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농담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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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었는데 남이 쓴 글만 읽고 있는 삶. 괜찮은 건가를 묻는 건 괜찮지 않다는 뜻이겠지. 에너지와 활기와 생기 없음으로 지내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숨만 겨우 쉬고 있다. 어떨 때는 비염이 도져서 숨조차 쉬는 게 힘들다. 운동 같은 건 취미가 없고 사람 많은 데는 안 가는 게 아니고 못 가고. 주말 내내 걱정하다가(하필이면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깨서 실수 한 걸 찾아냈다. 무슨 일이래. 잠이 확 깨고 나 정말 미쳤구나. 중요한 걸 놓쳤구나 해서 식겁. 아침이 밝자마자 실수했다는 걸 밝히는 카톡을 보내고. 그것 또한 실례인데. 월요일에 한 번 더 도장을 찍어 주러 오십사 간곡하게 부탁했다.) 청소하다가 낮잠 자다가. 주말 인데.


으쌰 으쌰 해서 48시간을 알차게 써보자 매번 다짐하지만 피곤하고 피곤하다. 밥을 먹으면 등이 아파지고 잠깐 기대 있어야지 하다가 눕고 잠이 들고 오후도 아니고 저녁만 남은 일요일을 갖게 된다. 박막례 할머니 왈. 실패는 했다는 것의 증거.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이에게 건네는 다정한 조언을 반복해서 듣는다. 요즘엔 유튜브가 마음 치료사다. 정확히 내 마음의 상태를 알고 영상을 추천해 준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옆으로 누워 그걸 보느라 또 시간이 날아간다.


이슬아의 창작 동료 인터뷰집 『창작과 농담』을 들춰보다가 단박에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견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배우 강말금과 감독 김초희를 인터뷰한 부분에서였다. 이슬아는 두 사람에게 질문한다. 두 분이 생각하는 부귀영화란 무엇인지. 강말금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한테 부귀영화는 일단 출퇴근하지 않는 것.' 이어서 김초희도 '맞아. 나도. 그거 안 하고 싶어서 이 직업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라고 주고받는다.


가수, 작가, 감독, 배우를 인터뷰한 『창작과 농담』은 그들이 창작을 하기까지의 역사와 마음을 다룬다. 어떻게 창작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있나 아니 어쩌다 창작하는 사람으로 지내고 있나를 질문한다. 어떻게 와 어쩌다 사이를 이슬아는 능숙하게 넘나든다. 창작의 비기 같은 건 없고 그냥 그 사람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대화한다. 책을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람이 있고 책을 읽기 전부터 알던 사람이 있다. 차이점은 없다. 모르던 사람에게서는 좀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알던 사람에게서는 색다른 부분이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느낄 수 있다.


말로만 문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예전에는. 이제는 그런 말조차 안 한다. 부끄럽고 한심해서. 내가 쓰지 않아도 남들이 부지런히 그것도 기깔나게 쓰고 있잖아, 정신 승리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독서가 최고라고 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깨달음이 온다. 나는 이렇게 잘 쓸 자신이 없다. 하루하루를 지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과 감정에 대해 잘 정제된 언어로 표현해 놓은 걸 보고는 감탄한다. 그 정도면 된다는 자기 위안.


화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데 참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왔는데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직장 다니면서 새벽까지 글을 써서 등단했다는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혼란에 빠진다.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아무래도 나는 틀렸어. 먼저 가. 이러고 있다. 스트레스 받을 일도 아닌데 괜히 자학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돌아와 책을 산다. 그 일로 퉁 친다. 쓰지 않는 것에 대해. 『창작과 농담』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삶의 태도는 이런 식이다.


그들은 인내한다. 창작하기 전까지의 고통스러움과 결과물을 완성하고 나서의 부끄러움을. 대중의 찬사와 혹평을 들으면서도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창작이 있기 전에 삶이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다. 삶을 살아낸다. 가장 중요한 건 삶과 농담이라고 말한다. 삶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농담이 꼭 있어야 된다는 걸 아는 이들이 창작을 한다. 싸우고 절망하고 슬퍼지는 건 우리의 시간에 농담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말과 말 사이에 조미료처럼 작용하는 농담을 적절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살아가는 것에 잠식 당하지 않고 다만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미워하는 마음은 왜 생길까. 실망은 왜 찾아올까. 아무리 책을 읽어도 현명해지지 않는다. 『창작과 농담』의 표지는 이슬아와 오혁이 실뜨기를 하는 두 손을 찍은 사진이다. 실뜨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놀이이다. 두 사람이 필요하다. 네 개의 손이 모여야 실을 펼치고 모을 수 있다. 겨우 손가락 몇 개를 움직였을 뿐인데 실이 만들어 내는 세계는 찬란하다.


표지 사진은 창작은 혼자였다가 둘이 되어야만 완성되는 일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일단 혼자 만든다. 혼자의 시간이 끝나면 다른 이가 필요하다. 당신의 고독과 슬픔과 비애를 알아봐 주는 이가 당신을 찾아와야 비로소 완성되는 창작.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펼쳐지는 실뜨기처럼 당신이 만들어낸 세계는 어떻게 변이 될지 알 수 없다. 실이 꼬이면 꼬이는 대로. 성공한 이의 후일담이 아닌 보통의 존재들이 피곤해하면서도 무언갈 만들어가는 모습을 『창작과 농담』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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