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구석 - 소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이야기
서밤.블블.봄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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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지.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사소한 일이다. 사소하고 시시해서 화를 낼 것도 아니란 걸 분명히 안다. 그래도 화가 난다. 소리도 지르고 싶다. 하루치의 활력을 전부 써 버렸다. 일이 끝나고 퇴근을 준비하는 시간. 넋두리처럼 말했다. 상대가 듣고 있지 않아도 좋았다.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요. 고민을 이야기하고 해결해 주는 책을 찾아서 읽고 있어요. 집중력이 떨어져서 읽다가 딴 생각에 자꾸 빠져요. 마음이 문제.

『마음의 구석』이라는 책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었다. '서늘한 마음썰'이라는 제목으로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도 해주는 프로그램 진행자인 서밤·블블·봄봄의 글이 담겨 있다. 꿈을 이룬 이야기가 아닌 꿈을 포기한 이야기가 먼저 나와서 새로웠다. 『마음의 구석』은 꿈을 이루고 성공하고 우울증을 극복한 그런저런 사례를 말하지 않는다. 이루고 극복하고 이겨내는 이야기는 널려 있다. 나는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렇게 해봐라고 하는 식의.

용기를 가지게 될까. 일을 하다 그만두고 우연한 계기로 책을 썼는데 베스트셀러가 되고 우울증이 있었는데 상담을 받고 치료를 해서 이제는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읽으면. 예전에는 그랬을 것 같은데 이제는 아니다. 블블이 쓴 것처럼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꿈은 이룬다기보다는 포기하는 게 빨라서 속이라도 편해지는 것이 되어 버렸다. 블블은 드라마 피디의 꿈을 꾸었지만 이제는 꿈을 놓았다. 과외를 알아보고 학원 강사를 지원한다. 꿈을 포기하면서 얻게 된 마음의 평화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준다.

내가 싫어했던 나의 모습들은 우울증의 증상들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심리 상담을 받으며 깨달았다. 증상 자체가 나는 아니지만, 증상과 나를 분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자면 충치로 인해 치통을 느낄 때, 치통이 나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치통을 느낀다. 그렇다고 치통을 느끼는 나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우울증으로 인한 고통과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나를 미워하는 고통 중 후자만 덜어내도 인생이 훨씬 편안해졌다. 나는 그토록 자신을 미워했던 나를 천천히 용서해갔다. 그것은 지나온 나의 모든 시간과 화해하는 과정이었다.
(서밤·블블·봄봄, 『마음의 구석』中에서)

서밤은 우울증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 아니 지금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완벽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마음에 그늘을 드리웠다. 우울증인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상담을 받으며 우울증을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정하지 않는 마음. 나쁜 기분을 느끼고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는 나를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서밤은 이야기한다. 자신 있게 우울증 극복 사례를 들려주면 좋겠지만 말처럼 쉽게 극복할 수 없는 게 우울증인 것이다. 커피를 덜 마시고 피곤하지 않도록 몸을 유지하면서 증세가 심해지면 전문가를 만나는 것. 서밤의 우울증 관리 요령이다.

생계와 관련된 일이 아닌 일상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취미를 갖는 것에서도 돈을 쓸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블블은 꽃이 좋아서 꽃꽂이 클래스를 알아본다. 최대한 저렴한 비용으로 해보려고 하지만 돈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돈에 얽힌 마음'을 생각하며 그 마음을 존중하는 일. 숨만 쉬어도 돈이 드는데 숨도 쉬고 웃기도 하고 행복해지려면 돈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돈만 생각하느라 하루가 다 갈 지경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여유를 남겨 두는 일, 필요하다.

사실 좀 더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지기 위해서 책을 읽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안 좋은 상황으로만 가정하고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면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한다. 내 '마음의 구석'에는 대체 어떤 게 있는 것일까. 너무 구석이라서 보이지 않는 것일까. 부정적인 마음이 구석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즐거운 일이 생겨도 마냥 즐겁지 않은 것일까. 진심과 성실을 다해 내보인 서밤·블블·봄봄의 『마음의 구석』을 읽으며 내 '마음의 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마음을 생각한다.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한. 지금 그 마음과 기분을 가진 나를 외면하지 않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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