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심
고은채 지음 / 답(도서출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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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심>_사랑의 이상과 현실에서 방황



먼저 작가의 이력이 눈에 들어 왔다. 현재 21살, 책 한 권을 내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책은 고등학생일 때 써서 출판사로 보낸 것이라고 하니, 한 권 분량의 책을 고등학생으로 썼다는 점이 대단해 보였다.


이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상의 <날개>를 여자의 입장에서 다시 새롭게 적은 글이다.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글을 다시 적을 때는 장단점이 있다. 익숙해서 편하기도 하지만,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될 위험도 있다. 이 책은 과연 내가 예상 가능할 수준을 뛰어 넘었는지 궁금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은휘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서도 여학교를 다닐 정도로 엘리트이고 자유 연애를 꿈꾸는 부잣집 아가씨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양장을 입고 카페에 나가 커피를 시켜 먹는 낭만적인 시간을 보낸다. 그때 만난 첫사랑이 바로 재우였다. 재우는 고아로 자라나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영국인이 사장으로 있는 신문사에 기자로 일하며 바이런의 영어 시집을 읽는 멋진 남자였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은휘는 자신을 맘에 두고 있던 부잣집 남자인 박동빈을 마다하고 재우와 살림을 차린다. 그렇게 작은 행복 속에서 즐거운 신혼 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재우와 다른 기자들이 일본 경찰에 끌려가 일주일 고문을 당하다 나온다. 행복했던 은휘의 신혼 생활이 처참하게 깨지게 되었다.

재우는 고문의 상처로 앓아 누워 정신을 못 차리고, 은휘가 도움을 청할 대상인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유일한 혈육인 오빠는 모든 재산을 가지고 도망쳐 소식이 끊긴 상태였다. 은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하지만 자신을 써 줄 곳을 마땅히 찾을 수 없었다. 힘들게 겨우 찾은 레스토랑에서 박동빈을 다시 만나게 된다. 박동빈은 돈을 미끼로 그런 은휘를 자기 맘대로 휘두르려고 한다.

은휘는 재우를 사랑해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선택해서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은 현실이었다. 결국 은휘는 재우를 원망하면서 박동빈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유를 원하고 자유 연애를 꿈꾸던 신여성 은휘의 '사랑'은 시들시들 말라 죽어 가게 된다. 바로 사랑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모습인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은휘의 심리와 감정을 1930년대의 옛 문투로 살려 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단어들의 사용이 일반적이지 않아 낯설고 걸리기도 했지만, 그것이 이 책에서는 글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은휘가 신여성인데 반해, 자기 주장이 더 강하고 분명하게 드러내서 상황을 전환시킬 수 있는 주인공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 당시 시대상이 여자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돈이 없어 박동빈에게 휘둘릴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은휘가 조금 더 자기주도적이고 당당했으면 했다. 재우와의 결혼을 선택할 때는 그렇게 결단력 있던 은휘가, 그 이후에는 휘둘리기만 하고 당하기만 했다. 감정적으로 당하고 좌절하고 사랑에 매달리는 은휘가 전혀 새롭지 않았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과 비교해 봐도 수동적이고 대가를 바라게 되는 그 상황들이 답답했다.

연애는 이상이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사랑은 언제나 존재하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형태가 변한다.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 사람의 '생존'에 대한 문제에서는 그 힘이 약해지고 만다. 자신의 삶에 여유가 있어야 사랑도 한다. 언젠가 이 땅에서 '사랑'이 없어질까? 그것도 멀지 않은 미래일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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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
최민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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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_어쨌든 구별 짓기


최근에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보다 더 읽는 시간을 많이 낼 수 없어 아쉽다. 하루 종일 무엇을 하길래 이렇게 하루가 빨리 흘러가 버리는 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낼 수 있다니 다행이긴 하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다시 보고 있는데, 정말 잘 꾸민 것 같다. 동양적, 특히, 한국의 '미'를 여실하게 보여 준 화려한 개막식이었다. 특히나, 요새 추워서 연습하는 데 엄청 힘들었을 것 같다. 그 모든 분들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제6회 ZA 문학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다. 전에 제1회에 상을 받은 작품들을 읽은 적이 있다. 좀비 영화는 몇 번 봤지만 소설로 읽은 적은 없어서 새롭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읽어 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와서 기대하며 읽었다. 게다가 이번 문학상은 공모전에서 처음으로 장편이 당선되었다고 하니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 책 속의 세계 속에 등장하는 인간은 딱 둘로 나뉘게 된다. 바로 좀비 바이러스 '보유자'와 '면역자'이다. 이게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보유자는 좀비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구인제약'에서 만든 약을 시간마다 먹어야 한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 약 하나를 사기 위해서는 정말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보유자는 면역자에 비해서 차별을 받는다. 그리고 면역자들은 흔히 말하는 특권 계급이다. 전 인구의 20%만 존재할 뿐이다. 그 중에서도 돈이 있고 약을 만드는 구인제약 관리자라면 대단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들은 동떨어진 섬에 모여 산다. 그곳에는 모두 확인을 받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면역자들이 사는 북쪽은 국가에서 지원이 많이 돼서 환경이 다르다. 보유자가 사는 남쪽은 갇혀진 구획에서 모여 산다. 그들은 손목에 밴드를 차고 있다. 체내의 좀비 바이러스의 수치를 자동으로 측정해 위험을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쪽과 남쪽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 남쪽에 좀비가 많아질 때마다 한번씩 그 장벽을 폐쇄한다. 좀비들이 자연히 줄어 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보유자인 수진은 어린 딸인 미나를 데리고 힘들게 살아간다. 어느 날 회사에서 잘리고 약을 잘 먹지 못한 미나가 좀비 바이러스 수치가 높아져 죽게 된다. 그리고 미나를 간접적으로 죽게 만든 구인제약 계열사를 운영하는 사장인 석호에게 사과하라고 항의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세영은 좀비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세영은 궁극적으로 좀비를 치료할 약을 만들고 싶지만 상부에서는 쓸데 없는 일을 한다고 싫어한다. 좀비를 치료하면 약을 팔 수 없고, 돈을 못 벌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세영에게는 기자인 미영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어느 날 불법 좀비 게임장에서 나타나 상우의 총을 맞아 죽는다. 세영은 미영이 왜 죽었는지 밝히기 위해 자신이 속해 있는 비밀 조직을 이용한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세영은 수진과 만나게 되어 함께 손을 잡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은 성공할까? 그럼 좀비들이 세계에서 사라질까? 인간만의 세계로 깨끗해질까?


