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 - 고형욱의 영화음악 오디세이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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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에 잠기다 

책을 읽는 내내 귓속에서는 음악이 들려왔다. 책에서 영화 음악을 선별해서 담은 CD가 있었지만 그것을 틀지 않아도 책을 보는 내내 내 주위에는 음악의 막이 가로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옛날의 추억 속으로 잠겨들었다.  

고전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이름값 만큼 많이 들어왔고 알게 모르게 영화 음악과도 친숙해진 모양이었다. 책 속의 내용들과 유명한 음악들이 알만한 것들이라 반갑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책을 읽는 부분의 음악들이 바로바로 흘러나왔으면 하는 심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만한 것들이라도 확실하게 듣기 전까지는 어렴풋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OCN에서 다시 반영을 해서 보게 된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그 중간에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상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유명한 주디 갈런드가 'Over the rainbow'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정말 세계사적인 고전 영화는 현대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되고 패러디 되어 변주된다. 새로운 색깔을 덧입으면서. 

이 책은 고전으로 평가되는 영화의 줄거리를 말하면서 영화 음악을 소개하는데, 그 외에도 감독이나 음악 감독, 캐스팅에 대한 여러 비화들을 얘기하고 있어서 소소한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주디 갈런드가 더 어린 소녀로 바뀔 뻔한 일, 실베스터 스탤론이 <록키>를 찍을 때는 무명이었다는 거, 게다가 <록키>의 시나리오를 자신이 주인공으로 해서 직접 썼다는 점 등도 재미있는 일화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 기억이었다. 분명 본 것은 맞는데,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 만큼 내용이 기억나지 않거나 음악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그 영화를 누군가와 같이 보기도 하면서 여러 추억들이 있었을 텐데... 좋은 영화들은 역시 두 세번 봐야 기억에 남는 것인데,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서울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지은이가 사는 서울에서는 여러 영화제를 통해서 영화관에서 예전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고형욱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주 영화의 추억 속에 잠기는 시간을 갖는다. 아무리 디지털 기술이 발달해도, 자기 집에 작은 영화관을 마련해 놓는다고는 해도,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의 참맛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의 장면이 눈에 한 가득 차오르고 영화의 음악이 귀를 가득 차오르고... 그렇게 영화 속에 깊게 잠겨들게 되는 즐거움을 말이다.

고형욱은 서울에 존재하는, 존재했던 영화관의 역사를 두루 겪어왔던 사람이다. 자신 또한 무수한 영화 DVD, 음악 LP판들을 소장하고 있는 수집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좋지만,,,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과 지식을 이용해서 한국 영화관의 산 증인으로서 영화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을 제작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보았다. 솔직히 이 책만으로는 영화의 줄거리와 음악에 대한 단편적인 서술이라서 기대를 한 만큼 아쉬움이 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 음악들은...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Calling you'이다. 풀 한포기 없는 삭막한 들판에서 바람에 모래가 흩날리면서 들려오는 깊게 울리는 여자의 목소리, 그 속에는 깊은 한과 외로움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영화 <원스>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자극적이거나 빠르지 않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이었다. 우리나라 영화 중 <외출>에서 나오는 '길'은 쓸쓸한 회색빛 미래를 그리고 있어서 허무한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낙엽이 떨어지는 것 같은 음악들도... 그러고 보면 뭔가 우울하고 허무한 음악만을 좋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묵혀 있던 기억들이 떠올라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좋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입에 한 가득 물고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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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마크 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 - 당신을 속여왔던 대중문화 속 주인공들의 엉큼한 비밀, 개정판
마크 슈미트 지음, 김지양 옮김 / 인간희극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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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고도 불편한 이야기들 

먼저, 눈이 움푹 들어가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듯한 저자의 얼굴이 다소 엉뚱해 보였다. 웃으면 코와 입 주위에 깊은 주름이 만들어질 것 같은 저자는 장난끼가 다분한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마크 슈미트라는 작가의 인상처럼 글 내용도 엉뚱하면서도 반가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하면서도 낯설었다.    

