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 Q 창비청소년문학 94
박영란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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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즐기진 않는다. 오래 떠나봐야 당일 치기. 집이 좋다. 내 마음대로 물을 먹고 화장실도 들락날락할 수 있으니까. 분홍 베개에 누워 분홍 이불을 덮고 책을 읽거나 잠에 빠지는 하루. 굳이 멀리까지 가서 불편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 떠나봐야 안다지만 가지 않아도 안다. 좋겠지. 일상을 훌훌 벗어 던지고 낯선 곳으로 가면. 그러나 나의 귀차니즘은 여행을 떠나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 먹기를 거부한다. 집이면 된다. 배달 음식을 먹고 드라마를 보고 책을 보는 나의 집.

박영란의 『게스트하우스 Q 』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을 잃어버린 아이가 나온다. 식당 사업을 크게 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 마비로 죽었다. 정성이의 가족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다. 죽음 이후에 유산이 아닌 파산이 남았다. 할머니는 집과 과수원을 팔았다. 엄마는 언니가 살고 있는 원룸으로 들어갔다. 원룸에 정성이와 할머니, 엄마, 언니가 살아가야 했다.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던 기라 고모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왔다.

기라 고모는 정성이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 Q에 살아도 좋다고 말한다. 정성이는 원룸에서 모두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름 방학 동안 할머니와 잠깐만 머물기로 한다. 아주 사는 게 아니라고 잠시만 있다가 떠날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기라 고모에 대해서는 오랜 기억밖에 없다. 정성이가 어렸을 때 함께 잠들었는데 고모는 수면제 때문에 깨어나지 못했다. 정성이는 그때 고모가 자살을 시도했다고 기억한다.

Q에 머물며 여름을 보내면서 정성이와 할머니는 안정을 찾아간다.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기라 고모의 하루를 동력 삼아. 숙박객들을 위해 조식으로 도미밥을 하는 기라 고모. 정성이의 눈에는 낯설고 이상한 사람이 투숙해도 기라 고모는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게스트 하우스 Q 』는 살아가면서 좌절과 절망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로한다.

집이 없어진 정성이와 할머니. 아름답지 않은 과거를 가진 기라 고모. 사랑하는 이를 찾기 위해 늘 여행을 떠나는 장기 투숙자. 씩씩한 모습 뒤에 슬픔을 감추고 살아가는 미농 씨. 그들이 게스트 하우스 Q에 모여 슬픔을 치유한다. 별의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구에서 나눌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과 따뜻한 밥을 나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정의를 기라 고모는 이렇게 말한다.

"어른이 되어도 어른 노릇을 못 하게 되어 버린 거야. 모두가 아이처럼 살도록 되어 버린 거지. 용돈 정도의 임금에 만족하고 어떻게든 작은 기쁨을 찾아 소비하며 살다가, 늙으면 용돈보다 못한 푼돈에 의지해야 하는 세상으로 바뀐 거야."
(박영란, 『게스트하우스 Q 』中에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다정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집을 떠나 여행을 시작해 봐도 좋겠다. 낯선 곳에서 집처럼 편한 익숙함을 느끼게 된다면. 약간 태운 도미밥을 조식으로 주는 곳이라면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밝은 내일을 희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불행했던 과거를 잊고 현재에 충실하기. 갈아 엎어질 걸 알면서도 할머니는 밭에 해바라기를 심는다. 우린 모두 죽지만 매일을 살고 있다. 마음이 아픈 오늘이었다면 『게스트하우스 Q 』를 읽어 보시기를. 근사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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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익스체인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2
최정화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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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대로라면 화성에 땅이라도 사두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 옮겨가서도 슬픔에 빠지지 않으며 살 텐데. 2020년에는 하늘을 날으는 자동차가 등장하고 수중 도시가 만들어지리라는 상상화를 그리곤 했다. 인류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서 달나라에도 가리라는 막연한 상상, 은 상상일 뿐이었다. 봄이 되어 꽃이 피었다. 이른 아침과 저녁에는 찬바람이 불지만 봄은 도착해 있다.

