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존경 - 이슬아 인터뷰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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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은 용기를 말하고 있는 책이다. 네 개의 용기가 모여 거대한 힘이 됨을 증명하는 책이기도 하다. 월화수목금 일간 연재를 이어온 이슬아는 그간의 이슬아가 지겨워져 색다른 이벤트를 계획한다. 일간 이슬아에서 벗어나 다른 날의 이슬아가 된다. 그 결과가 『깨끗한 존경』에 담겨 있다. 봄과 여름에 만난 사람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고 되새기며 이슬아는 또 하나의 문을 열어젖힌다.

정혜윤의 말을 나도 받아 적었다. 그중에 인상적인 말. "누구나 용기를 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용기가 될 수 있어요."(21쪽) 라디오 피디이면서 다독가이고 책을 쓰는 정혜윤은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월호 유족을 만나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생긴 변화다. 메모를 하지 않는 습관 때문에 많은 부분을 기억에 의존한다. 기억력이 좋고 신중하게 하는 말속에서 단단한 마음을 느꼈다.

누군가를 연민하거나 동정하는 것은 금물. '깨끗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 뿐이라고 한다. 이타심도 아니다. 당신만은 나 같은 힘든 일을 겪지 말라는 말과 행동에서 정혜윤은 존경과 감탄을 한다. 이슬아는 『아무튼, 비건』을 읽고 채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책의 저자 김한민을 만나러 간다. 엄마 복희도 김한민의 강연을 듣고 어느 날부터 채식 주의자고 되었다.

페르난도 페소아 연구자이자 만화를 그리고 잡지의 편집장을 했던 김한민에게서는 솔직함이 느껴졌다. "외국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남성 사회라서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남자에다가 키가 큰,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굴지 않아요. 그런 못된 인간들이 많죠. 체격이 작고 어린 사람들한테는 아무 질문이나 해도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요. 얼마나 무례한지 몰라요."(76쪽)

채식을 시작한다고 말하는 이에게 가해져오는 시선과 언어폭력에 맞서는 방법이 『아무튼, 비건』에 있다고 한다. 언젠가 채식을 했었고 실패로 돌아갔다. 실패라는 말은 시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 책을 읽어보고 시도할 마음을 가져보아야겠다. 김한민의 말 중에서 '위대한 사람은 없어도 위대한 만남은 있'다는 말에 동의하며 이슬아가 왜 김한민을 만나고 싶어 했는지 알 것도 같다. 오랫동안 책을 읽고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용기를 가진 사람.

등단 절차를 밟지 않고 시를 쓰고 책을 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셔터를 내린 사람, 유진목. 원래는 목유진인데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할 때 서양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꿔서 냈다. 유진 목으로. 그 이후 사람들이 진목으로 불렀다. 어감이 좋아서 계속 유진목이 된 사람. 『깨끗한 존경』에 인용된 시들이 좋아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부산 영도에 서점을 열었다. 너무 좋은 글을 읽었을 때는 "와 씨, 너무 좋다"라는 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다고도 했다.

가난의 이미지가 아닌 실제를 가지고 살아간다. 어딘가에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시를 쓰고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고.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며 울 줄 안다. 인터뷰는 이슬아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유진목이 떠나고 이슬아는 이렇게 쓴다. "유진목 선생님이 내 집을 떠난 저녁에 나는 서재를 곧바로 치우지 않았다 선생님이 다녀간 흔적을 다음날 아침까지 두고 싶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책상 위에 남았다. 사랑과 용기도 남았다. 사랑과 용기에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거기에 분명히 있었다. 자신의 쓸쓸한 곳을 그것들로 채운 사람이 다녀갔기 때문이다."

이슬아는 김원영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의 직업은 변호사인데 나는 변호사로서 김원영보다도 작가로서의 김원영에 대해 자세히 탐구하고 싶었다. 그는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두 권의 아름다운 책을 낸 저자이고 배우이다." 『깨끗한 존경』을 읽지 않았더라면 김원영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서점사에 올라오는 책 광고 중 제목이 특이한 책이 있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었다. 그 책의 저자이기도 했다.

몸에 대해서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내 몸에 자신이 없다. 그토록 원하지만 춤을 제대로 못 추고 짧은 다리와 팔을 가지고 있어 어느 옷을 입어도 보호용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허술한 몸. 이런 생각도 배부른 소리라는 것쯤은 알기에 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휠체어를 타고 연극을 하고 춤을 춘다. 책을 읽고 책을 쓰고 누군가를 위해 변호한다.

