음의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돌봄 노동에서 벗어난다. 뉴스는 특집으로 인구 절벽을 다룬다. 입학생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고 소득이 적을수록 연애 경험이 없다는 수치를 보여준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물론 경제적인 부분이 크다. 중산층 정도가 되어야 결혼과 출산이 가능하다는 농담 같지만 사실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엄마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온다. 일 하다가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에게는? 김유담의 『돌보는 마음』은 비현실 같은 현실을 그린다.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 놓고 저녁이 되면 어느새 어두워진 마음을 발견하며 울적해지는 시간을 『돌보는 마음』은 선사한다. 내내 어두웠구나. 마음. 오늘은 지워지고 내일은 아득한 늦저녁에 『돌보는 마음』 읽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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