어쨌든... 인간은 무엇이든 '구별 짓기'를 좋아한다. 어디서나 갑과 을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게도 좀비 바이러스가 있고 그것이 발현되기 위해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 약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은 수진이 왜 그렇게 석호를 향해 분노를 쏟아 냈느냐는 것이다. 석호는 이중적인 인물이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수진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다.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추천서도 써주고 나중에 왔을 때는 돈을 건네기도 했다. 그것을 삐딱한 마음으로 모두 마다한 것은 수진 자신이었다. 당장 돈이 없는데 자존심이 무슨 소용일까? 게다가 딸의 목숨이 달린 일이데 말이다. 석호는 태도가 짜증날 수도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말로 한 적은 없었다. 수진은 그런데도 석호에게 모든 감정을 쏟아내 복수하려고 한다. 수진의 그런 감정과 행동들이 짜증 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말을 위한 큰 포석이기는 했지만말이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기는 했다.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이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이다. 뭔가 추리적인 부분도 아쉽게 느껴졌다. 좀비들의 세계라도 인간은 여전히 '너와 나'를 나눈다. 그래야 내가 존재하니까 말이다. 좀비가 되는 것보다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내게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제목인 '창백한 말'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절대 사과하지 않는 기득권들의 '미안'하다는 사과가 아닐지... 책 속의 말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운전을 당하고 마는 트럭일 뿐이다.



*해당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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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다음, 작가의 발견 7인의 작가전
정명섭 지음 / 답(도서출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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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_무너져 내린 부활



오랜만에 서평단을 신청해서 읽은 책이다. 책 표지에 있는 '진실은 무너진 건물 안에 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세화병원이 무너지기 직전 등장 인물들에게 한 통의 메일이 온다. 오늘 세화병원이 오후 4시에 붕괴될 것이니 그 직후에 바로 모이라고 말이다. 여기서 누군가가 '일부러' 병원 건물을 무너뜨린 것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을 붕괴 시킨 것일까 궁금해졌다.


처음에 책에 대한 흥미를 갖고 페이지를 넘겼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추는 표지도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몇 명의 등장 인물들이 자신의 상황에서 세화병원 병원장의 메일을 받거나 병원의 붕괴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붕괴 현장 앞에서 그 인물들은 다시 만난다. 구조대원으로 위장한 그들은 병원장의 안내로 병원에 들어간다. 병원 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이 인물들이 병원의 비밀 공간이 지하로 들어가는 상황이 나오고 있다. 어둠 속에서 뭔가 이상한 것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던 환자의 가족들은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궁금해 한다. 병원장은 단지 가보면 알 수 있을 거라며, 지하에 있는 환자를 구하러 가자고 한다. 그러다 함께 들어간 환자의 가족들의 사연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병원의 무엇을 믿고 목숨이 위험한 가족을 맡길 수 있었을까? 누군가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거나, 혹은 포기하는 심정으로 병원장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맡겼다. 그런데 병원장은 이해할 수 없는 실험을 실시했다고 한다. 죽음 직전에 놓인 환자들을 상대로 '엑토컬쳐' 실험이 시행되었다. 병원장 개인의 어떤 특정한 질환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엑토컬쳐 실험은 부작용이 심했다. 인간의 이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이 많았다.


책에서는 엑토컬쳐 실험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상상이 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어떤 형광색 물질로 인해 인간이 좀비처럼 이성을 잃고 본능을 따르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뒤에서는 그게 어떤 초인적인 능력의 발휘, 즉 초능력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험 내용이 구체적으로 이해되지 않아 글의 내용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 부분이 아쉬웠다.