『깨끗한 존경』을 읽으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랑과 용기는 꼭 필요한 가치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싸구려 위로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슬픔이 슬픔을 위로하는 시대. 약자가 약자를 보호하는 세상. 이런 시간을 지나 사랑, 용기, 희망, 연대 좀 더 환하고 긍정적인 말로 슬픔을 껴 안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동정이 아닌 존경이라는 가치로 고통을 응시할 수 있는 내일에 『깨끗한 존경』이 함께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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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낸시 (스티커 포함)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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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가 인기다. 남극에서 온 210cm 자이언트 펭귄, 펭수. 남과 다른 덩치 때문에 남극에서는 혼자였던 펭수. 그에 굴하지 않고 BTS가 있다는 한국을 향해 헤엄쳐 온 펭수. 한국에 온 지 일 년도 안 돼 슈퍼스타가 되었다. 할 말은 다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그 혹은 그녀에 한국인들은 반해버렸다. 나 역시 직설과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펭수에게 빠져 빠져 버렸다. 한 번도 본 사람은 없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펭수의 영상을 돌려보며 눈치를 챙겨가며 살고 있다.

너무…뚱뚱한 것 같지 않아?

여기 펭수 보다 한발 앞서 남과 다른 덩치로 찾아온 친구가 있다. 북쪽에서 온 쥐라고도 하는데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녀가 고양이라는 것을. 컬러풀한 리본을 좋아하고 공주님이라고 부르면 더 좋아하는 특별한 친구, 낸시. 엘렌 심의 만화 『고양이 낸시』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는 게 설레고 벅차다. 이제 나만의 친구 목록에 낸시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낸시는 쥐 가족인 더거 씨와 지미네 집 앞에 놓여 있었다. 아기 고양이가 추워하니까 더거 씨는 망설인다. 어떻게 하지?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야 하나,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졌다. 조금 힘에 부치지만 낸시를 들어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날부터 낸시는 더거 씨네 가족이 되었다. 지미는 예쁜 여동생이 생겼고 아빠 더거 씨는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 목록에서 쥐를 지운다.

『고양이 낸시』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왜 낸시가 더거 씨네 집 앞에 있었는지. 더거 씨는 어떤 마음으로 고양이 낸시를 받아들였는지. 이유를 늘어놓지도 설명을 반복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은 가족이 된다. 쥐 마을에서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된다. 마을 주민들은 회의에 들어가지만 치명적인 낸시의 귀여움에 반해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낸시를 받아들인다.

그거면 된다. 하나 되는 마음. 천적, 종의 다름, 편견, 설명에 따른 해명 없이도 그들은 가족과 친구가 된다. 지미는 동생 낸시를 데리고 학교에 간다. 그곳에서 낸시는 핵인싸가 된다. 애착 담요를 힘겹게 집에 놔두고 온 루시도 낸시의 북슬북슬한 꼬리에 반해 버린다. 담요 따윈 곧 잊어버린다. 키가 크고 북실한 털을 보고 친구들은 북쪽에서 온 쥐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당분간 아이들에게 낸시가 고양이라는 걸 말하지 말자고 했지만 오빠 지미는 제일 먼저 알았다. 낸시는 고양이다!

낸시는 사실 아주 조금 특별하단다…

낸시도 알 거다. 자신이 쥐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어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아이는 모르길 바란다. 어디 어른들 바람대로 일이 되어가던가. 어른보다 자신만의 촉수로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다. 낸시와 놀다가 책을 읽게 된 아이들은 낸시가 고양이라는 것을 알아버린다. 그 후에 일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고양이 낸시』는 당신이 상상하는 모습과는 다른 결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빠, 오빠, 친구들과 자신의 외형이 다름을 눈치챈 낸시는 묻는다. 너무 뚱뚱한 것 같지 않냐고. 아빠는 괜찮다고 말해준다. 낸시는 안심한다. 괜찮아,라는 한 마디. 우리는 이 말을 왜 그렇게 아꼈는지. 꼭 해줘야 했을 때 하지 못한 괜찮아,라는 한 마디. 그 말이 낸시를 다름이 아닌 나름의 길로 이끌어 간다. 생각해보면 학교는 혹독한 곳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의 교실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촉이 발달한 아이들은 인기쟁이를 찾아 무리를 만들었다.

