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재 오늘의 젊은 작가 23
황현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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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복권방이 생겼다. 저녁이 되면 그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내가 그곳을 지나는 시간이 늦은 저녁이기에 그곳이 매시간 사람들로 들끓는지 아니면 그 시간에만 한정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시간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활력에 잠시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단 한 번도 사본적 없는 숫자 여섯 개가 담긴 종이. 행운이 온다는 꿈을 꾸기도 한 다음날이면 내게 그것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니까, 허황된 희망을 걸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아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걸 아니까. 행운이란 쉽게 찾아오지 않으며 그걸 알기 때문이 이토록 차분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황현진의 소설 『호재』는 삶이라는 가혹한 굴레에서 벗어날 길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재개발 지구에서 부동산 일을 하던 남자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 삶의 다른 이름이란 결국 죽음이 아니겠냐며 말을 걸어오는 이야기, 『호재』는 느리고 침착한 서술로 서사를 끌어간다. 호재의 아버지 배두오와 그의 동생 배두이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삶의 보호막이 없는 한 인간의 외로운 심사를 더듬어 낸다. 호재는 부모의 이혼으로 고모에게 맡겨졌다.

어린 시절을 선택할 수 없었던 아이는 타인을 극존칭으로 대하는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는 지나친 예의를 보임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자 함이었다. 누구도 호재 그 자신을 지켜줄 수 없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어른이 없는 아이는 세상을 극도로 예민한 존재로 인식하며 자란다. 그의 아버지 두오는 젊은 시절 억울한 일에서 헤어 나올 수 없어 삶과 불화하며 살아간다. 어쩌다 결혼을 해서 호재를 낳았지만 자식을 돌볼 수 없는 태생적으로 인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호재는 고모부가 강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고모의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도대체 누가 가져갈 것 없는 부동산 사무실에 와서 칼로 사람을 죽이고 도망갔단 말인가. 매주 복권을 사면서 언젠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행운의 예감을 붙들며 살아온 사람이었는데. 돈을 받아오겠다며 나간 호재의 아버지 배두오는 실종된 지 오래였다. 한 명뿐인 자식인 호재에게 돈을 좀 마련해준다는 구실이었다.

『호재』는 누가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건 거짓이고 위선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됐어라는 말로 자신의 인생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호재는 말한다. 나는 당신의 알리바이가 아니야라고. 알리바이. 현장에 없었음을 증명하며 범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 없었다고? 실패한 인생의 범인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알리바이를 증명해 내지만 결국 범인은 당신이다. 인생이라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무죄는 없다. 행운과 불행이 교차해서 오는 어쩌면 행운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당신의 삶에 기회란 없다. 『호재』는 서늘한 언어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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