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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의 반딧불이 (양장)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손보미 지음, 이보라 그림 / 마음산책 / 2019년 9월
평점 :





순간을 놓칠 때가 있다. 하루는 순식간에 흘러가고 그 안에서 필요한 생각을 해야 한다. 적절한 말을 건네야 하고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피곤하지 않게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또 피곤해지는 연속의 반복. 느슨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란 소설을 읽는 것. 만들어진 이야기 안에서 나는 자유를 느낀다. 거짓말이고 꾸민 진실이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간이 없을 때는 짧은 소설을 읽으며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허물어지는 과정을 즐긴다. 손보미의 짧은 소설집 『맨해튼의 반딧불이』에는 사라짐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도 위화감이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분실물을 찾아주는 색다른 일을 하는 직업 탐정이 등장하고 물건을 훔치는 남자가 나오고 불행을 수집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여자가 출연하는 허구의 세계. 작가의 말에서 손보미는 뉴욕 센트럴 파크에 앉아 반딧불이를 봤던 당시를 회상한다. 소설을 쓰게 되는 건 반짝였다 이내 사라지는 찰나의 어느 시간을 담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어긋나고 핀트가 맞지 않는 일상을 손보미는 소설로 끌어온다. 한껏 차려 입고 외출했는데 구두의 장식이 사라지는 사건으로 상대에게 모진 소리를 듣기도 하는 어느 하루. 죽음이 다가온 순간에 사연을 간직한 채 누군가를 찾아가는 저녁. 부모의 부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유년의 기억. 『맨해튼의 반딧불이』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이런 것이었다. 사라진 7시를 찾아 달라는 부탁에 탐정은 그에게 들려줄 말을 생각한다. '이봐요, 때로는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으로 놔둬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잃어버린 것은 그저 잃어버린 것으로. 마음이 아프면 아픈 대로……슬프면 슬픈 대로……'
하루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놓치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해야 미치지 않고 살 수 있다. 실수했다고 내내 침울해져 있을 것이 아니라 망각이라는 이불 속으로 덮어두는 것도 나름의 방법이다. 『맨해튼의 반딧불이』를 관통하는 핵심은 상실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 선택에 의한 주체적인 상실을 이야기한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의 부끄러움을 잊어버리는 것. 사랑을 위해서 죽음을 잃어버리는 것.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늘에 치이지 않기 위해 매일 적정량의 소설을 읽어내는 것. 나의 오늘에 없는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면 『맨해튼의 반딧불이』를 읽어봐도 좋을 일이다.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삶이 간절해지고.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내내 암담한 시간. 순식간에 열렸다가 닫히는 짧은 소설 속 세계 안에는 나 말고도 방황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