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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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리뷰를 빙자한 힘들다고 징징대는 글을 쓴다. 나도 안다. 맨날 허구한 날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 듣기도 보기도 싫다는걸. 듣기 좋은 소리도 계속 들으면 질리는데. 싫고 부정적이고 짜증 섞인 소리는 오죽할까. 그러니 쓴다. 대나무숲에 서 있는 심정으로. 내가 하는 말은 바람이 대나무가 듣고 다시 나에게 들려줄 테니.


여기서 그만두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겁나, 졸라 힘들다. 매일 아침에 눈 뜨는 게 겁이 날 지경이다. 어떤 생각까지 했냐면 일하러 가다가 뭐가 됐든 나를 덮쳐서 정신을 잃고 당분간 병원에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죽지는 말고 깊은 잠에 드는 거. 내가 의식이 없는 동안 일은 알아서 처리될 것이고.(그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갈 거라는 믿음. 잘만 돌아간다. 나 말고도 일할 사람은 천지.) 정리가 되면 눈을 뜬다.


이거 심각한 건가. 내 마음까지 사찰하고 있는 듯한 유튜브는 번아웃, 직장 스트레스, 우울감, 무기력에 관한 정신과 전문의의 강의를 보여준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서 힘들어 못하겠다고 그러느냐 비아냥 거릴 수도 있겠는데. 나 지금 진지하다. (궁서체로 쓴다.) 버티면, 이겨내면, 참아내면 이라는 말로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데. 꺼지삼. 점심시간에 매점에 가 있는 거보다 어두운 도서관에서 한국 문학 전집을 훑어보던 문학소녀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이슬아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으면서 어둡고 불안한 지금의 나를 토닥인다. 이슬아니까 가능해. 그렇게 생각했다. 『새 마음으로』는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을 잃어보면 알겠지만 인터뷰이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다. 오직 이슬만이 안다. 이슬아가 자주 다니는 단골 옷 수선 사장님, 이슬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슬아의 친구 엄마, 이슬아의 책을 만드는 인쇄소 기장과 경리 등 이슬아의 지인들의 이야기로 꾸려져 있다.


현재까지 알바를 빼면 딱 두 개의 직업을 가져 보았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세상을 너무 모르는 채로 사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이 활동 범위가 좁은 거 아닌가. 망신스럽기도 하고. 글을 못 쓰는 이유가 다양한 직업 활동을 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닌가. 핑계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래서 읽는다. 이슬아의 인터뷰집이 나왔다길래, 바로 주문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세계를 이슬아는 듣고 보고 기록해서 보여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새 마음으로』의 표지가 예쁘다. 제목 역시 산뜻하다. 군더더기 없다. 반들반들한 표지에 마치 시간 여행을 한 듯한 사진 배경까지. 안 살 이유가 없다. 직장인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일요일 저녁에 읽기에 매우 대단히 최적화된 책이다. 없던 용기까지 불러온다. 나의 어려움은 괜찮은 수준이구나. 응급실 청소 노동자 순덕 씨의 사연을 시작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매일을 새 마음으로 일하는 이들의 오늘을 만날 수 있다. 그에 반해 나의 오늘은 어떤가. 새 마음은커녕 구겨지고 찢어져서 너덜거리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호강에 겨워서 요강 차는 소리라고 하면 잠자코 듣겠다.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세상 일 혼자 다하는 것처럼 하기 싫다고 때려치우고 싶다고 왜 계속 그러냐 하면 할 말 없다. 백수 시절에는 빨리 직장 구해서 일하고 싶었는데. 일하고 있으니까 그만두고 싶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조금 써서 그걸로 작년까지는 벌어먹고 살았는데. 그래서 일 못한다고 서툴다고 이것도 못하냐는 소리는 일 처음 시작할 때 빼고는 안 들었는데.


지금은.


나 이해 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누군가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헌 마음도 빈 마음도 아닌 새 마음으로 오랫동안 일했나.' 『새 마음으로』 책 뒤표지에 쓰인 문장이다. 배우고 싶어서. 지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이상한 마음먹지 않고 새 마음으로 오랫동안 일한 당신들의 신념을 알고 싶어서.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살고 싶어서. 책이 나를 구원할 수 있냐고 질문하면 그렇다고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기에 앞서 책을 읽으면 어떤 선택을 미룰 수 있다.


『새 마음으로』는 선택 대신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판단 대신 유보하라고 권한다. 네가 걸어가는 길에 강아지가 따라오고 고양이가 지나가고 강물에 햇살이 비치는 걸 고마워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질문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영애 씨의 서사는 나를 '미래로' 이끌어준다. 네가 눈을 뜨고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서는 일. 너의 오늘로 향해 가는 일이야말로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일이 된다.


그거면 된다. 나를 달랜다.


새 마음을 챙겨가지는 못 할 것 같아. 나의 마음은 길에 놔두고 갈래. 마음이 없는 상태면 괜찮을 것 같아. 당분간만 마음 없이. 누군가의 새 마음을 엿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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