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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간힘
유병록 지음 / 미디어창비 / 2019년 11월
평점 :
유병록의 산문집 『안간힘』의 정서는 슬픔이다. 어린 아들을 잃고 쓴 글은 애틋하고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아들이 떠나가던 날 무언가를 입에 넣고 삼키는 행위를 그는 '치욕의 힘'이라고 부른다.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 뭐라도 먹어야 한다는 주위의 권유에 그는 먹는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서도 배는 고프다. 허기는 습관처럼 찾아오고 햇빛은 따뜻해서 눈물이 난다. 가족이 모두 모여 죽을 떠먹는 풍경으로 『안간힘』은 시작한다. 어느 가족의 소풍처럼 보일 풍경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숨어 있다.
높고 어질게 살아가라는 뜻으로 붙인 아들의 이름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안간힘』은 끝난다. 아들의 사망 신고를 하러 갔던 날의 기억을 풀어 놓을 때. 서류상의 업무로서 직원이 아들의 사망 신고를 작성할 때. 그는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진다. 재산도 없고 학교도 다니지 않은 무산자, 무학자인 아들. 아버지 유병록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들이 그들에게 주었던 추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신 하루를 보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안간힘』에서 발견한 슬픔은 책이 끝날 때쯤에는 살아갈 수 있는 용기로 바뀐다. 누군가의 죽음이 우리를 멈추게 한다면 다시 힘을 내서 걸어갈 수 있게 만드는 건 작은 힘이다. 어떻게든 살아가겠다는 '안간힘'이다. 자코메티의 조각상 <걸어가는 사람>을 보며 찾은 위로. 유병록은 슬픔을 겪은 사람이라면 위로를 기다릴 게 아니라 위로를 찾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불행은 쉽게 전염되지 않으니 자기의 불행을 이야기해도 된다고. 책을 읽으며 찾은 위로.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 자의 기록인 『안간힘』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나'란 누구인가를 들여다보고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완벽해지기 위해서가 아닌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서 살기를 소망한다. 삶이 당신을 무너뜨리려고 할 때 무너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슬픔을 이겨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마음껏 울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안간힘』에 담겨 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슬픔은 극복되지 않으며 애도는 평생에 걸쳐 이뤄진다는 것을.
상처 주는 말을 아끼고 다른 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며 미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려는 노력. 내 마음의 우물 속 물의 깊이를 가늠해본다. 언제든 두레박을 내리면 물을 떠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바닥을 겨우 적실 수준으로 말라 있었다. 차고 넘치는 물이 있어 세상을 촉촉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책을 읽으며 다시 물을 채워본다. 나는 슬프지 않다가 아닌 나는 슬픈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된다. 지금 슬퍼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극복, 노력이라는 말 대신 보람을 느끼고 '안간힘'을 낼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