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른 아버지
이주란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주란의 첫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는 이상한 힘이 있다. 별다른 사건이나 특별한 유머도 있지 않은데 책을 읽어 가게 만든다. 힘없는 인물이 나오고 힘이 없는 채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힘없이 나는 읽고 있다. 옆으로 누워서 계속. 허리가 아파 자세를 바꿔 계속. 길지 않은 여덟 편의 이야기. 길지 않아서 좋고 길지 않기 때문에 이대로 끝 하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쉬운 『모두 다른 아버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불우한 사람들. 모두 불우하기 때문에 나만 불우하다고 말할 수 없어서 불우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간다. 아홉 살 딸을 혼자 키우며 전 남편의 빚을 갚아가는 윤희의 삶을 시작으로 노량진에서 공무원 공부하는 동생의 반찬을 해다 나르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아버지가 물어봐 주길 바라는 나의 이야기. 어머니만 다른 채 아버지만 같은 형제들이 모여 각자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수연이들.

어떤 소설은 줄거리를 나열하는 일이 의미 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주란의 소설들이 그렇다. 별다른 사건 그게 그러니까 갑자기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든지 애인이 나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 없이도 『모두 다른 아버지』는 흘러간다. 기껏해야 열 살 많은 누나에게 작업을 거는데 폭탄이 터지거나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엄마가 자살하는 바람에 언니 다리가 절단되었다는 모두 이런 사연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있지 않냐는 식이다. 이주란의 소설은.

아니라고. 그건 특별하고 별다른 이야기라고. 다들 얼마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일이 불우하지 않다고 말하는 거냐고 반박할 수 있겠으나 『모두 다른 아버지』를 읽어가다 보면 우리 자신에게도 말 못 한 불행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내고야 마는 것이다. 부재하는 아버지들. 집을 나가거나 죽어 가거나 하는 식으로 자식의 유년에서 사라진 아버지.

이주란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힘이란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지 못한 아버지들의 만행을 대신 파헤쳐 주는 쾌감이었다. '나는 불우한 환경에서 평범하게 자랐다.'라고 나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불우한 것은 너무나도 흔하다고 한 번 더 지금이 괜찮은 거라고 자위한다. 친구가 없고 집이 없어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언니한테는 호주에 와 있다고 말하는데, 괜찮다고 한다.

『모두 다른 아버지』는 누군가를 무한으로 사랑하고 타인의 슬픔에 무턱대고 동조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려는 섣부른 시도도 하지 않는다. 못생긴 자신이 어느 날 더 못생겨 보여 기분이 가라앉을 뿐이다. 나이 든 사람이 아닌 또래에게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소설 속 '나'에게 한껏 감정을 이입해 본다. 소설이 끝날 때마다 아쉬운 감정 반과 이 우중충한 이야기가 끝나서 다행이라는 마음 반.

요즘은 잘 사는 것보다 그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주란이 그리는 소설 속 세계의 인물은 오래전에 그걸 깨달은 사람들이다. 터무니없는 기대가 아닌 무탈한 하루를 바라는 것. 집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닌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