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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 - 황선미 첫 번째 에세이
황선미 지음 / 예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울었다고 말했다. 국어 시간에 함께 읽은 책이었다. 잎싹이가 죽어서 슬퍼. 그게 울 일인가. 참 울 일도 많다가 그 당시에 내 감정. 나로서는 현실의 고민과 걱정이 많아 현실이 아닌 이야기에 마음을 주기가 힘들었다. 좀 더 자라서 읽은 『마당을 나온 암탉』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화인데. 주인공을 그렇게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작가는 동화라는 낭만에 기대지 않은 꽤나 현실적인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
『마당을 나온 암탉』을 쓴 황선미의 『틈새 보이스』에서도 나는 현실에 기반한 팍팍한 삶의 언저리를 주변부를 응시하는 작가의 예민한 감성을 읽을 수 있었다. 산문집 『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를 읽으며 왜 낭만이 아닌 처절한 슬픔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서 주인공을 과감하게 하늘나라로 보내버리는 결단성이란 어린 시절부터 겪은 결핍과 사랑의 부재 때문이었던 것이다. 형제 많은 집에 맏이로 태어나 폐병을 앓았고 집이 가난해 바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때 읽었던 책들은 그가 파괴와 부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허구의 세계에서나마 사랑과 환상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김찬삼의 여행기를 읽으며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로의 탈출을 잠시나마 꿈꾸어 볼 수 있었다. 도시락을 싸지 못했던 어느 날 아버지가 그의 배구 경기를 보러 와주었던 일. 찹쌀떡과 바나나 우유를 건네주던 뭉특한 손을 기억하기에 작가가 되는 소망을 간직할 수 있었다. 무협지를 읽고 친구 집에 있던 세계문학전집을 동경하는 일. 책이란 한 아이에게 미래란 가능한 것임을 알게 해주는 꿈의 통로였다.
『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에는 100만 부 작가라고 알려진 황선미의 내밀한 일상의 숨결이 담겨 있다. 남들 눈에나 『마당을 나온 암탉』이 공전의 히트작이 되어 영화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알려진 유명 작가이지 일상을 살아가는 그는 조조 영화를 보고 김장을 하고 시골에 마련한 집에서 복숭아나무를 심는 평범한 사람이다. 잠이 오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고 원고 마감에 쫓기면서도 글쓰기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이기려고 애써 다른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혼자가 되어 울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
다른 이와 비교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시선에 눈치를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더더욱 글쓰기와 책 읽기로 돌아가려고 한다. 『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에서 회상하는 어린 시절과 책 읽기의 기억은 따듯하면서도 서러웠다. 어른이 되었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통장 잔고를 걱정하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삶이 놓여 있다. 시장을 가고 대중교통을 타고 강연을 하러 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을 성실히 기록한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놀랍다, 가끔. 당연하게 주어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의미 없이 살아내지만 잠깐의 여백을 두고 바라보면 그 안에는 우리를 내일로 이끌고 가는 발견이 숨어 있다. 눈을 뜨는 일로 시작하는 하루의 기적. 커피물을 끓이고 냉장고를 열어 간식을 꺼낸다. 읽고 싶은 책이 있고 오늘은 꼭 해야 하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렸을 때 읽은 작가는 꾸준히 글을 써서 책을 내고 그걸 읽는 시간. 잊고 지내던 그 시절의 어느 한순간이 호출되어 나를 막막하게 하는 일. 그런 오늘이 있어서 놀라운 가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