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김민섭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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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마음과 몸의 상태가. 정상이고 괜찮은 척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지는 모르겠다. 어색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불을 붙이기 전의 시한폭탄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 불만 붙여 봐라. 그러면 화끈한 맛을 보여줄 테다. 팡팡하고 터지며 난리와 지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여줄 테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랬더니. 뭔가 눈치를 챈 걸까.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조심스러운 면이 느껴졌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약간의 조심성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매사에 웃고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굴었더니. 얘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구나. 그렇게 여긴 것일까. 하대는 물론 비아냥에 약간의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참았다. 일단은. 지금까지 나는 그런 상황을 참아야 하는 건 줄 알았고 참았다. 그러다 마음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별안간 불이 꺼졌다.


그런 게 얼굴에 다 드러났을까. 이후에는 개소리도 하지 않고 말도 예전만큼이나 걸지 않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9시부터 6시까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싶다. 가능하다면 나 혼자 일하고 싶다. 사람들이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게 이제는 힘들다. 반말과 무시와 조롱을 참기가 어렵다. 그렇고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집에 돌아와 책을 읽으며 어두워진 마음에 불을 켜려고 했다.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김민섭의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읽으면서 내가 가진 '연약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제목을 보고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턱대고 해주는 위로의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간의 나의 억울함과 분노를 이야기할 때 앞뒤 따지지 않고 상대가 해줬으면 하는 말이었다. 그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과 행동이었고 너는 옳았다는 식의 말. 답정너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듣고 싶은 말이 그것이었다. 너는 잘했다. 너는 괜찮고 네가 잘 되면 좋겠다. 예의가 바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공부를 못 하지만 인사성이 바르다는 문장이 쓰인 생활통지표를 받으면 기분이 좋았다.


먼저 인사를 하고 고개를 숙이고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종결 어미를 신중하게 선택해서 말했다. 명령의 의도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의문문으로 말해 상대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줬다. 그랬는데. 그렇게 했는데. 저 사람은 쉽네라는 인상으로 남았다. 내가 이런 태도와 말을 해도 저 사람은 웃으며 넘기고 날카로운 말 한마디 못하네라는 인상으로 말이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내가 예의 바르게 굴면 상대도 똑같이 하리라는 믿음에서였다.


모욕. '깔보고 욕되게 함'이라고 네이버 국어사전은 정의한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의 김민섭 작가는 자신이 받은 모욕의 대가를 '고소'라는 방법으로 돌려준다. 책은 나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을 이야기한다. 연약한 자신으로 살아가기에 한국 사회는 만만치 않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살아가려는 연약한 나와 당신들을 위로한다. 당신이 가진 연약함은 결코 모욕과 수모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연약한 우리를 함부로 대하면 세상은 나날이 나빠질 수 있다고도.


헌혈을 하고 취소 수수료가 아까워 항공권을 양도한다. 일의 시작은 단순했다. 후쿠오카행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김민섭은 아이의 수술 날짜와 겹치는 바람에 항공권을 취소해야 했다. 취소 대신 양도는 어떨까. 그때부터 일은 시작된다. 대한민국 남성. 이름이 김민섭일 것. 영문 이니셜이 같을 것.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김민섭은 김민섭을 찾아 나선다. 주말도 아닌 평일에 여행을 갈만한 생활을 가진 대한민국 남성의 김민섭이 있을까.


