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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라디오 체조 ㅣ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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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러셨는지. 설 연휴 마지막 날 저녁에 마음이 굳고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내일과 업무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 습습후후 하셨는지.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은 국가가 나서서 일주일로 공휴일을 지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괜히 속상해 하진 않았는지.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을 해야 괜찮을 것 같아서 괜찮은 척을 해보는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넷플과 디플과 티빙과 웨이브를 왔다 갔다 하다가 고른 책은 오쿠다 히데오의 『라디오 체조』였다.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무표정 간호사 마유미가 17년 만에 귀환했다는 책 표지 문구에 추가된 문장은 '초긴장 사회의 절대 인재, 닥터 이라부의 맞말 대잔치' 이다. 순간 잘못 읽어서 막말 대잔치라니 하면서 감명받아 이건 사야 해라면서 구매 완. 책을 사서 보니 막말이 아닌 '맞말'이었다. 또 감명받았다. 기가 막히게 말을 만들어 내는구나. 의사 이라부는 막 말하지만 잘 들으면 맞는 말만 하니까.
괴짜 의사와 간호사가 주인공인 『라디오 체조』를 읽으며 긴장을 조금은 늦출 수 있었다. 왜 나의 마음이 아플까를 『라디오 체조』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통해 자가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열심과 노력과 최선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초조함과 긴장은 기본값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스트레스를 귀신처럼 어깨에 매달고 (그 괴담 아시는지. 어린아이가 어느 날 아빠를 보더니 아빠, 아빠는 왜 맨날 죽은 엄마를 업고 다녀 하던) 돌아다닌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라부 시리즈를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했단다. 그러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현대인들이 가지는 불안과 고달픔을 소설 속 인물을 통해서나마 달래주고 싶어 다시 이라부 시리즈를 완성했다. 『라디오 체조』는 읽는 내내 황당하고 웃겨서 피곤이 풀리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이라부는 시청률 강박증, 광장 공포증, 사회 불안장애 등을 호소하는 환자 앞에서 킹 받는 말만 해준다.
어째 환자들은 그런 말을 듣고도 화가 나지 않는다. 다정하고 누구에게라도 권위 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그 앞에서 묘한 안도감과 평화를 느끼고야 마는 것이다. 심각해하지 않으며 환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비타민 주사를 처방하고 주사 맞는 걸 지켜본다. 약 처방은 하지 않고 환자가 원한다면 왕진료를 두둑이 받고 집에까지 찾아간다.
두 번 세 번 읽게 만드는 문장은 없다, 『라디오 체조』에는.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자조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불안과 걱정이 많아 일어나지 않을 일에 쓸데없이 힘을 쓰고 있다는 것. 의사 이라부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가와이 씨, 이제 급한 일 없지? 자, 모처럼 왔으니 커피라도 마시고 가. 어-이, 마유미 짱. 커피 두 잔 부탁해. " 또는 "뭐, 일단은 병원에 좀 다녀봐. 잘 듣는 주사를 놔줄 테니까." 혹은 "단순한 긴장이야. 자율신경 부전이지." 같은 딱딱해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말.
괜찮고 다 괜찮을 것. 걱정할 시간에 어제 보다 만 넷플릭스 시리즈 《아이 엠 낫 오케이》를 이어 볼 것. 두둥. 현대인의 심신이 안정되는 소리를 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