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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 자기 몫을 되찾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야망 에세이
김진아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김진아의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에는 여성과 일, 결혼, 경력 단절의 불안함, 아파트의 중요성, 보이즈 클럽의 실상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제가 등장한다. 스무 편의 이야기는 솔직하고 진지하게 여성의 삶에 대해 다룬다. 잘나가는 광고 카피라이터로서 살았던 시절부터 영혼과 몸을 갈아 넣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나 팀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던 일까지 김진아의 생생한 체험담이 들어 있다. 너무 솔직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도 있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주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남이 싫어할까 봐 공격당하지는 않을까 움츠러드는 것이다. 솔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 말을 하기 보다 책을 읽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내 의견이 정비되지 않았으니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본다. 내가 분명하게 느꼈던 감정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읽을 때는 쾌감마저 든다. 맞아. 나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니었어 하는.
보통의 삶. 이 말에는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이 들어 있을지 가늠해본다. 정상 가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상 가족이 있다면 정상 가족이 아니면 비정상 가족인 건가. 이런 말장난이 싫지만 분명 정상 가족은 이상한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좁은 세계에 갇혀 살아갈 때는 남들이 하는 건 하면서 살아야지라고 쉽게 나를 설득했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에는 내가 처음 들어본 단어가 나오곤 했다. '결혼불매, 탈혼, 사표 당하기, 보이즈클럽'
죽어라 해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노오력으로 해도 안 되는 일이. 김진아는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오면서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격차, 단절, 여성성의 강요를 평이한 언어로 설명한다. 실제 사례는 공감과 감정의 이입을 끌어낸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이 생각했던 부분을 표현한다. 바뀌기를 바라는 지점을 모호하게 돌려서 표현하지 않고 주장한다. 「여자에게 돈을 쓰자」, 「정치를 합시다」와 같은 글에서.
집안일이라고 부르고 무급 노동이라고 하는 그 일에 대해서도 자신은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를 읽어 보시기를. '여자의 무급 노동'으로 인해 얻어진 결과가 대체 어떤 것이었는지 겨우 알게 되었다. 여성이 독립적인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김진아는 현실적이게도 그것이 아파트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 남편이 아니라 아파트였다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떻게 평평하게 만들 것인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40, 50대가 되어서도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조언이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에 있다. 좀 더 일찍 그러니까 허황된 꿈을 꾸기 시작하는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 명의 여자라도 더 경제적 독립을 이뤄내야 한다'고 김진아는 계속 외친다. 인류를 구하기는 개뿔. 우리는 각자의 파이를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인류 전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