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섯 명의 한기씨
이만교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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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교는 16년 만에 돌아왔다. 그것도 10년이 지난 사건을 가지고서.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이렇게 밝힌다. '이 글은 하려고 했던 말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하게 된 말, 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오랜 침묵을 깰 수밖에 없던 사건은 2009년 1월 20일에 발생한 '용산 참사'였다. 철거민들이 남일당에 망루를 세운 지 25시간 만에 벌어진 진압은 무차별적이었다. 경찰 특공대가 들어갔다. 용역과 경찰 때문에 출구가 막혔다. 화재가 발생했고 망루 안에 있던 사람들이 죽었다.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는 2009년 당시 스물여섯 살이었던 임한기의 행방을 추적해 나가는 소설이다. 신문 기자인 인터뷰어는 망루에 올랐던 임한기를 찾기 위해 예순여섯 명을 만난다. 그들이 기억하는 임한기는 각기 다른 모습이다. 가족이라고는 할머니밖에 없는 한기는 대학 등록금을 벌려고 공사장에서 일한다. 질이 좋지 않은 무리들의 표적이 되어 도박판에 들어가 돈을 날렸다. 등록은 포기하고 친구 집을 전전했다. 짧은 연애도 했다. 하루 일당이 센 알바를 하면서 한기의 인생은 전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용역. 철거 현장에서 시위대와 싸우다 다친다. 이후 용역 팀장의 소개로 재개발 구역에 들어가 국숫집을 한다. 자신의 가게를 가지면서 열심히 일한다. 재개발 소식이 들리기 전까지 말이다. 감정 평가액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한기는 주변 가게 상인들과 조합을 만들어 시위를 다닌다. 돈을 벌기 위해 용역으로 일했던 한기는 시위를 하는 입장으로 바뀐다. 이만교는 임한기라는 인물을 만들어 놓고 망루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그날로 우리를 데려간다. 예순여섯 명의 임한기들은 보통의 사람이었다.

임한기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당신들이 알고 있는 임한기는 정말 임한기가 맞는 것인가.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에서 임한기가 누구였는가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임한기로 대변되는 용산 4구역에서 가게를 열고 생계를 꾸려가던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묻는 소설이다. 임한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자신의 상처를 꺼내 보이는 그들의 시간을 충실히 따라간다. 이미 끝난 일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정말 그런가. 진압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무리한 진압을 하면서 사람들이 죽었다.

임한기는 그날 경찰복을 입고 망루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기억한다. 경찰복을 입은 임한기를 보긴 봤는데 그 이후로 임한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에 그을린 그의 시체를 보았다고도 하는데 임한기는 실종됐다. 돈을 벌어서 대학에 복학하려 했던 한기는 어디로 간 것일까. 용역 일을 하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국숫집을 차린 한기의 꿈은 망루와 함께 타 버렸다. 소설은 우리가 몰랐던 사실과 잊었던 시간을 복원해낸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마구 써대는 언론. 남일당에 올랐던 철거민들을 내려오게 하기 위해 용역들은 건물에서 불을 피웠다.

잊고 싶어서 잊은 건 아닐까. 소설은 인터뷰어의 자조로 끝난다. 임한기는 임한기로 살아가지 못했다. 예순여섯 명을 만나놓고도 임한기가 누구인지 밝혀 내지 못한다. 용산 참사는 잊힌 사건이 아니다. 이만교는 재기 발랄한 소설적 입담을 가진 작가다. 그런 그가 짧고 건조한 문체로 2009년 1월 20일을 소설로 불러온다. 꼭 써야만 하는 사건임을 소설가로서 직감했으리라. 소설은 자꾸 머뭇거린다. 그날 망루에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을 계속해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소설이어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 슬프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 있다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 사람이 있었다가 아니라. 늘 여기에 사람이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임한기는 여기 있다. 자신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러 오라고 길 건너편에 있던 가족들에게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던 사람이. 나와 당신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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