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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탐정 고민 상담소 1 - 자아는 가출 중 ㅣ 문학동네 청소년 44
이선주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평점 :
고민이 생겼다.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이 무슨. 사춘기도 아니고. 질풍노도의 시기도 아닌데. 입가 주변에 두두두 붉은 여드름이 하나둘씩 올라오고 있다.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10년 주기로 여드름이 나는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얼굴 전체에 여드름이 나서 앞머리와 옆머리로 가리고 다녔는데. 어른이 되었을 때는 보는 사람의 눈도 생각해서 병원에 다니면서 약도 먹고 약도 바르며 겨우 여드름을 가라앉혔다. 그때로부터 다시 여드름이 나는 지금은 아, 아무것도 하기 싫다.
맹탐정 님. 이런 저의 고민을 해결해 주세요. 이선주의 『맹탐정 고민 상담소』에는 자신을 스스로 탐정이라고 칭하는 중학교 1학년 아이가 나온다. 이름은 맹승지. 성이 맹 씨라서 아쉬워하는. 엄마가 명 씨 성을 만나 결혼했더라면 맹탐정이 아닌 명탐정이 됐을 텐데 하며 속상해한다. 작은 마을 산이군에 살면서 동네에 떠도는 온갖 소문을 수집하고 의뢰받은 일은 끝까지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엄마 피셜에 의하면 "머리는 나쁜데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이는지, 어떨 때 보면 귀여워요."라는 소리를 듣는 아이.
셜록을 좋아하고 탐정 노트에 의뢰받은 일을 적으면서 사건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엄마가 전통찻집을 운영하는 덕분에 그곳에 의뢰인과 모여서 추리를 한다.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 윤미의 핸드폰 분실 사건의 의뢰를 받는 것으로 맹탐정의 추리가 시작된다.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사건의 진실보다는 윤미가 가진 고민의 크기를 나누어 받는 것으로 사건이 해결된다. 윤미의 사건 이후로 맹탐정의 이미지는 사건 해결보다는 고민 상담 쪽으로 굳어져 또래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 주게 된다.
『맹탐정 고민 상담소』에는 맹탐정의 고민인 진정한 '자아 찾기'라는 큰 주제 아래로 각각의 이야기가 모인다. 큰 도시로 공부하러 가고 싶은데 엄마가 허락해 주지 않는 영은 언니의 고민, 부모의 이혼으로 나라는 아이의 진짜는 무엇일까 고민하는 인혜, 나이 마흔이 넘어 방황하는 맹탐정의 아빠, 남자인데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용우. 맹탐정은 친구들과 때론 혼자서 그들의 고민을 생각하며 고민의 방향을 해결 쪽으로 이끌어 주려고 한다. 맹탐정이 특유의 오지랖과 부지런함으로 고민의 실체를 알아내어 알려주면 고민 당사자들이 알아서 문제를 풀어간다.
자아라는 것은 하나의 모습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맹탐정이 깨달은 대로 바닷물의 빛깔과 같아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아의 모습은 달라진다. 진짜 나도 없고 가짜 나도 없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실컷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생겼으면 마음껏 싫어하면서 달라지는 자신의 자아를 바라보면 된다. 『맹탐정 고민 상담소』를 읽으며 맹탐정과 친구들의 고민이 그게 무슨 고민거리가 되냐라고 생각한다면 슬프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고민의 질이 그때보다 낮거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고민은 고민이다.
다른 이의 고민과 슬픔을 제 일처럼 들어주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거나 내 고민이 더 심각하다고 오히려 고민 상담을 하려 들기 때문이다. 여드름이 계속해서 나는 게 고민이에요. 나의 고민은 이렇게 해결해보려고 한다. 원래 고민 해결은 자신 안에 답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얼굴에 흉터를 남기겠지만. 어차피 못생기고 똑같은 얼굴. 얼굴 말고 내 마음을 뽀득뽀득 닦으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