저자는 다방면에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영어를 가르치면서 아시아 곳곳을 이사 다녔고 짧은 만화를 그려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분석을 시도하여 글을 썼다. 마크 슈미트는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고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라는 책 내용 또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저자의 자유로운 사고를 보여주었다.  

분명 책 내용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스머프 마을을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공동체로 보고 공동 생산과 분배 방식이 평등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분석한 부분이었다. 마크 슈미트는 가가멜을 사회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자본주의의 횡포로 보거나 어떤 스머프에게는 동성애적인 요소가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반가웠던 점은 마크 슈미트가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며 지낸 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책 곳곳에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들이 짤막하게 등장한다. 특히, 한국의 햇볕 정책에 대해서 영화 <친구>나 <태극기 휘날리며>를 갖고 설명한 부분은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제 3자, 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평가라는 점이었다. 한국의 모든 조폭 영화는 외국인에게 먼저 남한과 북한의 분단과 관련된 코드로 읽힌다는 점, 그래서 <쉬리>라는 영화가 외국에서도 흥행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이라고 하면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아 있는 만큼 예술 문화에서도 그런 소재를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 모르므로. 그리고 한국에 대한 특수한 이해가 있어야 남한 사람들이 갖는 북한에 대한 양면적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 만큼 우리는 스스로 북한을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단지 핵을 가지고 미국과 협상하는 게 한 민족으로서 당당해 보이기도 한다는 점, 통일이 되면 오히려 세금이 많아져 우리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제 3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남한과 북한은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복잡한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불편한 감정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제 3자니까, 외국인이니까, 그게 사실이라도 우리를 깊숙히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거리감이 생겨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에서는 일본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태도에 대한 점도 나오는데, 일본을 좋아하지만 정말 싫다는 감정을 드러낼 때마다 외국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마크 슈미트는 일본과 우리 역사에 대해서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를 알고 있고 독립기념관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고문과 위안부 등 얼마나 악독한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얼만큼 이해하고 공감했는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사실적인 이해를 하면서도 우리가 일본에 대해 드러내는 감정이 히틀러의 유태인 말살정책에서 느껴지는 인종적인 차별주의가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제 3자의 외국인의 시각이 솔직히 드러나는 것이므로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았다. 우리는 일본에 의해 우리의 한글을 없애고 창씨개명까지 해야 했던 것이 유태인이 말살정책 같은 것을 당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외국인에게는 현재의 반일 감정이 오히려 인종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지다니,,, 이게 일반적인 외국인의 시각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것이 일본이 그동안 갖고 있던  외국에서의 위상일까? 세계가 좁아졌다고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아직도 먼 존재들인 것 같았다.

