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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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있어 보자. 이 책을 언제 사두었더라. 날짜를 보니 2018년 9월 24일이다. 책이 나오자마자 샀다는 뜻이다. 언제나 그렇듯 사놓고 바로 읽지는 않는다. 책은 사두고 잊어버려야 제맛이니까. 간간이 계간지나 『젊은 작가 문학상』에 실린 단편은 읽긴 했다. 쭉쭉 읽힌다는 것이 장점인 소설들이었다. 지나치게 발랄하고 지나치고 우울해하는 양극단을 달리는 인물들이 나와 좌충우돌 사랑하고 술을 마신다. 여기까지는 무난하다. 사랑을 했다가 이별을 했다가 술을 마셨다가 하며 서로를 저주하고 그리워하는데 그들이 남자라는 것만 빼고는.

박상영의 다이어트 산문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읽고 전에 사두었던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집어 들었다. 제목도 길고 길어 다 외우지도 못할 것만 같은 첫 소설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을 시작으로 한 편씩 읽어갔다. 거지 같은 남자만 만나서 돈 뜯기는 게이 제제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소설은 문을 연다. 예약해 놓은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주사로 술집에서 나가지 않은 제제를 '나'는 기다려 준다.

50군데에 소설을 내고 떨어졌다가 기적적으로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뽑힌 두 편째 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는 인스타 중독자가 나온다. 그녀 소라를 애인으로 둔 죄로 하루 종일 곤란에 빠지는 '나'의 하루를 그린다. 뒤이어 나오는 소설 「부산국제영화제」는 앞의 소설에서 관찰당하는 소라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인스타 중독자답게 뭐든지 일상의 한 컷을 건지고 업로드 하기 위해 단어 앞에 #을 붙이기 위해 살아가는 소라. 두 소설에서 공통적인 주제 의식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춘의 비극적인 자아 찾기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표제작이기도 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예술을 한답시고 주접을 떠는 사람들이 떼로 나온다. 박상영은 인물의 특징을 살려 별명을 웃기게 잘 짓는다. 자이툰 부대에서 벽화 그리기 특명으로 만난 왕샤(성이 왕이고 샤넬 향수를 엄청 뿌려댄다는 이유로)와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 난리 블루스를 쳐대는 이야기.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의 주인공 제제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왕샤는 술만 먹으면 노래방 마이크를 탐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까지는 웃다가 나중에는 연민 한 스푼을 떠먹이면서 끝나는 이야기.

「조의 방」, 「햄릿 어떠세요?」, 「세라믹」은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에 나온대로 그가 왜 50군데에서 탈락을 맛보았는지 알 수 있는 소설의 연속이다. 세 편은 좀 무겁고 어둡고 그렇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세상을 긍정할 수 없는 소설이다. 한창 박상영이 재밌다고 했을 때 나 역시 귀가 얇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사두긴 했다. 이제야 읽는 건 산문집이 웃기고 솔직한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줘서(각색을 하긴 했겠지만. 매일 밤 굶고 자야지 다짐하는 게 남일 같지 않았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인물이 나누는 대화대로 일상과 예술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럴듯한 말로 예술을 포장하고 후려치곤 하는데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하루 삼시 세끼 밥 먹고 내일 먹을 삼시 세끼 걱정하는 건 똑같다. 별다른 게 없단 말이다. 그런데 이걸 별다르게 만드는 게 예술이라고 하네. 거기에서 나오는 깊은 빡침을 박상영은 소설로써 눙치고 들어간다.

노래방에 들어가서 한 시간이 맞는지 시간을 재고 3분이 빠졌다고 무선 마이크를 들고 나오고 우선 예약한 거 봤다고 싸우고.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랑 싸우고. 떨어질 걸 뻔히 알면서도 아이돌 오디션을 보러 가기 위해 가짜 치아를 박아 넣는다. 이런 게 예술이고 사랑이고 전투 아니겠는가. 심각해서도 안 되겠지만 별일 아닌 것처럼 굴기에도 포지션이 애매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과 평생 아싸로 살아가리라 깊은 예감이 엄습해 오는 인생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서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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