얼굴에 여드름이 나고 키가 작은 교복은 중고로 입은 아이를 아이들은 재빠르게 파악해 버렸다. 넌 괜찮지 않아, 우리와는 달라. 선을 그어버렸다. 『고양이 낸시』는 그때 그 시절의 아이에게 그때 그 시절을 힘들게 기억하는 나에게 주고 싶은 책이다. 자신들을 잡아먹는다는 천적 고양이에게 마음을 내어 주고 괜찮다고 우리는 친구라고 말하는 쥐 친구들은 세상에 다시없을 따뜻한 온기인 것이다.

아주 조금 달라 하지만 그게 절대 나쁜 것이 아니란다!!!


아빠 더거 씨가 낸시에게 힘들게 말을 꺼내려고 할 때 낸시는 말한다. 자신은 고양이라고. 친구들과 다르지만 괜찮다고. 이런 한발 늦어 버렸다. 사랑스러운 낸시의 친구들이 백과사전에서 찾은 고양이 항목을 통해 이미 낸시에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낸시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라고. 영화 <벌새>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은희의 남자친구 엄마는 은희를 보자마자 대뜸 묻는다. 네가 방앗간 집 딸이니?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아들을 데리고 간다. 남겨진 은희의 모습이 오래 마음에 새겨진다.

차이를 만들고 인정하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고양이 낸시』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어른들이 포용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들은 무엇이든 무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나이가 많음으로 권위를 가질 수 없고 선을 그어 테두리 안에 가둬 두는 행동으로 우리를 함부로 규정지을 수 없다고. 조금 다른 게 나쁜 거라고 가르치는 어른이 있는 세계에서 낸시들은 살아갈 수 있을까.

남극에서는 혼자였던 펭수. 한국에 와서 스타가 되었고 친구도 많아졌다. 자신감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며 일과 취업, 출산, 내 집 마련, 기회 없음에 힘들어하는 어른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팍팍. 그런 펭수가 남극에 있으면서 혼자 쓸쓸해 했더라면 우리는 기운 넘치고 당당한 펭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꿈을 향한 펭수의 도전이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낸시 역시 특별한 존재로서 주변의 쥐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준다. 세상에 펭귄에게 위로를 받다니. 이런 생각을 했던가. 알고 있지만 부정한 건 아닐까. 우리는 이미 종을 뛰어 넘는 존재들에게 웃음을 얻고 희망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귀여움으로 무장한 낸시가 주는 위로는 애틋하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향한 배려와 공감의 자세를 낸시는 알고 있었다.

키가 작은 오빠 지미와 늘 함께 하고 싶어 꼬리를 잡고 걸어가는 낸시. 공주님 역할이 좋지만 자신에게 더 들어맞는 해님을 선택하며 다른 친구에게 기회를 주는 낸시. 사랑받을 자격이란 누가 부여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남과 다른 모습에 위축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차이를 극복하는 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걸 낸시가 해낸다. 누구도 혼자일 수 없고 누구나 우리가 될 수 있다. 『고양이 낸시』에서는 나를 나로서 긍정하는 용기의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각각의 소제목은 엘린 심의 『고양이 낸시』中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부드럽고 포근한 만화와 따뜻한 대사가 사랑스러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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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 단련 - 이슬아 산문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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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쓴다, 와는 다른 어감이다. 쓴다와 써야 한다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전자는 쓰는 주체는 나이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개념이고 후자는 다른 외부적인 요소들이 쓰는 주체를 몰아붙인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누구나 일상을 살아가지만 누구도 일상을 쉽게 살아가지는 못한다. 그 안에는 자신이 정한 수많은 규칙이 존재하고 그걸 지키기 위해 애를 쓰는 자신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이슬아는 그걸 해낸다. 명목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한 것이었지만 평소 자신을 단련하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메일로 쏴준다. 말 그대로 글을 쏴주는 일. 한 편당 500원의 글은 와이파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날아간다. 6개월 연재를 했더니 빚을 다 갚았더란다. 빚을 갚고 빛을 얻었다. <일간 이슬아>는 그렇게 시작되고 글이 좋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대단한데 독립 출판까지 해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발행한다. 동네 서점에 입고한 책은 또 좋다는 소문이 나서 1만 부가 팔린다. 대형 서점에도 납품하고 싶어서 그는 사업자 등록을 하고 통장을 개설하고 엄마 복희를 직원으로 써서 '헤엄 출판사'를 차린다. 나 같은 허약한 인간이 보기에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다. <일간 이슬아>는 <인간 이슬아>라고도 잘못 알려져 있다고도 하는데 '인간 이슬아'는 대단한 사람이다.