이 책에서는 동성애, 특히 '게이'에 대한 용어가 시대에 따라 어떤 변화를 보이는 지 살펴보는 부분이 흥미롭게 읽혔다. 단지 그것이 영어의 단어 변천을 설명하는데 더 힘을 쓰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말이다. 왜냐면 그 부분을 '사우스파크'라는 외국 만화 시리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시리즈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단편적인 이해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걸 보지 않아도 이해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전반적인 문화적 차이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외에도, 영화 <해리포터>와 <엑스맨>이 유전적인 요소가 인간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지 그 운명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라고 공통점을 논한다. 디즈니 만화에서 여성의 역활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설명하는 부분도 있었다. 백설공주에서 인어공주, 뮬란으로. 이 외에도 슈퍼맨의 변명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희화화하고 있었고 브랏츠 인형을 가지고 어린 여자 아이들도 어른처럼 꾸미고 다니고 그것이 소비 사회에서 어른에 의해 조장된다는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마크 슈미트가 스머프나 한국의 햇볕 정책 등을 바라보는 사고는 재미있었다. 알지 못했던 외국인의 시각이나 '게이'에 대한 용어 변천사는 우리나라에서 한 단어가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가 어떻게 나쁜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그리고 청소년들이 자신들만의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은어를 어떻게 사용하는 지를 보여주는 외국의 한 예였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실망스럽고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몇몇의 대중문화를 읽어내고는 있지만 그 분석은 사실 단편적이었다. 짧막한 글들은 한번에 읽어내리기는 쉽지만 그만큼 많은 내용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지는 않았다. 그것이 저자가 많은 곳을 이사다니며 방랑 생활을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음에는 어떤 주제 아래에서 조금 더 포괄적인 분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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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콘서트>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건축 콘서트 - 건축으로 통하는 12가지 즐거운 상상
이영수 외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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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종합예술의 하모니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는 ‘건축가’에 대한 내용을, 에필로그에서는 ‘건축’에 대한 내용을 다루면서 전체를 아우르며 구성에 대해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그 사이에는 총 5장으로 나뉘어 건축에 대한 집중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건축의 상상력과 공간의 탄생, 빛과 색의 관계,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건축의 생태적인 소통방식, 그리고 디지털 기술로 인한 건축의 미래상이 다뤄지고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건축가와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유명한 건축물이 있었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현대건축가로 불리는 박길룡의 <화신백화점>이 지금 봐도 큰 규모였을 거라고 짐작되는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큰 문화적 충격이 되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먼저 1장은 ‘상상하라, 끝도 없이!’다. 신화나 만화, 영화, 미술 등에서 등장하는 공간에 대한 다양한 상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특히, 그러한 엉뚱한 상상이 기술이 발전하면서 어떻게 현실화 되었는지 실제의 예를 들면서 밝히고 있다.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따라서 조금씩 움직인다는 건물이 무척 신기했고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이 있는 네모난 박스를 기하학적으로 쌓아 언제든 옮길 수 있는 아파트가 있다는 사실은 사진을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미래에 지구의 재난을 대비한 노아의 방주인 ‘릴리패드’는 침몰할 걱정 없이 살아보고 싶은 작은 소도시였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던 챕터였다

그 다음 챕터에서는 건축가 자신이 직접 디자인했던 여러 실제적인 예를 들고 있어서 창의적인 상상이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지 실질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이어리 하나까지도 자신의 편의에 맞추어 디자인 해 보고 명함 하나까지도 사람에게 기억될 수 있게 만드는 디자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장은 건축 공간의 탄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담양의 소쇄원을 가본적이 있어서 그때 들었던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귀를 꽉 채우는 것 같았다. 특히, 부석사에서 무량수전까지 들어가는 경로를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기승전결이라는 문학적 구성을 끌고 와 부석사의 각 요소가 주변 환경과 관계 맺으며 전체를 이루는 모습이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산에 있는 절을 다니면서도 생각해 보지 못 했던 부분이라 다음에 절을 다시 찾아가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3장은 건축의 빛과 색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는 특히, 설치 예술가인 브루스 먼로가 만든 ‘시디 바다’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4만 제곱미터의 넓은 땅을 임대하여 60만장의 시디로 바다처럼 구불구불하게 깔아놓은 것인데, 낮에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밤에는 달빛에 비쳐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2개월 후에 철거되었다고 하는데, 그 어마어마한 예술 작품이 그냥 사라져버렸다니 무척 아쉬웠다. 나도 그 시디 바다를 실제로 보고 싶어졌다. 빛과 색의 화려한 향연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4장은 건축의 현재성으로 점점 더 생태적인 요소를 접목하려는 여러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5장은 디지털 시대에 구현된 건축의 발전 모습을 여러 자료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여러 건축 모델링 프로그램으로 비정형적인 복잡한 건축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데 여러 기술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 전문적인 직종의 예로 설명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들과 앞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기하학적인 미래형 건축물들이 눈을 즐겁게 한 책이었다. 서로 내용이 겹치는 부분이나 똑같은 건축물을 예로 든 점은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뒤로 갈수록 건축 자체보다는 건물의 외양에 치중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건축의 기본적인 내용을 모두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조합이 있어야 가능한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건축가 김수근이 건축의 모든 것을 압축하여 나타낸 말이 가슴을 오래도록 두드렸다. 