있었다. 나타났다. 93년생 김민섭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고등학교 교사는 김민섭 씨의 숙박비를 후원해 주겠다고 나서고 대기업은 졸업 전시 비용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그저 취소 수수료가 아까워서 벌인 일은 후의와 호의가 모여 미담의 사례로까지 번진다. 왜 나를 그렇게 도와주는지 모르겠다는 93년생 김민섭 씨의 질문에 83년생 김민섭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대학에 있을 때 대학에서 나올 때 받았던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며 들려준 말을 다시 해준 것이다. 당신이 잘 되는 일은 내가 잘 되는 일이었다. 당신과 내가 잘되면 세상 모두가 잘되지 않겠느냐는 행복한 결말을 가진 동화 같은 이야기를 서로에게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지나고 있는 연약의 시기를 나 역시 겪었노라고. 우리 모두 연약한 시절이 있었고 그걸 잊지 않으면 된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스크를 벗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갈 수 있는 날이 올까. 의문이 든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는 이런 세상이어도 기묘하게 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상황이 문제라고 소란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방식으로(각자 달리고 남에게 욕을 하지 않고 헌혈을 하는) 연약의 시절을 겪는 우리를 보듬어 가기를 바란다. 상대가 가진 연약함을 약점으로 보지 않고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며 살아간다면 팬데믹의 세상이라도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연약하다. 내내 연약하게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로 나를 모욕하게 놔두면 안 된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연약한 상대들을 알아봐 주고 무지개떡을 나눠 먹는 일. 축하의 자리에 기꺼이 응답해 주는 일. 책을 읽으며 살아가는 하루로 두려움을 없애는 일. 내가 나를 부정하는 일로 힘들어하지 않기를 이 책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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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농담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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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었는데 남이 쓴 글만 읽고 있는 삶. 괜찮은 건가를 묻는 건 괜찮지 않다는 뜻이겠지. 에너지와 활기와 생기 없음으로 지내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숨만 겨우 쉬고 있다. 어떨 때는 비염이 도져서 숨조차 쉬는 게 힘들다. 운동 같은 건 취미가 없고 사람 많은 데는 안 가는 게 아니고 못 가고. 주말 내내 걱정하다가(하필이면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깨서 실수 한 걸 찾아냈다. 무슨 일이래. 잠이 확 깨고 나 정말 미쳤구나. 중요한 걸 놓쳤구나 해서 식겁. 아침이 밝자마자 실수했다는 걸 밝히는 카톡을 보내고. 그것 또한 실례인데. 월요일에 한 번 더 도장을 찍어 주러 오십사 간곡하게 부탁했다.) 청소하다가 낮잠 자다가. 주말 인데.


으쌰 으쌰 해서 48시간을 알차게 써보자 매번 다짐하지만 피곤하고 피곤하다. 밥을 먹으면 등이 아파지고 잠깐 기대 있어야지 하다가 눕고 잠이 들고 오후도 아니고 저녁만 남은 일요일을 갖게 된다. 박막례 할머니 왈. 실패는 했다는 것의 증거.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이에게 건네는 다정한 조언을 반복해서 듣는다. 요즘엔 유튜브가 마음 치료사다. 정확히 내 마음의 상태를 알고 영상을 추천해 준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옆으로 누워 그걸 보느라 또 시간이 날아간다.


이슬아의 창작 동료 인터뷰집 『창작과 농담』을 들춰보다가 단박에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견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배우 강말금과 감독 김초희를 인터뷰한 부분에서였다. 이슬아는 두 사람에게 질문한다. 두 분이 생각하는 부귀영화란 무엇인지. 강말금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한테 부귀영화는 일단 출퇴근하지 않는 것.' 이어서 김초희도 '맞아. 나도. 그거 안 하고 싶어서 이 직업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라고 주고받는다.


가수, 작가, 감독, 배우를 인터뷰한 『창작과 농담』은 그들이 창작을 하기까지의 역사와 마음을 다룬다. 어떻게 창작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있나 아니 어쩌다 창작하는 사람으로 지내고 있나를 질문한다. 어떻게 와 어쩌다 사이를 이슬아는 능숙하게 넘나든다. 창작의 비기 같은 건 없고 그냥 그 사람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대화한다. 책을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람이 있고 책을 읽기 전부터 알던 사람이 있다. 차이점은 없다. 모르던 사람에게서는 좀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알던 사람에게서는 색다른 부분이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느낄 수 있다.


말로만 문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예전에는. 이제는 그런 말조차 안 한다. 부끄럽고 한심해서. 내가 쓰지 않아도 남들이 부지런히 그것도 기깔나게 쓰고 있잖아, 정신 승리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독서가 최고라고 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깨달음이 온다. 나는 이렇게 잘 쓸 자신이 없다. 하루하루를 지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과 감정에 대해 잘 정제된 언어로 표현해 놓은 걸 보고는 감탄한다. 그 정도면 된다는 자기 위안.


