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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평점 :
다이어트.
라고 쓰고 한 문단을 과감하게 띄운다.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박상영의 산문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산문'이라고 해서 책이 나오기도 전에 설렜다. 제목도 완전 심쿵 하지 않은가. 매일 밤 허기와 싸우는 나를 달래기 위한 주문 같은 말 아닌가. '오늘 밤은'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어제는 먹고 잤다는 말인데. 분명 그럴 것이다.
심리적 허기라고 누군가는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실체와 느낌이 팍팍 있는 허기이다. 지금 당장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데 잠도 오지 않은데. 그게 가짜 허기란다.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배달 책자를 넘긴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배달 앱을 깔지 않았다.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자 최후의 보루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칼을 들고 찾아와도 넘겨줄 수 없는 남도의 곡창지대를 지키는 이순신의 마음으로서 살아가는 다이어터의 발악이다.
당장 전화기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어버릴 것이다. 저 말고 닭을 구워 주시면 안 될까요. 몇 번 배달 앱을 깔긴 했다. 첫 주문 시 쿠폰을 준다기에 그것만 홀랑 쓰고 지워버렸다. 이런 나는 현명한 소비자이며 얌체. 지웠다. 배달 앱. 없다. 대신 책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배달 책자와 전단지가 가득 꽂혀 있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에 나오는 박상영의 빈번한 행동. 배달 앱을 누를지 말지 고심하는 모습을 보며 애가 닳고 짠하고 어서 바삭한 순살 치킨을 먹고 족발을 시켜서 나 대신 먹으란 말이다, 응원한다.
매 산문의 끝은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기승전굶고자야지의 반복이다. 이야기가 어디로 갔든 굶고 자겠다는 다짐을 한다. 몸무게 세 자릿수를 찍고 박상영은 회사에서 주변에서 몸에 대한 오지라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심지어 최 팀장은 그에게 다이어트 차를 내밀기도 한다. 그걸 먹으면서 박상영은 퇴사에 대한 결심을 한다. 자신은 별 뜻 없이 한 말과 행동은 누군가에게로 날아가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다이어트, 문학을 하게 된 계기, 최저 시급에 대한 기록, 꿈과 목표 사이의 간극, 내 몸을 사랑할까 말까의 갈등이 웃긴데 짠하고 그래서 울고 싶게 그려진다. 비만한 남자로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어낸 사실적인 이야기. 온몸이 불균형으로 이루어져 바지 하나를 사는데도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하는 현실. 산문이어도 허구 한 방울씩 들어갈 것 같지만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100퍼센트 리얼 박상영의 일상 체험담이라는 슬픈 예감이 맞을 것이라는.
회사에 다니면서 두 권의 소설집을 냈다. 정확히 9시에 출근해서 정확히 6시에 퇴근하는 마이클(미국인처럼 회사 생활을 한다는 뜻에서 회사 사람들이 박상영에게 붙여준 별명. 참으로 못난 인간들.)은 가방이 무거워서 어쩐지 몸이 뻐근해서 헬스장에 가는 것을 미루지만 집에 가서도 바로 소설을 쓰진 않는다. 그대로 누워 있다가 고민한다. 무엇에 대해? 소설을 어떻게 쓸까? 노노노. 배달 앱을 켜서 음식을 시킬지 말지에 대해.
소설을 쓰고 싶어서 대학원까지 갔지만 졸업을 하고도 남는 건 등단이 아닌 학자금 대출과 카드빚뿐. 그래서 다시 회사에 들어가고 점쟁이의 예언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해에 등단을 했다. 이후로는 치열하게 소설을 썼다. 오전 다섯시에 일어나서 썼단다. 대단. 박수. 짝짝짝. 회사 사람들에게는 철저하게 소설가임을 비밀에 부쳤지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야간 식이 증후군' 때문에 운동을 하는 몸인데도 투잡을 뛰는 사람인데도(대체 누가 운동을 하고 바쁘게 살면 살이 빠진다고 하는 건가. 그건 그냥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에 나오는 대로 유전자가 이미 내 몸의 체형을 결정해 놓은 거 아닐까. 비만을 게으름과 자기 관리의 실패한 사람의 상징으로 몰아붙이는 냉혹한 시선이여, 물러가라.) 박상영의 몸무게는 여전히 세 자리를 유지한다.
레귤러 핏의 바지를 입었는데 스키니 진으로 보여 친구를 웃게 만들고 유명 브랜드 행사에 초청받아서 갔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매니저가 맞는 사이즈가 없을 것 같다는 팩트에 왜 기분이 나쁠까 기분이 나쁘면 안 되는데 자신을 달래는 박상영.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에 웃음과 유머를 쥐어 짜내면서 근근이 버티는 박상영.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눈물과 손수건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대단한 깨달음과 성찰을 얻어서 자신의 몸을 긍정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라고 나와 있을 뿐이다. 퇴사 후 한동안 무기력에 빠져서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넷플릭스와 배달 앱으로 한동안 연명했다고. 통증 때문에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단다. 매일 자신을 다그치며 소설을 쓰고 회사를 다녔던 박상영은 이제 소설만을 쓴다.
저녁 10시가 넘어서 집에 오는 나에게는 엘리베이터가 최대의 난관이다. 특히 금요일 밤. 자석으로 된 전단지가 여기저기에 붙어 있고 치킨 냄새가 좁은 그곳을 떠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바로 시킬까. 씻기 전에 시켜 놓으면 씻고 나서 바로 먹을 수 있겠지. 근데 먹고 나면 내일 아침에 폭발해 있을 몸무게와 부은 얼굴은 어떻게 하나. 안 먹으면 미칠듯한 허기와 어지럼증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깟 몸무게라고 하지만 한동안 뚱뚱이로 살아봐서 안다. 그깟 몸무게가 아니다. 옷을 사러 가서 날씬이 동생과 비교 당하는 서러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 것인가. 게으름과 나태로 이루어진 나는 다이어트를 식단 조절로만 하고 있지만 매일 밤 찾아오는 심리적 허기가 아닌 진짜 몸의 허기를 달래고 어루만지고 쓰다듬다가 폭발해 버린다. 먹고 죽자. 오늘 밤은 먹고 내일부터는 굶자.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의 스무 편의 이야기는 매번 오늘 밤은 굶고 자는 것의 실패를 보여준다. 오늘 밤이 안 되면 내일 밤으로. 다시 오늘 밤이 되었고 무언갈 먹으며 내일은 꼭 굶고 자야지, 결심한다. 안다. 이런 결심을 해도 실패쟁이인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냉장고를 열어 하이에나 같은 눈빛으로 음식물을 탐지하고 있을 것임을.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지키지 못할 결심과 계획처럼 보이는 제목이지만 나라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성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어필하려고 에스엔에스 프사로 찍어 올리기에 좋은 책이다.
책을 받자마자 바로 찍어서 올렸다. 그래서 어젯밤은? 도저히 안 되겠기에 이러다 죽겠지 싶어 냉장고를 열었다. 나에게는 매일의 밤이 존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