“나의 집은 자궁입니다. 내 집은 자궁이고, 자궁의 집은 어머니이며, 어머니의 집은 가옥이며, 집의 집은 환경입니다. 집을 주택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환경입니다. 환경은 철학적으로 공간이 되겠는데, 공간은 집의 집의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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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극과극>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진의 극과 극 - 카피라이터 최현주의 상상충전 사진 읽기
최현주 지음 / 학고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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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진의 자정과 정오의 시간

작가는 말한다. ‘극과 극’은 삶과 죽음이나 앞과 뒤처럼 반대되는 극점에 서 있는 개념이 아니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 화려한 색깔들이 수를 놓고 있는 것처럼 각각의 사진들이 모여 한눈에 담을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을 갖거나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다른 공간을 갖는 소재를 뽑아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먼저 비슷한 소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의 사진작가를 두고 사진을 골라낸다. 그 사진작가와 사진을 가지고 떠오르는 단상을 시, 소설, 영화,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나 개인의 추억들을 이용해 다채롭게 꺼내놓는다.

특히, 카피라이터답게 문체가 단문으로 깔끔하고 강렬하다. 그 문장을 씹고 고심하는 맛도 색다른 경험을 전해준다. 그 중에서도 글쓴이만의 재미있는 발상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사이’라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우리가 A와 B 사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A와 B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고 A와 B의 어느 것도 아니다. A와 B 사이는 A와 B의 합보다 크고 웅숭깊다. 모든 ‘사이’는 기본적으로 관계 지향적이어서 은밀하고 에로틱하다. ‘사이’는 국경처럼 위태롭다. 사진 속에서 불안이나 불안정한 감정,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읽힌다면 그것이 바로 ‘사이’의 특징이다. (140쪽)

많은 사진작가들과 그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을 접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단지 아쉬운 점은 사진이 적게 실린 점이었다. 하지만 특정한 몇 명이 아닌 거의 50명이 넘는 현대 사진작가를 아우르며 소개하고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다 우리나라 작가나 외국 작가를 따로 구분하여 한 부분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중에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던 것은 박하선이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이었다. 티베트에 들어가서 조장을 하는 풍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조장은 우리나라의 매장이나 화장처럼 하나의 장례 풍습이다. 그건 너른 들판에 시신을 두면 독수리들이 육신을 먹고 영혼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내세에 더 좋은 생으로 윤회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다른 말로 ‘천장’이라고 하는데, <천장터의 독수리들>이란 작품은 흑백의 명암 대비로 흡사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것처럼 그 느낌이 무척 강렬하다. 그리고 거대한 한 마리의 독수리가 사진 앵글로 달려들 듯 날개를 활짝 펴고 솟구치는데 그것은 사신이 들고 있는 기다란 낫을 휘두르는 것처럼 눈으로 무섭게 파고든다. 거기다 그 독수리는 초점이 맞지 않은 듯 흐릿하게 찍혀 있다. 그럴수록 독수리 날개의 힘찬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모래 폭풍을 일으키는 것 같다. 독수리는 먹이를 낚아채듯 날카로운 발톱을 들어 내 얼굴을 할퀴어버릴 듯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이 강렬한 사진 한 장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그리고 사진에 이렇게 다양한 주제가 있는 줄은 미처 예전에는 몰랐다. 그저 빛과 어둠을 이용하거나 순간적인 찰나를 찍은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의 사진집을 보거나 사진 전시회를 다녔어도 그동안 사진에 대해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자기만의 주제로 꾸준히 사진을 찍어 왔고 단순히 사진을 찍는 행위로만 그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마술처럼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연구해서 실제로 그럴듯하게 찍었고, 또 어떤 이는 호텔의 많은 창에 비친 방을 따로따로 세트장에서 찍고 하나로 모아 찍거나, 또는 신문지상의 사건을 재구성하여 모형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찍거나, 사진 속에서 자신을 무한 복사를 하거나, 콜라주 방식으로 여러 사진을 이어 붙여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거나, 사진 속의 다양한 형식 실험은 끝이 없었다.