화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데 참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왔는데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직장 다니면서 새벽까지 글을 써서 등단했다는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혼란에 빠진다.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아무래도 나는 틀렸어. 먼저 가. 이러고 있다. 스트레스 받을 일도 아닌데 괜히 자학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돌아와 책을 산다. 그 일로 퉁 친다. 쓰지 않는 것에 대해. 『창작과 농담』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삶의 태도는 이런 식이다.


그들은 인내한다. 창작하기 전까지의 고통스러움과 결과물을 완성하고 나서의 부끄러움을. 대중의 찬사와 혹평을 들으면서도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창작이 있기 전에 삶이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다. 삶을 살아낸다. 가장 중요한 건 삶과 농담이라고 말한다. 삶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농담이 꼭 있어야 된다는 걸 아는 이들이 창작을 한다. 싸우고 절망하고 슬퍼지는 건 우리의 시간에 농담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말과 말 사이에 조미료처럼 작용하는 농담을 적절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살아가는 것에 잠식 당하지 않고 다만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미워하는 마음은 왜 생길까. 실망은 왜 찾아올까. 아무리 책을 읽어도 현명해지지 않는다. 『창작과 농담』의 표지는 이슬아와 오혁이 실뜨기를 하는 두 손을 찍은 사진이다. 실뜨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놀이이다. 두 사람이 필요하다. 네 개의 손이 모여야 실을 펼치고 모을 수 있다. 겨우 손가락 몇 개를 움직였을 뿐인데 실이 만들어 내는 세계는 찬란하다.


표지 사진은 창작은 혼자였다가 둘이 되어야만 완성되는 일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일단 혼자 만든다. 혼자의 시간이 끝나면 다른 이가 필요하다. 당신의 고독과 슬픔과 비애를 알아봐 주는 이가 당신을 찾아와야 비로소 완성되는 창작.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펼쳐지는 실뜨기처럼 당신이 만들어낸 세계는 어떻게 변이 될지 알 수 없다. 실이 꼬이면 꼬이는 대로. 성공한 이의 후일담이 아닌 보통의 존재들이 피곤해하면서도 무언갈 만들어가는 모습을 『창작과 농담』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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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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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리뷰를 빙자한 힘들다고 징징대는 글을 쓴다. 나도 안다. 맨날 허구한 날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 듣기도 보기도 싫다는걸. 듣기 좋은 소리도 계속 들으면 질리는데. 싫고 부정적이고 짜증 섞인 소리는 오죽할까. 그러니 쓴다. 대나무숲에 서 있는 심정으로. 내가 하는 말은 바람이 대나무가 듣고 다시 나에게 들려줄 테니.


여기서 그만두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겁나, 졸라 힘들다. 매일 아침에 눈 뜨는 게 겁이 날 지경이다. 어떤 생각까지 했냐면 일하러 가다가 뭐가 됐든 나를 덮쳐서 정신을 잃고 당분간 병원에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죽지는 말고 깊은 잠에 드는 거. 내가 의식이 없는 동안 일은 알아서 처리될 것이고.(그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갈 거라는 믿음. 잘만 돌아간다. 나 말고도 일할 사람은 천지.) 정리가 되면 눈을 뜬다.


이거 심각한 건가. 내 마음까지 사찰하고 있는 듯한 유튜브는 번아웃, 직장 스트레스, 우울감, 무기력에 관한 정신과 전문의의 강의를 보여준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서 힘들어 못하겠다고 그러느냐 비아냥 거릴 수도 있겠는데. 나 지금 진지하다. (궁서체로 쓴다.) 버티면, 이겨내면, 참아내면 이라는 말로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데. 꺼지삼. 점심시간에 매점에 가 있는 거보다 어두운 도서관에서 한국 문학 전집을 훑어보던 문학소녀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이슬아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으면서 어둡고 불안한 지금의 나를 토닥인다. 이슬아니까 가능해. 그렇게 생각했다. 『새 마음으로』는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을 잃어보면 알겠지만 인터뷰이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다. 오직 이슬만이 안다. 이슬아가 자주 다니는 단골 옷 수선 사장님, 이슬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슬아의 친구 엄마, 이슬아의 책을 만드는 인쇄소 기장과 경리 등 이슬아의 지인들의 이야기로 꾸려져 있다.