『심신 단련』은 <일간 이슬아> 시즌 2의 연재분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은 나는 <일간 이슬아>의 독자는 아니지만 책을 부지런히 읽기에 『심신 단련』은 읽을 수 있었다. 단순하게 감상을 말하자면, 좋았다. 미슬아(미래의 이슬아)를 위해 과슬아(과거의 이슬아)가 청소를 해놓고 자이언트 우먼을 찾아가 트레이닝을 받고 보증금과 월세의 상관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추억 여행을 하는 심심하지만 어찌 보면 익사이팅 한 일상의 단면을 그리는 글이, 좋았다.

이런 건 나도 쓸 수 있겠네 하는 책이 이제는 훌륭한 책이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과거의 허술하고 허세 가득한 나는 난해하고 현학적인 잘난척하기 좋은 책들만을 읽으며 누군가 들을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읽고 그걸 추천하고 나는 이런 걸 읽기 때문에 잘난 사람이야, 재수 없는 애였다. 안다, 이제는. 나도 쓸 수 있겠네 하는 책은 나는 쓸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을. 쉽게 쓰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집과 몸, 마음, 돈, 우정에 대한 진지하고 솔직한 이야기가 『심신 단련』을 채운다. 돈 이야기를 하는 이슬아 편이 유쾌했다. 대리 만족까지 느껴야 했다. 그래서 얼마 줄 건데요?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돈 이야기라는 걸 모른척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위를 차지하고 있다. 프리랜서로서 살아가는 이슬아. 이 행사의 취지는 무엇이고 어떤 부분을 확장한 것인지를 말하면서 돈 이야기는 하지 않는 메일에 정확한 돈의 액수와 지급일을 물어보는 이슬아.

등단을 못한 것이지 안 한 게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이슬아. 재택근무자로서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하고 운동하고 책을 읽고 낮잠을 잔다고 한다. 자신의 책에 추천사를 써주는 금정연에게 원고를 받기도 전에 원고료를 입금해서 금정연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자신의 일에 대한 통찰과 반성을 하게 했단다. 그래서일까. 금정연의 추천사는 훌륭하다. 왜 그런지는 직접 읽어보시길.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낄 줄 안다는 충만한 느낌을 『심신 단련』으로부터 받았다. 모든 글의 핵심은 쓰는 나를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할 것인가로 나온다. 수필로 소통되는 이슬아의 글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이슬아의 이야기가 있다. 그중에서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가 아닌 쓴다는 마음으로 책상을 향해 걸어가는 이슬아를 응원한다. 괜찮은 척하는 나가 아닌 괜찮은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을 읽는 일은 소중하다. 『심신 단련』이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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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입자 - 청소년 테마 소설 문학동네 청소년 40
김리리 외 지음, 유영진 엮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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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갯빛 소설이 여기 모여 있다. 사랑을 테마로 쓰인 일곱 편의 이야기는 누구라도 읽어도 좋다. 『사랑의 입자』는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애만 태우던 그 시절의 나를 사랑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던 과거의 나를 만나게 해준다. 혜성이 지나가는 밤에 말하지 못한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사기당한 누나를 위로하는 일찍 철이 든 소년의 애틋함이 있다.

아주 먼 미래를 그린 소설에서도 사랑은 따뜻하고 빨갛고 짠하게 그려진다. '뭔가 달라 보여'라고 느끼는 순간, 사랑이 찾아왔음을 알아챈다. 친구의 거짓말을 이해하려는 순수함. 엄마, 아빠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현재를 사랑한다. 태어나자 버려졌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을 닫고 살다가도 주변을 돌아보면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은 섬처럼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이 있어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안심할 수 있다고 『사랑의 입자』는 말한다. 공부, 성적, 대학, 입시, 친구, 부유함, 눈치 보기, 주눅 들지 않는 것…. 신경 쓰고 챙길 게 많은 아이들. 몸은 아직 자라지 않았지만 마음은 크고도 깊어졌다. 이해시키고 강요하려고 하기 보다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사랑은. 어리다고 너는 아직 세상을 모른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책을 읽는다.

