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다른 나-임현

당신과 다른 나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9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임현의 『당신과 다른 나』는 가볍게 읽기 시작한 소설이었다. 대개 그렇다.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드는 일은 없다. 제약 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어느 날부터 자꾸 무언가를 잊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내는 이상하다고 느끼고 약을 챙겨 먹어야 하나 고심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남편과 통화한 아내의 불안감은 가중된다. 남편이 키우지도 않은 개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남편이 기억을 잃어가는 소설이구나, 짐작했지만 『당신과 다른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해버린다.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고 다른 서사를 꺼내들자 마음은 무거워졌다. 서술자가 아내에서 남편으로 바뀐다. 남편은 소설을 쓴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의 기대를 전부 맞출 수 없는 현실에 암담해한다. 자신이 너무 평범해서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아내는 가족사를 들려주며 소설에는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소설가에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감을 뒤로하고 술자리에 나오는 건 타인의 이야기를 주워 담기 위해서인 소설가에게.

『당신과 다른 나』는 남편이 쓰는 소설과 아내의 이야기가 뒤섞인다. 각각의 이야기라고 믿어 왔지만 실은 아내의 이야기는 남편이 쓰는 소설이었던 것이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실제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든 소설적 장치인 셈이다. 뒤죽박죽인 서사를 구분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나라고 믿어왔지만 나는 나가 아닐 수 있다고 『당신과 다른 나』는 말한다. 소설은 나를 증명하기 위해 쓰이는 것임을 임현은 이중 서사로 표현한다.

소설만을 쓰기 위해 소설만을 쓰고 소설만을 생각하는 자에게 세계는 거대한 거짓말이다. 현실의 자아와 소설의 자아가 충돌하는 지점에 이른다. 내가 만든 거짓말이 나를 이룬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은 소설이었지만 읽고 나면 불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기어이 묻게 만든다. 세계는 침착한 얼굴로 발전하고 있지만 그 안에 사는 나는 늘 후퇴만을 일삼고 있다.

당신이 누구이고 당신과 다른 나는 잘 지내는지 물으며 끝을 맺는다. 다른 나를 만나기를 꿈꾸며 소설가인 '나'는 문을 연다. 마주한 진실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믿을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쓸쓸한 결말이다. 소설과 현실이 기묘하게 결합된 『당신과 다른 나』는 기묘한 이야기 방식을 취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