책의 소개 문구처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유쾌한’ 사진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그 무한한 상상의 세계 속에서 극과 극은 어느새 사라지고 감탄만이 남아 긴 여운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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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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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누구나 수학여행으로 경주나 여러 박물관을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시에도 누구의 무덤이나 어떤 탑이나 건축물, 유물 등을 봐도 그저 무심하고 담담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로 세계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 보면 첨성대는 그냥 서 있는 게 아니고 불상의 옷 자락 하나도 그냥 흘러내리고 있는 게 아니고 손가락 하나도 아무렇게나 놓인 게 아닌 걸 아는데, 왜 그때에는 몰랐을까.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그때는 아무런 마음도 들지 않았을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뛰어난 예술품을 감상한 뒤 받은 흥분에서 생기는 현상으로 '스탕달 신드롬'이 있다. 예전에 미술관에서 고흐의 미술 작품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리며 뛴 적이 있다. 그것은 그냥 사진이나 도판으로 봤을 때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직접 작품을 마주 대하고 캔버스에 두껍게 덧칠 된 붓질 자국이 선명한 걸 보자 그제야 현실감 있게 다가온 것이다. 여기 있는 게 '진짜' 작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흥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작품에 대한 '흥분'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아무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일까? 그게 고흐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내가 평소에 고흐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런 감정의 동요가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일례로 보면 클림트도 좋아해서 작품을 보러 미술관에 갔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치여 내 마음속의 감정을 느낄 사이가 없었다.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는 그 당시 내 마음의 감정 상태도 중요한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소에 예술 작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일 것이다. 여기서 '좋아하는 마음'은 저절로 그런 마음이 드는 걸 말하는데, 어떤 대상을 보다보면 항상 새롭고 친근해서 '정'이 드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이 책은 '평소에' 한국 예술 작품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다리를 놓아준다. 할머니가 손자를 무릎에 눕히고 가만가만히 해주던 옛날 얘기처럼. 여기에다 여러 유물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진 도판까지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많이 소외되었던 가야와 발해의 유물을 얘기하고 있는 점도 좋았다. 단지 도굴당하거나 다른 나라 땅이 돼서 유물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운 점도 있지만, 그만큼 연구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각 장마다 우리가 일본에 어떤 영향을 주어 어떤 문화가 꽃 피우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점도 의의 있었다. 우리가 중국이나 다른 먼 나라에서 영향을 받고 더 높은 수준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듯이 그러한 영향 관계를 나름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여기서 좋았던 점은 책 뒤에 불교와 관련된 부록이 짧게 실려 있다는 점이었다. 불교에서 여러 보살의 의미와 불상의 수인에 대한 상징성에 대한 내용까지 간단하게 나와 있는데, 삼국시대의 여러 불상의 모습과 비교해서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저자가 하나의 장에 백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점이 반가웠다. 고구려다운 웅장한 기상도 멋지고 신라의 화려한 금속공예도 멋지기는 하지만, 유물이 많이 없는 우아한 백제의 문화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고분이 쉽게 도굴당하기는 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백제금동대향로'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 작은 뚜껑에 얼마나 많은 조각이 있고 그 뒤에 숨은 곳에는 구멍이 몇 개나 뚫려 있다니, 오늘날의 기술로도 재현하기 힘든 작품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닐 것 같았다. 그 당시 백제의 예술 수준과 기술이 얼마나 차원이 높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한국 미술은 보면 볼수록 아름다웠다. 내 몸에도 그들의 미의식이 조금이나마 담겨있기를 염원했다... 신나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렇다고 술렁술렁 책장이 넘어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여기서 나온 유물들을 직접 마주 대할 날이 왔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올 고려와 조선 시대의 유물에 대한 내용도 기대가 되었다. 

(윽, 아프다... 열심히 쓴 게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려 다시 쓰는 건 역시나 맥이 풀린다ㅠ0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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