전삼혜의 「모르는 이야기」의 주인공 소년은 한 가지로 보이는 색깔을 수백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 그냥 빨간색이 아닌 다양한 감정을 담은 빨간색으로 보는 것이다. 말하지 못하는 소년이 볼 수 있는 세상의 다양한 감정의 빛깔.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말이 아닌 기분과 태도를 느끼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미처 표현하지도 못한 채 친구를 떠나보낸다면? 「우주 소녀」는 거짓말일지도 모를 친구의 이야기를 믿기로 결심하는 아이가 나온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어주는 소설의 결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를 오해하기는 쉽다. 이해하기 귀찮아서 오해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을 탐지해내는 능력을 찾아가는 것. 가시광선의 끝에는 환하게 빛나는 무지개가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고 하늘 한 편에 나타나는 무지개. 일곱 가지 색깔의 사랑을 찾아 떠나는 『사랑의 입자』의 여정에 너와 함께 하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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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도시 이야기
최정화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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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가 있다. 중앙 국가로부터 폐쇄 조치를 받은. L시. 아이들이 실종되고 온몸이 하얀 가루로 변하는 전염병이 도는 그곳. 손목이 떨어져 나가고 다른 이에게 전염이 되면 병이 낫는다. 다기조라고 불리는 전염병이 도시를 점령했다. 타인에게 옮겨간 후에야 바이러스는 사라진다. 사람들은 그 점 때문에 다기조를 두려워했다. 최정화의 『흰 도시 이야기』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L시를 배경으로 슬픔의 서사를 펼쳐 나간다.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나'는 근무 점수가 낮아 교역소로 발령을 받는다. 다기조 감염이 의심되는 부부를 만난 기억을 시작으로 '나'는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중앙 국가는 L시를 다기조 발병 지역으로 보고 은밀히 폐쇄 조치를 취한다. 다기조에 걸리고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벌이는 '흰개들'은 중앙 국가가 L시를 의도적으로 폐기하는 시도를 한다고 주장한다.

신체가 떨어져 나가고 온몸이 각질로 뒤덮이며 기억을 잃어간다. L시에 사는 주민들은 두 가지로 분리된다. L시 안에서 손목이 떨어지고 다른 이에게 다기조를 전염한 주민이 있고 모래 마을이라는 곳에서 다기조를 그대로 앓는 주민이 있다. 『흰 도시 이야기』는 전염병이 퍼지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염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증세는 어떤 사건으로 시작 되었음을 암시한다.

최정화는 전염병 서사 아래에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을 가지고 들어온다. '나'는 아이를 잃었다. 고요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와 살았고 사고에 의해 아이를 잃었던 기억을 병 때문에 잊어버렸다. '나'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L시를 벗어난다. 교역소에서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모래 마을에 아직 아이들이 있음을 알고 그곳으로 간다. 자신의 아이 고요의 흔적을 찾아가면서 '나'의 기억은 열린다.

슬픔으로 가득한 도시가 있었다. 중앙 정부는 그곳이 슬픔의 발원지라 여기고 이상한 소문으로 도시를 봉쇄했다. 죽음은 우연한 사건으로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인과 관계가 없다고도 했다.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고 했지만 입들을 막았다. 소설가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사진을 받고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위로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 『흰 도시 이야기』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쓰인 소설이다.

"그 사람이 모래마을 사람이 아니면, 그러면 안도해도 되는 건가요? 어차피 그 일은 일어나버렸는데, 모래마을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가 개죽음을 당한 거예요. 그건 안도할 일이 아닌데, 나는 안도하겠죠. 그게 누구를 위한 안도인지, 생각해봤어요?"
(최정화, 『흰 도시 이야기』中에서)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누구도 안도해서는 안 된다고 『흰 도시 이야기』는 말한다. 다기조는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시작되었다. 국가는 그걸 모르지 않았고 L시를 폐쇄하는 것으로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도시는…. 아이와 함께 했던 기억을 그 도시의 사람들은…. 슬픔에 사무쳐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 몸이 바스러지는 걸 겪으면서도 살아 나간다. 왜 사는지조차 잊어가면서.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과연 L시를 떠나는 것으로 이 치유할 수 없는 슬픔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까. 세계의 모든 곳이 L시가 되어가는 걸 막기 위한 탈주를 보여줌으로써 『흰 도시 이야기』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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