최정화의 소설 『메모리 익스체인지』는 어느 먼 미래의 일을 그린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기 힘든 별이 되었고 지구인들은 화성으로 이주해 간다. 화성은 지구인을 이렇게 표현한다. '돈이 덜 드는 만큼 힘을 못 쓴다.' 화성이 지구인의 입국을 허락해 주는 까닭은 싼값에 지구인을 부리기 위해서이다. 지구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화성으로 간다. 그곳에서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과연 지구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

어렵게 티켓을 구해 화성에 도착한 가족이 있다. 그들은 아이디얼 카드가 없으면 화성 기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몰랐다. 150명의 지구인들이 화성에서 마련한 숙소에 머무른다. 화성의 회사는 그들에게 은밀한 제안을 해오기 시작한다. 갈 곳이 없는 지구인에게 경제 사정이 어려운 화성인이 아이디얼 카드를 파는 것이다. 대신에 그들은 자신의 기억을 넘긴다. 기억을 없애고 화성 특별 구역에 들어가 몸을 의탁한다.

아이디얼 카드를 얻은 지구인은 화성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기억을 교환하는 '메모리 익스체인지'는 지구인과 화성인이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나. 최정화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끊임없이 소설에서 환기 시킨다. 내일을 위해 어제의 나를 버려야 하는 삶을 축복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화성에 안착해 살기 위해 기억을 교환하는 일은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메모리 익스체인지』는 화성이 배경이지만 이는 지구에서의 행태를 그리기 위함이다. 국경의 경계가 모호해졌지만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자세는 배척, 혐오, 경계라는 단어로 명확하다. 전쟁과 기아를 피해 어렵게 타국에 도착했지만 그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기억을 교환하고 아이디얼 카드를 받는 소설 속 설정은 지금의 이주민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서로의 기억을 이식받은 그들이 만난다. 나는 내가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과거의 나를 받아들인다. 『메모리 익스체인지』의 미래는 가혹하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고사하고 지구마저 버려야 한다. 힘들게 화성에 갔지만 그곳에서마저도 배척 당한다. 가진 게 없어 나의 기억을 팔아야 하는 미래는 부디 오지 말았으면. 나를 나이게 하는 기억을 안고서 봄 길을 걷는다. 버스에 앉아 흩날리는 꽃잎을 보는 것으로도 행복했다. 오늘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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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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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있어 보자. 이 책을 언제 사두었더라. 날짜를 보니 2018년 9월 24일이다. 책이 나오자마자 샀다는 뜻이다. 언제나 그렇듯 사놓고 바로 읽지는 않는다. 책은 사두고 잊어버려야 제맛이니까. 간간이 계간지나 『젊은 작가 문학상』에 실린 단편은 읽긴 했다. 쭉쭉 읽힌다는 것이 장점인 소설들이었다. 지나치게 발랄하고 지나치고 우울해하는 양극단을 달리는 인물들이 나와 좌충우돌 사랑하고 술을 마신다. 여기까지는 무난하다. 사랑을 했다가 이별을 했다가 술을 마셨다가 하며 서로를 저주하고 그리워하는데 그들이 남자라는 것만 빼고는.

박상영의 다이어트 산문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읽고 전에 사두었던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집어 들었다. 제목도 길고 길어 다 외우지도 못할 것만 같은 첫 소설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을 시작으로 한 편씩 읽어갔다. 거지 같은 남자만 만나서 돈 뜯기는 게이 제제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소설은 문을 연다. 예약해 놓은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주사로 술집에서 나가지 않은 제제를 '나'는 기다려 준다.

