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김민섭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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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마음과 몸의 상태가. 정상이고 괜찮은 척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지는 모르겠다. 어색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불을 붙이기 전의 시한폭탄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 불만 붙여 봐라. 그러면 화끈한 맛을 보여줄 테다. 팡팡하고 터지며 난리와 지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여줄 테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랬더니. 뭔가 눈치를 챈 걸까.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조심스러운 면이 느껴졌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약간의 조심성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매사에 웃고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굴었더니. 얘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구나. 그렇게 여긴 것일까. 하대는 물론 비아냥에 약간의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참았다. 일단은. 지금까지 나는 그런 상황을 참아야 하는 건 줄 알았고 참았다. 그러다 마음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별안간 불이 꺼졌다.


그런 게 얼굴에 다 드러났을까. 이후에는 개소리도 하지 않고 말도 예전만큼이나 걸지 않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9시부터 6시까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싶다. 가능하다면 나 혼자 일하고 싶다. 사람들이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게 이제는 힘들다. 반말과 무시와 조롱을 참기가 어렵다. 그렇고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집에 돌아와 책을 읽으며 어두워진 마음에 불을 켜려고 했다.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김민섭의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읽으면서 내가 가진 '연약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제목을 보고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턱대고 해주는 위로의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간의 나의 억울함과 분노를 이야기할 때 앞뒤 따지지 않고 상대가 해줬으면 하는 말이었다. 그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과 행동이었고 너는 옳았다는 식의 말. 답정너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듣고 싶은 말이 그것이었다. 너는 잘했다. 너는 괜찮고 네가 잘 되면 좋겠다. 예의가 바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공부를 못 하지만 인사성이 바르다는 문장이 쓰인 생활통지표를 받으면 기분이 좋았다.


먼저 인사를 하고 고개를 숙이고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종결 어미를 신중하게 선택해서 말했다. 명령의 의도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의문문으로 말해 상대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줬다. 그랬는데. 그렇게 했는데. 저 사람은 쉽네라는 인상으로 남았다. 내가 이런 태도와 말을 해도 저 사람은 웃으며 넘기고 날카로운 말 한마디 못하네라는 인상으로 말이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내가 예의 바르게 굴면 상대도 똑같이 하리라는 믿음에서였다.


모욕. '깔보고 욕되게 함'이라고 네이버 국어사전은 정의한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의 김민섭 작가는 자신이 받은 모욕의 대가를 '고소'라는 방법으로 돌려준다. 책은 나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을 이야기한다. 연약한 자신으로 살아가기에 한국 사회는 만만치 않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살아가려는 연약한 나와 당신들을 위로한다. 당신이 가진 연약함은 결코 모욕과 수모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연약한 우리를 함부로 대하면 세상은 나날이 나빠질 수 있다고도.


헌혈을 하고 취소 수수료가 아까워 항공권을 양도한다. 일의 시작은 단순했다. 후쿠오카행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김민섭은 아이의 수술 날짜와 겹치는 바람에 항공권을 취소해야 했다. 취소 대신 양도는 어떨까. 그때부터 일은 시작된다. 대한민국 남성. 이름이 김민섭일 것. 영문 이니셜이 같을 것.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김민섭은 김민섭을 찾아 나선다. 주말도 아닌 평일에 여행을 갈만한 생활을 가진 대한민국 남성의 김민섭이 있을까.


있었다. 나타났다. 93년생 김민섭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고등학교 교사는 김민섭 씨의 숙박비를 후원해 주겠다고 나서고 대기업은 졸업 전시 비용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그저 취소 수수료가 아까워서 벌인 일은 후의와 호의가 모여 미담의 사례로까지 번진다. 왜 나를 그렇게 도와주는지 모르겠다는 93년생 김민섭 씨의 질문에 83년생 김민섭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대학에 있을 때 대학에서 나올 때 받았던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며 들려준 말을 다시 해준 것이다. 당신이 잘 되는 일은 내가 잘 되는 일이었다. 당신과 내가 잘되면 세상 모두가 잘되지 않겠느냐는 행복한 결말을 가진 동화 같은 이야기를 서로에게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지나고 있는 연약의 시기를 나 역시 겪었노라고. 우리 모두 연약한 시절이 있었고 그걸 잊지 않으면 된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스크를 벗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갈 수 있는 날이 올까. 의문이 든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는 이런 세상이어도 기묘하게 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상황이 문제라고 소란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방식으로(각자 달리고 남에게 욕을 하지 않고 헌혈을 하는) 연약의 시절을 겪는 우리를 보듬어 가기를 바란다. 상대가 가진 연약함을 약점으로 보지 않고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며 살아간다면 팬데믹의 세상이라도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연약하다. 내내 연약하게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로 나를 모욕하게 놔두면 안 된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연약한 상대들을 알아봐 주고 무지개떡을 나눠 먹는 일. 축하의 자리에 기꺼이 응답해 주는 일. 책을 읽으며 살아가는 하루로 두려움을 없애는 일. 내가 나를 부정하는 일로 힘들어하지 않기를 이 책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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