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 Q 창비청소년문학 94
박영란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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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즐기진 않는다. 오래 떠나봐야 당일 치기. 집이 좋다. 내 마음대로 물을 먹고 화장실도 들락날락할 수 있으니까. 분홍 베개에 누워 분홍 이불을 덮고 책을 읽거나 잠에 빠지는 하루. 굳이 멀리까지 가서 불편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 떠나봐야 안다지만 가지 않아도 안다. 좋겠지. 일상을 훌훌 벗어 던지고 낯선 곳으로 가면. 그러나 나의 귀차니즘은 여행을 떠나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 먹기를 거부한다. 집이면 된다. 배달 음식을 먹고 드라마를 보고 책을 보는 나의 집.

박영란의 『게스트하우스 Q 』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을 잃어버린 아이가 나온다. 식당 사업을 크게 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 마비로 죽었다. 정성이의 가족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다. 죽음 이후에 유산이 아닌 파산이 남았다. 할머니는 집과 과수원을 팔았다. 엄마는 언니가 살고 있는 원룸으로 들어갔다. 원룸에 정성이와 할머니, 엄마, 언니가 살아가야 했다.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던 기라 고모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왔다.

기라 고모는 정성이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 Q에 살아도 좋다고 말한다. 정성이는 원룸에서 모두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름 방학 동안 할머니와 잠깐만 머물기로 한다. 아주 사는 게 아니라고 잠시만 있다가 떠날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기라 고모에 대해서는 오랜 기억밖에 없다. 정성이가 어렸을 때 함께 잠들었는데 고모는 수면제 때문에 깨어나지 못했다. 정성이는 그때 고모가 자살을 시도했다고 기억한다.

Q에 머물며 여름을 보내면서 정성이와 할머니는 안정을 찾아간다.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기라 고모의 하루를 동력 삼아. 숙박객들을 위해 조식으로 도미밥을 하는 기라 고모. 정성이의 눈에는 낯설고 이상한 사람이 투숙해도 기라 고모는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게스트 하우스 Q 』는 살아가면서 좌절과 절망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로한다.

집이 없어진 정성이와 할머니. 아름답지 않은 과거를 가진 기라 고모. 사랑하는 이를 찾기 위해 늘 여행을 떠나는 장기 투숙자. 씩씩한 모습 뒤에 슬픔을 감추고 살아가는 미농 씨. 그들이 게스트 하우스 Q에 모여 슬픔을 치유한다. 별의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구에서 나눌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과 따뜻한 밥을 나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정의를 기라 고모는 이렇게 말한다.

"어른이 되어도 어른 노릇을 못 하게 되어 버린 거야. 모두가 아이처럼 살도록 되어 버린 거지. 용돈 정도의 임금에 만족하고 어떻게든 작은 기쁨을 찾아 소비하며 살다가, 늙으면 용돈보다 못한 푼돈에 의지해야 하는 세상으로 바뀐 거야."
(박영란, 『게스트하우스 Q 』中에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다정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집을 떠나 여행을 시작해 봐도 좋겠다. 낯선 곳에서 집처럼 편한 익숙함을 느끼게 된다면. 약간 태운 도미밥을 조식으로 주는 곳이라면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밝은 내일을 희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불행했던 과거를 잊고 현재에 충실하기. 갈아 엎어질 걸 알면서도 할머니는 밭에 해바라기를 심는다. 우린 모두 죽지만 매일을 살고 있다. 마음이 아픈 오늘이었다면 『게스트하우스 Q 』를 읽어 보시기를. 근사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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