50군데에 소설을 내고 떨어졌다가 기적적으로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뽑힌 두 편째 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는 인스타 중독자가 나온다. 그녀 소라를 애인으로 둔 죄로 하루 종일 곤란에 빠지는 '나'의 하루를 그린다. 뒤이어 나오는 소설 「부산국제영화제」는 앞의 소설에서 관찰당하는 소라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인스타 중독자답게 뭐든지 일상의 한 컷을 건지고 업로드 하기 위해 단어 앞에 #을 붙이기 위해 살아가는 소라. 두 소설에서 공통적인 주제 의식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춘의 비극적인 자아 찾기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표제작이기도 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예술을 한답시고 주접을 떠는 사람들이 떼로 나온다. 박상영은 인물의 특징을 살려 별명을 웃기게 잘 짓는다. 자이툰 부대에서 벽화 그리기 특명으로 만난 왕샤(성이 왕이고 샤넬 향수를 엄청 뿌려댄다는 이유로)와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 난리 블루스를 쳐대는 이야기.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의 주인공 제제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왕샤는 술만 먹으면 노래방 마이크를 탐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까지는 웃다가 나중에는 연민 한 스푼을 떠먹이면서 끝나는 이야기.

「조의 방」, 「햄릿 어떠세요?」, 「세라믹」은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에 나온대로 그가 왜 50군데에서 탈락을 맛보았는지 알 수 있는 소설의 연속이다. 세 편은 좀 무겁고 어둡고 그렇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세상을 긍정할 수 없는 소설이다. 한창 박상영이 재밌다고 했을 때 나 역시 귀가 얇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사두긴 했다. 이제야 읽는 건 산문집이 웃기고 솔직한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줘서(각색을 하긴 했겠지만. 매일 밤 굶고 자야지 다짐하는 게 남일 같지 않았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인물이 나누는 대화대로 일상과 예술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럴듯한 말로 예술을 포장하고 후려치곤 하는데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하루 삼시 세끼 밥 먹고 내일 먹을 삼시 세끼 걱정하는 건 똑같다. 별다른 게 없단 말이다. 그런데 이걸 별다르게 만드는 게 예술이라고 하네. 거기에서 나오는 깊은 빡침을 박상영은 소설로써 눙치고 들어간다.

노래방에 들어가서 한 시간이 맞는지 시간을 재고 3분이 빠졌다고 무선 마이크를 들고 나오고 우선 예약한 거 봤다고 싸우고.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랑 싸우고. 떨어질 걸 뻔히 알면서도 아이돌 오디션을 보러 가기 위해 가짜 치아를 박아 넣는다. 이런 게 예술이고 사랑이고 전투 아니겠는가. 심각해서도 안 되겠지만 별일 아닌 것처럼 굴기에도 포지션이 애매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과 평생 아싸로 살아가리라 깊은 예감이 엄습해 오는 인생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서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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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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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라고 쓰고 한 문단을 과감하게 띄운다.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박상영의 산문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산문'이라고 해서 책이 나오기도 전에 설렜다. 제목도 완전 심쿵 하지 않은가. 매일 밤 허기와 싸우는 나를 달래기 위한 주문 같은 말 아닌가. '오늘 밤은'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어제는 먹고 잤다는 말인데. 분명 그럴 것이다.

심리적 허기라고 누군가는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실체와 느낌이 팍팍 있는 허기이다. 지금 당장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데 잠도 오지 않은데. 그게 가짜 허기란다.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배달 책자를 넘긴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배달 앱을 깔지 않았다.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자 최후의 보루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칼을 들고 찾아와도 넘겨줄 수 없는 남도의 곡창지대를 지키는 이순신의 마음으로서 살아가는 다이어터의 발악이다.

당장 전화기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어버릴 것이다. 저 말고 닭을 구워 주시면 안 될까요. 몇 번 배달 앱을 깔긴 했다. 첫 주문 시 쿠폰을 준다기에 그것만 홀랑 쓰고 지워버렸다. 이런 나는 현명한 소비자이며 얌체. 지웠다. 배달 앱. 없다. 대신 책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배달 책자와 전단지가 가득 꽂혀 있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에 나오는 박상영의 빈번한 행동. 배달 앱을 누를지 말지 고심하는 모습을 보며 애가 닳고 짠하고 어서 바삭한 순살 치킨을 먹고 족발을 시켜서 나 대신 먹으란 말이다, 응원한다.