현재까지 알바를 빼면 딱 두 개의 직업을 가져 보았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세상을 너무 모르는 채로 사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이 활동 범위가 좁은 거 아닌가. 망신스럽기도 하고. 글을 못 쓰는 이유가 다양한 직업 활동을 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닌가. 핑계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래서 읽는다. 이슬아의 인터뷰집이 나왔다길래, 바로 주문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세계를 이슬아는 듣고 보고 기록해서 보여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새 마음으로』의 표지가 예쁘다. 제목 역시 산뜻하다. 군더더기 없다. 반들반들한 표지에 마치 시간 여행을 한 듯한 사진 배경까지. 안 살 이유가 없다. 직장인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일요일 저녁에 읽기에 매우 대단히 최적화된 책이다. 없던 용기까지 불러온다. 나의 어려움은 괜찮은 수준이구나. 응급실 청소 노동자 순덕 씨의 사연을 시작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매일을 새 마음으로 일하는 이들의 오늘을 만날 수 있다. 그에 반해 나의 오늘은 어떤가. 새 마음은커녕 구겨지고 찢어져서 너덜거리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호강에 겨워서 요강 차는 소리라고 하면 잠자코 듣겠다.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세상 일 혼자 다하는 것처럼 하기 싫다고 때려치우고 싶다고 왜 계속 그러냐 하면 할 말 없다. 백수 시절에는 빨리 직장 구해서 일하고 싶었는데. 일하고 있으니까 그만두고 싶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조금 써서 그걸로 작년까지는 벌어먹고 살았는데. 그래서 일 못한다고 서툴다고 이것도 못하냐는 소리는 일 처음 시작할 때 빼고는 안 들었는데.


지금은.


나 이해 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누군가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헌 마음도 빈 마음도 아닌 새 마음으로 오랫동안 일했나.' 『새 마음으로』 책 뒤표지에 쓰인 문장이다. 배우고 싶어서. 지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이상한 마음먹지 않고 새 마음으로 오랫동안 일한 당신들의 신념을 알고 싶어서.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살고 싶어서. 책이 나를 구원할 수 있냐고 질문하면 그렇다고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기에 앞서 책을 읽으면 어떤 선택을 미룰 수 있다.


『새 마음으로』는 선택 대신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판단 대신 유보하라고 권한다. 네가 걸어가는 길에 강아지가 따라오고 고양이가 지나가고 강물에 햇살이 비치는 걸 고마워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질문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영애 씨의 서사는 나를 '미래로' 이끌어준다. 네가 눈을 뜨고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서는 일. 너의 오늘로 향해 가는 일이야말로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일이 된다.


그거면 된다. 나를 달랜다.


새 마음을 챙겨가지는 못 할 것 같아. 나의 마음은 길에 놔두고 갈래. 마음이 없는 상태면 괜찮을 것 같아. 당분간만 마음 없이. 누군가의 새 마음을 엿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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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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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무슨 일이든 해 보려고 발버둥 치는 삶보다, 정말 어딜 가나 비슷하구나 깨닫고 체념하는 삶보다, 지금처럼 고인 채로 매일 짜증 내며 조용히 썩어가는 삶이 최악이다. 박수원은 내가 어디에서도 지금만큼 인정받지는 못하리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나는 박수원의 믿음이 역겨웠다. 그가 나를 얼마나 경멸하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후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후회하는 삶을 살 것이다.


(최진영, 『내가 되는 꿈』中에서)


'그렇다면 나는 후회하는 삶을 살 것이다.' 최진영의 소설 『내가 되는 꿈』을 읽으며 밑줄 그은 문장은 저런 식이었다. 또 있다.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처럼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상대를 증오하는 방법으로 정신없이 화를 내며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대체 어쩌자는 건데 하는 식의 문장들. 불안, 분노, 짜증, 냉소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내가 감흥을 받은 문장. 애쓰지 않아도 좋아. 포기할 수 있다면 할 것. 간단명료한 말을 찾아가며 읽었다.


