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대여 페이백] 아홉수 가위
범유진 / 안전가옥 / 2024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설이라고 해서 별 건 없고 대형마트에 가기 위해 택시를 두 번 탔다. 생각해 보니 갈 때는 버스 타고 내려서 걸어가도 되었던 것이다. 그저 무지성과 편안함에 길들여 택시를 탄 나 자신 반성해. 올 때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할 만큼 그 또한 무지성과 안일함으로 쇼핑 카트에 물건을 담아 제꼈다. 세일하는 스누피 면기와 숟가락, 디퓨저, 물때 끼지 않는 샤워 호스는 충동구매의 결과임을 밟힌다. 


딸기는 쳐다도 보지 않았고(딸기보다 고깃값이 싼 거 실화임?) 호객 행위에 걸려든 호갱이라 냉동 완자를 네 봉지나 산 건 비밀이다. 원래는 만두를 사려고 했다만 자본주의 친절에 넘어가버려 냉동실에는 완자 천국이 되어버렸다. 길고 긴 영수증을 받아들고 집에 와 마트 장본 물건을 언박싱 했다. 분명 물에 불려 먹는 누룽지를 골랐는데 집에 와보니 과자로 먹는 누룽지여서 나를 열받게 했다. 내가 나를 열받게 하는 것 또한 능력이다. 


조금씩 모아 놓은 돈은 흔적도 없이 녹았고 나는 반성 모드로 책을 구매했다. 몸의 양식에 때려 부은 돈을 마음의 양식으로 돌려야 하기에. 안전가옥에서 나온 범유진의 소설 『아홉수 가위』는 책을 소개하는 '청년은 폭발하기 직전이다'라는 문구에 꽂혀서 샀다. 왜 그럴까라는 물음도 없이 현시대를 사는 청년들의 마음 안에는 용광로가 몇 개씩 자리 잡고 있다. 사는 게 참 마트 영수증만큼이나 길고 무섭고 정말 이게 맞나 싶을 정도의 의아함으로 가득차 있으니까. 


네 편의 소설이 실린 단편집 『아홉수 가위』는 슬프고 속상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먼저 첫 번째 이야기. 정직원이 될 꿈만 가지고 버티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이곳에서 청춘을 보내기엔 막막하다. 이사 아들이라는 탁 팀장은 회식 때 나를 성추행 했고 생삼겹살로 탁 팀장의 뺨을 갈겼다. 그 이후로 나는 탁 팀장의 만만디 북이 되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오일장 할머니에게서 우주 씨앗을 산다.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겠지?(「1호선에서 빌런을 만났습니다」)


「아주 작은 날갯짓을 너에게 줄게」는 자매 및 형제란 무엇인가 잠깐 상념에 빠지게 한다. 생물학적 부모를 같이 둔 그들은 어떻게 싸우고 화해하고 용서하는가를 판타지스럽게 이야기한다. 표제작 「아홉수 가위」는 서늘하지만 따뜻한 소설이다. 이 앞뒤 안 맞는 걸 역설이라고 한다지. 소설의 내용은 무섭지만 무섭지 않으며 읽어나갈수록 괴상한 스토리 전개 때문에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훌쩍훌쩍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공평 없는 세상에서 노력으로만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소설이다. 


마지막 소설 「어둑시니 이끄는 밤」에서 트라우마의 극복은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고찰한다. 내 안의 어둠을 먹고 사는 어둑시니를 삭제하기 위한 노력의 분투가 돋보인다. 책을 읽는 동안은 괜찮다. 과소비를 한 나 자신 써봐야 얼마나 썼다고 그걸 자책하는 나 자신을 한심해하다가  『아홉수 가위』를 읽고는 안심했다. 지박령이자 물귀신이 들려주는 살아 있는 동안의 우리가 해야 할 행동 요령 때문에. 죽음 이후를 남길 생각을 하지 말 것. 현생에 맛난 거 먹고 예쁜 걸 가질 것. 아홉수에 갇힌 우리를 도와줘서 지박령이자 물귀신아 고마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