매 산문의 끝은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기승전굶고자야지의 반복이다. 이야기가 어디로 갔든 굶고 자겠다는 다짐을 한다. 몸무게 세 자릿수를 찍고 박상영은 회사에서 주변에서 몸에 대한 오지라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심지어 최 팀장은 그에게 다이어트 차를 내밀기도 한다. 그걸 먹으면서 박상영은 퇴사에 대한 결심을 한다. 자신은 별 뜻 없이 한 말과 행동은 누군가에게로 날아가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다이어트, 문학을 하게 된 계기, 최저 시급에 대한 기록, 꿈과 목표 사이의 간극, 내 몸을 사랑할까 말까의 갈등이 웃긴데 짠하고 그래서 울고 싶게 그려진다. 비만한 남자로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어낸 사실적인 이야기. 온몸이 불균형으로 이루어져 바지 하나를 사는데도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하는 현실. 산문이어도 허구 한 방울씩 들어갈 것 같지만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100퍼센트 리얼 박상영의 일상 체험담이라는 슬픈 예감이 맞을 것이라는.

회사에 다니면서 두 권의 소설집을 냈다. 정확히 9시에 출근해서 정확히 6시에 퇴근하는 마이클(미국인처럼 회사 생활을 한다는 뜻에서 회사 사람들이 박상영에게 붙여준 별명. 참으로 못난 인간들.)은 가방이 무거워서 어쩐지 몸이 뻐근해서 헬스장에 가는 것을 미루지만 집에 가서도 바로 소설을 쓰진 않는다. 그대로 누워 있다가 고민한다. 무엇에 대해? 소설을 어떻게 쓸까? 노노노. 배달 앱을 켜서 음식을 시킬지 말지에 대해.

소설을 쓰고 싶어서 대학원까지 갔지만 졸업을 하고도 남는 건 등단이 아닌 학자금 대출과 카드빚뿐. 그래서 다시 회사에 들어가고 점쟁이의 예언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해에 등단을 했다. 이후로는 치열하게 소설을 썼다. 오전 다섯시에 일어나서 썼단다. 대단. 박수. 짝짝짝. 회사 사람들에게는 철저하게 소설가임을 비밀에 부쳤지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야간 식이 증후군' 때문에 운동을 하는 몸인데도 투잡을 뛰는 사람인데도(대체 누가 운동을 하고 바쁘게 살면 살이 빠진다고 하는 건가. 그건 그냥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에 나오는 대로 유전자가 이미 내 몸의 체형을 결정해 놓은 거 아닐까. 비만을 게으름과 자기 관리의 실패한 사람의 상징으로 몰아붙이는 냉혹한 시선이여, 물러가라.) 박상영의 몸무게는 여전히 세 자리를 유지한다.

레귤러 핏의 바지를 입었는데 스키니 진으로 보여 친구를 웃게 만들고 유명 브랜드 행사에 초청받아서 갔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매니저가 맞는 사이즈가 없을 것 같다는 팩트에 왜 기분이 나쁠까 기분이 나쁘면 안 되는데 자신을 달래는 박상영.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에 웃음과 유머를 쥐어 짜내면서 근근이 버티는 박상영.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눈물과 손수건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대단한 깨달음과 성찰을 얻어서 자신의 몸을 긍정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라고 나와 있을 뿐이다. 퇴사 후 한동안 무기력에 빠져서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넷플릭스와 배달 앱으로 한동안 연명했다고. 통증 때문에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단다. 매일 자신을 다그치며 소설을 쓰고 회사를 다녔던 박상영은 이제 소설만을 쓴다.