사직서에 일신상의 이유라는 두루뭉술한 말이 아닌 그동안에 쌓여 왔던 회사에 대한 울분을 써내는 장면에 책갈피를 했다. 『내가 되는 꿈』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장면으로 시작한다. 손주들에게 공평하게 200만 원씩 남겨 줬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으면서도 태희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못한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는 중이었다. 직장 상사라는 박수원 부장은 매번 태희의 실수를 지적해 내고 망신을 줬다. 할머니가 남긴 편지도 있으니 한 번 내려오라는 엄마의 말에 짜증을 낸다.


하필이면 전화를 받은 곳이 회사여서. 사직서든 편지든 무언갈 써야 정리가 되는 상황인데 태희는 기획서나 쓰고 있다. 번번이 까이고 퇴짜를 맡고 반려를 당하는 기획서를 쓰느라 할머니의 죽음 이후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200만 원은 그냥 엄마 쓰라고 했다. 엄마는 일단 고마워해야 하는 마음이 먼저 아니냐고 했다. 태희는 실수와 잘못을 연달아 하는 자신의 삶이 실망스럽다. 다음 장에서는 태희의 과거가 나온다. 부모의 별거로 외갓집에서 이모와 한 방을 나눠 쓰며 살아가는 중학교 이후의 삶.


어른이 된 태희와 아이였을 때의 태희는 편지로 연결된다. 과거의 태희가 없었다면 현재의 태희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과거와 현재는 긴밀한 듯 때론 단절된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는데 그걸 어른이 된 나들은 잊고 산다. 애초에 과거 따위는 없다는 듯 현재의 구질구질함은 전부 지금의 내가 잘못 살아서 만든 것이라는 자책을 하면서 말이다. 아이였을 때. 내가 아이였을 때를 떠올려 보면 싫고 비참하고 슬프다. 어른의 보호는 없었고 어떻게든 성인으로서의 삶만이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는 자랄 수 있나. 어른으로 클 수 있나. 그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어른. 안타깝게도 어른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어른.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는 식으로 함부로 말하지 않는 어른. 책임감과 의무감이 소량으로라도 몸 안에 있는 어른이 아이의 곁에 있어야 한다. 태희의 곁에는 그런 어른이 없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태희는 그 시간들을 감당해야 했다. 엄마는 매주 찾아오다가 뜸해지고 아빠는 취조식으로 질문을 하고 이모는 혼란한 연애를 한다.


직업으로서의 꿈만을 꿈이라고 여겼다. 꿈이 있는 아이는 구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나만 빼고 훌륭해 보였다. 그림을 잘 그리고 공부를 잘하고 날씬하고 예쁘고 글짓기를 잘하는. 내게 없는 아이들의 장점을 동경하면서 살았다. 어중간했다. 겁이 많아서 비행을 저지르지도 재능과 노력이 없어서 공부도 못 했다. 그저 내가 가질 수 없는 누군가의 눈부신 모습을 보면서 나 스스로를 학대했다.


『내가 되는 꿈』의 아이 태희와 어른 태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커서 어른이 되었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삶이었다. 뭣 같은 직장에서 과장 직함을 달고 있지만 부장 박수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동료라고 부를만한 이도 없이 야근과 야근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책상을 치우고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전화를 하고 바람피운 애인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그 모든 일들을 어른 태희는 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어른 태희에게 편지 온다. 아이 태희가 보내온 과거에서 도착한 편지.


어떤 날에는 꿈이 현실이 되지 못한 것에 괴로워하고 최진영의 『내가 되는 꿈』 같은 소설을 읽고 나면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아니라 꿈을 옆에 놔두고 있다는 소설의 이야기에 안심이 되기도 하는 날. 나를 미워하다가 나를 위로하다가. 내가 싫다가 내가 괜찮다가. 확실한 주관 없이 살아가면서 남의 말에 쉽게 내 존재를 밑바닥으로 분류하다가도 '이제 정말 오지 않을 거라고 미지는 말했다.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이런 문장을 발견하면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게 등신 같은 게 아니라는 위안을 받는다.


