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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증
마리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박하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런 진부한 표현을 쓰다니. 나도 이제 한물갔다. (뭐, 언제는 잘 나간 적이 있었나.) 마리 유키코의 데뷔작 『고충증』을 읽고 난 소감은 이렇다. 욕심이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안 되는 줄 알지만 갈증 때문에 계속 들이킨다. 그러다 죽고 만다.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 신도시에 건축된 고급 맨션에 사는 주인공 마미는 이상한 사건에 휘말린다.
『고충증』은 상당히 불쾌한 소설이다. 읽는 동안, 읽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는 이야미스의 대표 소설가 마리 유키코는 첫 소설부터 인간의 욕망을 과감하게 그려낸다. 소설의 내용만 놓고 보자면 『고충증』은 문제작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주부가 일주일에 세 남자와 돌아가며 외도를 한다. 인터넷에 프리한 만남을 원한다는 글을 올려 동생이 빌려 놓은 집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것이다.
3부로 이루어진 『고충증』에서 1부는 마미의 시점으로 2부와 3부는 마미의 여동생 나미의 시점으로 사건을 파헤친다. 마미는 금요일의 남자와 만난 이후 몸의 이상을 느낀다. 온몸이 가렵고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사건은 그 집에서 나올 때 월요일의 남자의 엄마가 찾아온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병의 이유는 모르지만 마미와 육체적 관계를 맺은 이후에 발병했다고 절규한다.
마미는 급히 돌아와 동생과 만날 약속을 정한다. 거짓말로 사정을 둘러대고 집의 계약을 해지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후에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 마미의 귀에만 들리는 것 같은 소리. 벌레가 무언가를 갉아먹는 듯한 소리. 마미는 도서관에 가서 기생충에 관한 책을 찾아보고 더욱더 불안감에 휩싸인다. 주부로서 나쁜 짓을 벌였다는 죄책감과 함께 몸에 병이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
중학 입시를 준비하는 딸. 엄마인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딸. 합숙을 갔다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고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여기며 1부는 끝난다. 『고충증』은 뒤로 갈수록 새로운 이야기가 드러난다. 마미의 여동생 나미의 시점에서 다시 쓰이는 사건의 진상은 놀라울 정도로 소름 끼친다. 조카가 죽고 형부에게서 언니가 오른쪽 손목만 남겨 놓은 채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도대체 마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마미에게 일어난 일은 실제 하는 것인가. 『고충증』에서 마리 유키코는 대담하게 인간의 욕망을 탐구한다. 질투와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의 허위를 낱낱이 파헤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마리 유키코는 인간의 특히 여성의 불안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욕망하고 시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의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본다.
인간의 몸에 기생해서 중간 숙주 자리를 차지하는 고충증이라는 병의 발현은 세대를 뛰어넘는다. 욕심으로 상징되는 고충증은 불완전한 관계를 가진 자들끼리 감염된다. 『고충증』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면 이토록 어두운 세계가 소설이라서 안심이다 와 아니지 이런 일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증세는 다르지만 현시점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두렵다가 마음의 전반을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