저녁 10시가 넘어서 집에 오는 나에게는 엘리베이터가 최대의 난관이다. 특히 금요일 밤. 자석으로 된 전단지가 여기저기에 붙어 있고 치킨 냄새가 좁은 그곳을 떠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바로 시킬까. 씻기 전에 시켜 놓으면 씻고 나서 바로 먹을 수 있겠지. 근데 먹고 나면 내일 아침에 폭발해 있을 몸무게와 부은 얼굴은 어떻게 하나. 안 먹으면 미칠듯한 허기와 어지럼증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깟 몸무게라고 하지만 한동안 뚱뚱이로 살아봐서 안다. 그깟 몸무게가 아니다. 옷을 사러 가서 날씬이 동생과 비교 당하는 서러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 것인가. 게으름과 나태로 이루어진 나는 다이어트를 식단 조절로만 하고 있지만 매일 밤 찾아오는 심리적 허기가 아닌 진짜 몸의 허기를 달래고 어루만지고 쓰다듬다가 폭발해 버린다. 먹고 죽자. 오늘 밤은 먹고 내일부터는 굶자.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의 스무 편의 이야기는 매번 오늘 밤은 굶고 자는 것의 실패를 보여준다. 오늘 밤이 안 되면 내일 밤으로. 다시 오늘 밤이 되었고 무언갈 먹으며 내일은 꼭 굶고 자야지, 결심한다. 안다. 이런 결심을 해도 실패쟁이인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냉장고를 열어 하이에나 같은 눈빛으로 음식물을 탐지하고 있을 것임을.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지키지 못할 결심과 계획처럼 보이는 제목이지만 나라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성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어필하려고 에스엔에스 프사로 찍어 올리기에 좋은 책이다.

책을 받자마자 바로 찍어서 올렸다. 그래서 어젯밤은? 도저히 안 되겠기에 이러다 죽겠지 싶어 냉장고를 열었다. 나에게는 매일의 밤이 존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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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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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이 돌아왔다. 서른네 살의 수짱은 마흔이 되었다. 그 사이에 그녀는 카페 매니저에서 어린이집 조리사로 직업을 바꿨다.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는 마흔이 된 수짱의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나이를 먹었다는 자각이 들었지만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 안심하는 수짱. 함께 일하는 친절한 분이 수짱에게 마흔 살 생일 기념으로 젓가락을 선물한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수짱.

『수짱의 연애』이후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여전히 혼자인 삶일까. 일이 끝나고 돌아가서 집을 청소하고 자신만의 식탁을 차릴까. 그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이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에 담겨 있다. 변하지 않았다. 수짱은.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고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아이들과 어울리며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간다. 마흔의 수짱과 마흔다섯의 사와코의 삶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나의 오늘을 위로한다.

'혼자 사는 삶.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건 뭘까?'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를 소개하는 문구다. 수짱과 사와코는 혼자 살아간다. 종종 혼자인 삶에 불안을 느낀다. 사와코는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고 정년까지 근무할 예정이다. 그 후의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자식과 손자가 없는 노후의 삶이 불안하긴 하다. 사와코는 아픈 엄마를 돌본다. 문득 자신의 곁에는 누가 있을지 걱정하기도 한다.

수짱은 우연한 밤 산책길에 예전에 좋아했던 쓰치다 씨를 만난다. 결혼 여부는 묻지 않은 채 그간의 안부와 신상 이야기를 건넸다. 다시 만날 것을 예고한 쓰치다 씨. 수짱과 쓰치다 씨는 어떻게 될까. 대단한 사건도 깜짝 놀랄만한 반전도 없는 만화,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조금씩 아껴 읽으며 펼쳐본 이야기에서는 묵직한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사와코가 느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 수짱이 생각하는 오늘의 나의 모습. 쓰치다 씨, 그러면 안 돼요 하고 말해주고 싶은 밤. 각자의 자리에서 불안하지만 현재를 긍정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답게 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주변의 시선에서 의미 없이 하는 말에서 자유로워지고 싶구나, 머릿속이 아닌 입으로 말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걱정이 사라진다는 듯이.

고마움을 표현하고 곤경에 처해 있으면 있는 힘껏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이면 괜찮다. 수짱과 사와코가 느끼는 나이를 먹는다는 불안에서 우리 모두 자유로워지자. 스무 살에는 마흔이 멀어 보이고 그 나이가 되면 늙어버렸다는 것에 우울해질 것 같았지만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사실 나이를 의식하고 지내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표현이다. 신분을 증명할 때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일 때, 약봉지에 쓰인 만 나이를 볼 때나 와, 나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생각하는 정도다.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동지애를 느낀다, 수짱과 이곳의 나는. 그녀와 내가 할머니가 되는 꿈을 이룰 때까지 서로의 오늘을 응원해 줄 것이다. 대단한 오늘이 아니어도 좋다. 평범한 시간을 가졌음에 감사해 하며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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