후회하지 않겠다고 생각할수록 꼭 해내야 한다는 다짐을 할수록 포기하면 지는 거야 선언할수록 나는 내가 되지 못했다. 내가 아닌 남이 되어 갔다. 규율과 관습과 평범으로 만들어진 삶으로. 어른 태희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후로 방을 치우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애인과 이별했다. 바틀비의 선언은 꼭 필요하다. 책임져주지도 않을 거면서 도전을 말하고 패기와 용기 없음을 비난하는 어른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다.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하기 싫은 건 제발하지 마. 그래도 세상은 망하지 않아. 네가 그만둔다고 해서 네 인생이 끝장나지도 않지. 일단 살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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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처받았나요? - 상처 입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술 빼고 다 있는 스낵바가 문을 연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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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도 상처받았어요. 오늘만이 아니고, 오늘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당분간 내내 그럴 것 같아요는 아니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상처만 받는 상처 인간같이 돼버린 것 같아요. 그런 기분이 들어요. 요즘의 시간들은. 별거 아니라고 그냥 흘러듣고 잊어버리라고 하는데. 잘 안돼요. 성격 탓을 해봐도 위안이 되질 않아요. 타고나기를 소심하고 불안을 많이 느끼는 성향이라고 원인을 나름대로 찾아보았는데도.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나란 인간이 문제인 건 아닌가. 존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닌가.


그 와중에도 마스다 미리의 신간이 나와서 당장 샀지요. 제목 좀 보세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라니요. 마스다 미리라는 것도 충분한데. 제목마저도 근사하네요. 나의 하루를 사찰하고 있는 듯한 제목. 책 택배가 왔다는 문자가 왔지만 확인만 하고 잊어버린 하루였어요. 집으로 걸어가다가. 오늘 하루도 잘 참았네. 그 순간에 화장실로 도망간 건 잘했어. 나를 다독이면서. 맞다, 문 앞에 책 택배가 와 있지. 갑자기 솟구친 힘으로 마저 길을 걸어갔어요.


성취감을 얻고자 하루에 만보 걷기를 하고 있답니다. 만보를 걸었다는 알림이 오면 약간 뿌듯해지네요. 택배 언박싱은 즐겁네요. 짜증과 분노로 가득한 하루를 잊게 만들어 줍니다. 그전에는 몰랐어요. 왜 직장인들이 집에 와서 미친 듯이 쇼핑을 하는지. 신용 카드를 긁는지. 카드빚을 갚느라 다시 출근을 하는지. 비싼 걸 사지도 못하지만 소소한 금액으로 물건을 사는 일로 정신이 건강해지면 자신이 무너지지 않으면 괜찮은 소비라는 걸 이제는 깨달아요.


청소까지 마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어요. 고요한 저녁은 못 견딜 것 같아서.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를 펼쳐 들고. 야구가 진행 중이고. '우리는 어쩌면 서로 작은 상처들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네요. 상처받은 사람들 눈에만 보인다는 '스낵바 딱따구리'가 주요 배경이에요. 먼저 콜센터 일하는 나카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원하는 대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름을 묻고 상급자를 찾는 고객. 나카타의 하루는 그렇습니다.


연인이 있어도 자기 말만 하고요. 배가 고픈데 요깃거리도 안되는 음식을 주문하는 연인. 나카타는 그와 헤어지고 '스낵바 딱따구리'를 발견합니다. 술은 팔지 않는다고 해요. 딱 봐도 인상이 좋아 보이는 주인이 있어요. 두유 라테를 주문하는데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라고 말해주네요. 간단한 말 있잖아요. 길게 주절거리는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말이 아닌. 그저 고생했어, 수고했어,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 천천히 해. 같은 주어와 서술어만 있는 말이 어떤 오후에는 필요해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를 등에 기대어 읽는데 자꾸 잠이 쏟아졌어요. 저녁 10시만 넘어가면 졸음이 쏟아지네요. 나카타의 이야기 뒤에는 나카타에게 약간의 진상을 부린 아다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식품 매장에서 일을 하는 아다치. 손님도 같이 일하는 동료도 아다치에게 함부로 대합니다. 매일 작은 손해를 보며 살아가고 있구나를 느끼는 아다치. 스낵바를 발견하고 들어갑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주인과 치면서 하루의 상처를 털어냅니다.


