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 찬란 실패담 - 만사에 고장이 잦은 뚝딱이의 정신 수양록
정지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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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러키 스타트업』을 읽고 재미와 감동, 위로, 공감 등 온갖 무해한 감정들을 선사받았기에 정지음의 책들을 무한 신뢰하기로 했으니 『오색 찬란 실패담』이라는 극강의 위로템 같은 제목을 달고 나온 신작 에세이를 사는 건 인지상정. 마침 평일 금요일 하루를 공휴일로 돌렸겠다.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했으니 읽기 시작. 책을 읽을 시간이란 확보하는 게 아닌 그냥 있는 시간을 사용하면 되는데. 바쁘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바쁜 일들이 천지이기 때문에 어떡하든 시간을 쥐어 짜내야 한다. 


꼭 봐야 할 유튜브 영상을 밀어 놓은 채 『오색 찬란 실패담』을 읽었다. 실패담에 관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오색 찬란하기 때문에 요란하고 명랑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한 다발이다. 요즘 꽃값이 비싸다는데 비싼 꽃다발 대신 오색 찬란한 꽃 같은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물하면 가성비 짱. 성공과 실패는 한 끗 차이라는데 한 끗이 뭐야 열 끗 아닌가 할 정도로 성공은 먼 무용담 같기만 하다. 요즘같이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시대에는. 그래서 절약한다고 그게 돈이 됩니까.


『오색 찬란 실패담』에 나온 대로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어디 나와 같은 사람이 없나 탐색하기 위해서다. 행동반경이 1Km도 되지 않은지라 주변인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라면 더더욱 책에 의존할 수밖에. 유튜브도 요즘엔 괜찮다. 신이 아닐까 사료되는 알고리즘이 나의 취향에 딱 맞은 영상을 추천해 주니까. 옆으로 누워서 나의 고민을 대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소심한 목소리로 응원을 보낸다. 다들 파이팅. 


책의 시작부터 실패에 관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요가 첫날 뚝딱이의 모습을 노출하고 익숙해지자 누군가의 뚝딱거리는 모습을 발견해 같이 넘어진다. 실패 선배님 다운 멋진 행동이다. 나의 실패로 너의 실패를 응원하는 가슴 뜨끈한 연대의 현장이다. 회사에서 정신이 고장 나지 않게 버티는 조언도 해준다. 남이 하는 말을 걸러듣고 일의 망침이 나의 망침이 아니라는 것. 회사에서 책임지고 벌받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고. 


월세를 살며 반려동물 맷돌이와 지내다가 주인이 전세로 돌리겠다고 하니 공인중개사에게 자신이 잘하는 싹싹 빌기를 시전한다. 제발 맷돌이와 살게 해주세요.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답니다. 우울한 사람에게는 위로와 공감보다는 육아 서적을 선물하라고도 한다. 가장 쉬운 언어로 우울한 당신을 다독여준다고. 꼭 해봐야겠다. 마음이 어두울 땐 빛이 있다는 사실도 잊는다. 어두운 마음을 내려놓고 집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친절한 친구처럼 집까지 데리고 온다. 


하루에 꼬박꼬박 하는 규칙적인 게 있다면 그건 실패에 대한 무용담 혼자 곱씹기이다. 무례를 밥 말아 먹은 그 사람에게는 한 마디 쏘아줬어야 하는데 가스라이팅 당한 것처럼 왜 죄송하다고 했지? 나의 미안함은 잘못을 해놓고도 사과하지 않은 당신이 미안해해줬으면 하는 건데 왜 그걸 모르지? 누워 있다가 얼굴이 뜨거워진다. 나의 실패는 오색 찬란하진 않고 그레이 색이다. 칙칙한 그레이 색. 그래 이 새끼야. 


『오색 찬란 실패담』의 실패담을 실패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아닌 서 있는 오토바이에 부딪혀 스스로 정형외과를 찾아가고 유튜브를 보다가 유튜브를 찍고 사이비에 당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실패일까. 실패를 가장한 어제와 오늘의 성공 스토리. 오색 찬란 성공담이라는 속편을 기다린다. 재수 없는 제목이라고 생각해서 안 팔릴 것 같지만 『오색 찬란 실패담』처럼 반어적인 컨셉으로 밀면 된다. 실패담은 성공담이고 성공담은 실패담. 각자의 자유대로 생각하게 놔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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