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양이 낸시 (스티커 포함)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2월
평점 :




펭수가 인기다. 남극에서 온 210cm 자이언트 펭귄, 펭수. 남과 다른 덩치 때문에 남극에서는 혼자였던 펭수. 그에 굴하지 않고 BTS가 있다는 한국을 향해 헤엄쳐 온 펭수. 한국에 온 지 일 년도 안 돼 슈퍼스타가 되었다. 할 말은 다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그 혹은 그녀에 한국인들은 반해버렸다. 나 역시 직설과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펭수에게 빠져 빠져 버렸다. 한 번도 본 사람은 없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펭수의 영상을 돌려보며 눈치를 챙겨가며 살고 있다.
너무…뚱뚱한 것 같지 않아?
여기 펭수 보다 한발 앞서 남과 다른 덩치로 찾아온 친구가 있다. 북쪽에서 온 쥐라고도 하는데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녀가 고양이라는 것을. 컬러풀한 리본을 좋아하고 공주님이라고 부르면 더 좋아하는 특별한 친구, 낸시. 엘렌 심의 만화 『고양이 낸시』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는 게 설레고 벅차다. 이제 나만의 친구 목록에 낸시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낸시는 쥐 가족인 더거 씨와 지미네 집 앞에 놓여 있었다. 아기 고양이가 추워하니까 더거 씨는 망설인다. 어떻게 하지?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야 하나,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졌다. 조금 힘에 부치지만 낸시를 들어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날부터 낸시는 더거 씨네 가족이 되었다. 지미는 예쁜 여동생이 생겼고 아빠 더거 씨는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 목록에서 쥐를 지운다.
『고양이 낸시』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왜 낸시가 더거 씨네 집 앞에 있었는지. 더거 씨는 어떤 마음으로 고양이 낸시를 받아들였는지. 이유를 늘어놓지도 설명을 반복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은 가족이 된다. 쥐 마을에서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된다. 마을 주민들은 회의에 들어가지만 치명적인 낸시의 귀여움에 반해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낸시를 받아들인다.
그거면 된다. 하나 되는 마음. 천적, 종의 다름, 편견, 설명에 따른 해명 없이도 그들은 가족과 친구가 된다. 지미는 동생 낸시를 데리고 학교에 간다. 그곳에서 낸시는 핵인싸가 된다. 애착 담요를 힘겹게 집에 놔두고 온 루시도 낸시의 북슬북슬한 꼬리에 반해 버린다. 담요 따윈 곧 잊어버린다. 키가 크고 북실한 털을 보고 친구들은 북쪽에서 온 쥐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당분간 아이들에게 낸시가 고양이라는 걸 말하지 말자고 했지만 오빠 지미는 제일 먼저 알았다. 낸시는 고양이다!
낸시는 사실 아주 조금 특별하단다…
낸시도 알 거다. 자신이 쥐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어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아이는 모르길 바란다. 어디 어른들 바람대로 일이 되어가던가. 어른보다 자신만의 촉수로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다. 낸시와 놀다가 책을 읽게 된 아이들은 낸시가 고양이라는 것을 알아버린다. 그 후에 일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고양이 낸시』는 당신이 상상하는 모습과는 다른 결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빠, 오빠, 친구들과 자신의 외형이 다름을 눈치챈 낸시는 묻는다. 너무 뚱뚱한 것 같지 않냐고. 아빠는 괜찮다고 말해준다. 낸시는 안심한다. 괜찮아,라는 한 마디. 우리는 이 말을 왜 그렇게 아꼈는지. 꼭 해줘야 했을 때 하지 못한 괜찮아,라는 한 마디. 그 말이 낸시를 다름이 아닌 나름의 길로 이끌어 간다. 생각해보면 학교는 혹독한 곳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의 교실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촉이 발달한 아이들은 인기쟁이를 찾아 무리를 만들었다.
얼굴에 여드름이 나고 키가 작은 교복은 중고로 입은 아이를 아이들은 재빠르게 파악해 버렸다. 넌 괜찮지 않아, 우리와는 달라. 선을 그어버렸다. 『고양이 낸시』는 그때 그 시절의 아이에게 그때 그 시절을 힘들게 기억하는 나에게 주고 싶은 책이다. 자신들을 잡아먹는다는 천적 고양이에게 마음을 내어 주고 괜찮다고 우리는 친구라고 말하는 쥐 친구들은 세상에 다시없을 따뜻한 온기인 것이다.
아주 조금 달라 하지만 그게 절대 나쁜 것이 아니란다!!!
아빠 더거 씨가 낸시에게 힘들게 말을 꺼내려고 할 때 낸시는 말한다. 자신은 고양이라고. 친구들과 다르지만 괜찮다고. 이런 한발 늦어 버렸다. 사랑스러운 낸시의 친구들이 백과사전에서 찾은 고양이 항목을 통해 이미 낸시에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낸시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라고. 영화 <벌새>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은희의 남자친구 엄마는 은희를 보자마자 대뜸 묻는다. 네가 방앗간 집 딸이니?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아들을 데리고 간다. 남겨진 은희의 모습이 오래 마음에 새겨진다.
차이를 만들고 인정하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고양이 낸시』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어른들이 포용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들은 무엇이든 무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나이가 많음으로 권위를 가질 수 없고 선을 그어 테두리 안에 가둬 두는 행동으로 우리를 함부로 규정지을 수 없다고. 조금 다른 게 나쁜 거라고 가르치는 어른이 있는 세계에서 낸시들은 살아갈 수 있을까.
남극에서는 혼자였던 펭수. 한국에 와서 스타가 되었고 친구도 많아졌다. 자신감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며 일과 취업, 출산, 내 집 마련, 기회 없음에 힘들어하는 어른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팍팍. 그런 펭수가 남극에 있으면서 혼자 쓸쓸해 했더라면 우리는 기운 넘치고 당당한 펭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꿈을 향한 펭수의 도전이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낸시 역시 특별한 존재로서 주변의 쥐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준다. 세상에 펭귄에게 위로를 받다니. 이런 생각을 했던가. 알고 있지만 부정한 건 아닐까. 우리는 이미 종을 뛰어 넘는 존재들에게 웃음을 얻고 희망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귀여움으로 무장한 낸시가 주는 위로는 애틋하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향한 배려와 공감의 자세를 낸시는 알고 있었다.
키가 작은 오빠 지미와 늘 함께 하고 싶어 꼬리를 잡고 걸어가는 낸시. 공주님 역할이 좋지만 자신에게 더 들어맞는 해님을 선택하며 다른 친구에게 기회를 주는 낸시. 사랑받을 자격이란 누가 부여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남과 다른 모습에 위축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차이를 극복하는 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걸 낸시가 해낸다. 누구도 혼자일 수 없고 누구나 우리가 될 수 있다. 『고양이 낸시』에서는 나를 나로서 긍정하는 용기의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각각의 소제목은 엘린 심의 『고양이 낸시』中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부드럽고 포근한 만화와 따뜻한 대사가 사랑스러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