우리는 서로를 몰라요.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데. 어쩌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 걸까요? 책의 말대로 상처로 연결되어 있다면 이해가 되네요. 저는요, 그래요. 웬만하면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민감하고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 탓에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서 상처를 많이 받거든요. 의미 없는 말일 텐데 자학처럼 의도를 찾아내서 스스로 상처를 받아요. 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지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어떤 말들은 대게 의미가 없는 헛소리로 판명됩니다. 생각 없이 지껄이는 말들이 많지요.


어른이라고 분류되는 나이로 살아가는데. 어른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아이의 심정이에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의 등장인물인 열일곱 살의 메이의 말처럼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상처를 입어야 하는 어른의 얼굴을 한 아이가 저예요. 열일곱에는 꿈을 꿨어요. 무엇이 되겠다. 그 꿈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꿈을 꾸었던 열일곱은 기억합니다. 그거면 된다고,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는 말해주었어요. 미래보다는 오늘을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고도.


불합리한 상황에서 조목조목 따져가며 말을 하진 못해요. 그냥 당하고 있어요. 얼굴도 모르는 타인 때문에 내 하루가 내 기분이 엉망이 되는 걸 보고만 있어요. 또는 한 공간에 있는 사람 때문에 내 세계가 허물어지는 걸 방기하고만 있어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지금 나는 감정이 없다. 인간이 아니다. 일하는 로봇이다. 일하는데 감정은 필요하지 않다. 속으로 되뇝니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는 '스낵바 딱따구리'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곳이 없다는 건 상처받은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니까요.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정작 상처 준 사람은 그걸 기억도 못 하는데 나만 힘들고 아프고. 상처로 연결된 우리. 각자 처한 상황이 달라서 그런 거라고. 어느 날 우리 함께 모여서 두유 라테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탭댄스를 추고 이야기를 나눠요. 규칙은 하나예요. 혼자서 오래 떠들지 말 것.


나의 오늘은요.


커피를 타고 사과 깎아 놓으라는 말과 반말을 듣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왜 말을 안 하냐고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일을 어떻게 처리하냐고 지켜보고 있겠다고. 되는대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상처 세포가 유독 발달해서 그런지 더러운 기분이 쉽게 떨쳐지지 않았어요. 화장실에 앉아 있는 게 편하고 좋아요. 표정 관리가 힘들 땐 화장실로 가라던 누군가의 말을 듣고부터는 화장실로 가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웃으려고 해요.


편의점에서 알바하며 구직 활동을 하는 서른다섯의 도미타는 말 하네요. "더없이 평범해도 좋으니까. 확실한 내일을 원하지." 평범과 확실한 내일은 가질 수 없는 게 되어 버린 지 오래이지 않나요? 그래도 도미타는 원해요. 부디 도미타가 정규직으로 입사했으면 좋겠어요. 1년 계약직인 제가 주제넘는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스낵바 딱따구리'는 없으니까, 글을 써요. 그때 하지 못한 말을 써 나가요. 마음대로 쓰고 싶을 땐 항상 가지고 다니는 라이언 초록색 노트에. 근사한 나로 보이고 싶을 땐 블로그에.


희박한 확률이지만 현실의 나를 아는 누군가 내가 쓰는 글을 읽고 따지지 말아요. 나는 당신들이 아닌 내 이야기를 쓰는 거니까요. 나의 기분, 나의 감정, 나의 상처, 나의 어제, 나의 오늘, 나의 기억. 나는 당신들이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에요. 확실하게 해요. 반말을 할 건지. 존댓말을 할 건지. 타인을 하찮게 대하면 당신을 하찮게 대해도 된다는 걸로 알게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를 사서 건네주고 싶지만 그런 정도의 친분을 쌓고 싶지 않으니. 스스로 사서 읽도록 하세요. 얼굴과 마음이 뜨거워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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