우리가 흔히 접한 좀비와는 비슷하지만 형광 피를 흘리는 괴물을 어떤 형태로 상상해야 할까? 그 괴물을 물리치는 과정은 잔인하지만 담담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병원장은 결국 자신의 질환을 위해 엑토컬쳐 실험을 실시 했지만 결국 자신도 희생자일 수밖에 없었다. 병원 붕괴에 대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람에 대한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인물들의 심리와 과거 보다는 병원 지하에서 괴물들을 물리치는 상황이 많이 그려지고 있었다. 인물들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만 나와서 아쉽게 느껴졌다. 왜 인물들이 그래야 했는지 절실함이 미비했던 것이다.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엑토컬쳐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괴물을 겨우 물리치려고 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무엇일까?


연변이로 인해 초능력을 가진 무리들이 인간들의 세계를 차지하려고 하는 내용의 영화가 많이 생각났다. 엑토컬쳐 실험체들은 그 병원을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할 수 없이 가둬진 자들의 고통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읽은 서평 책이었기 때문에 많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제부터 재밌는 책을 더 많이 읽고 서평해 보고 싶다. 날씨가 추운만큼 따뜻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오후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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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의 발명 - '엄마'라는 딜레마와 모성애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지음, 이재원 옮김 / 알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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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의 사회학적인 의미 해석

 

 

우리는 항상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아주 밀접한 관계로 생각한다. 그 관계는 너무나 확고해서 세계 어느 곳, 어떤 문화든지 적용되는 생각이다. 모성애를 가진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 그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성애'라는 사고 체계는 소설, 드라마, 영화 등 대부분의 미디어에 의해 하나의 큰 주제가 된다. 그런데 그런 '모성애'가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발명된 것이라니? 이 책은 '모성애'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모성애'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할 사람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나타난 이데올로기라고 보았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보면 '집안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집안일도' 해야하는 슈퍼우먼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은 독일에서 1975년에 출간되었는데, 특히 주부들에게 많이 읽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2001년에 출간되었는데, 한국의 여성 독자들도 바로 '나'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일 부분이 많을 정도로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낙태, 주부우울증, 순결강박증, 여자의 성적 주체성과 해방, 이혼 증가 등의 40년 전 독일의 여성들의 문제가 몇 년 전까지의 한국 여성들의 문제와 닮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문제들까지도 단숨에 뛰어넘어 버린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포세대나 사포세대라는 말이 떠도는 것처럼, 연애나 결혼, 출산을 포기해 버린 시점에서 아이를 키우는 상황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것보다는 먼저 취업과 주거의 문제가 너무나 크다보니, 그저 현재의 삶을 즐기는 정도로 만족하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 따위는 없이 말이다.

 

어쨌든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직장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고 대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핵가족이 되었다. 대가족일 때에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한 아이의 육아나 집안일 등을 서로서로 도우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핵가족이 되면서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 해줄 사람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남자는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집안일과 육아 등을 온전히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슬로건은 '모성은 위대하다'는 관점이었다.

 

부모가, 특히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경우는 특수한 사정이 있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불편하고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모성애'라는 이데올로기가 발명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여자'라는 존재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었다. 나 또한 여자지만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뒷바라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하고 있는데, 이 생각이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학적으로 교육을 받아 온 결과라는 것이다.

 

색다른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아이를 내다 버리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육아는 여성에게만 주어진 의무 사항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수행해야 하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그동안 외벌이를 하면 집안일과 육아를 온전히 여자 혼자서 감당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맞벌이를 해도 대부분의 집안일과 육아는 여성의 몫일 경우가 많은 편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집안일과 육아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워킹맘들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왜 외벌이든 맞벌이든 대부분의 집안일과 육아는 여성의 몫일까? 지금은 예전보다는 함께 집안을 하는 남성이 늘어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집안일은 여성이 해야 하고, 남편은 그것을 '도와준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부부싸움을 하는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집안일 분배 문제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여성들은 결혼을 하지 않거나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면서 직장 생활을 하며 사회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데 자신의 전력을 다한다. 그러면서 남성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는다며 경계심을 가진다. 이렇게 되면서 언제가부터 인터넷에서는 서로의 성을 혐오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여혐과 남혐,,, 이러한 대립은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두려워 졌다.

 

너무나 살기 팍팍하고 힘든 세상 속에서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인 것 같다. 가슴 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친다. 그 분노를 누군가든, 무엇이든,,, 표출하고 싶다. 자신의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아 헤맨다. 나보다 약한 무언가를. 절망과 슬픔, 분노로 인해 썩어 문드러진 가슴,,, 점차 손쓸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희생양을 짓밟는다. 그것이 언젠가 '나'이고, 바로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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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 그람시 산문선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김종법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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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통해 현재를 말하다!

 

 

'무관심'이란 무엇일까? 한때는 사랑의 반댓말이라고 회자될 때가 있었다. 무관심 앞에 어떤 말이 오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것 같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나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무관심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소중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람시는 '무관심'이 정치, 경제 등의 사회참여적인 의미에서의 '무관심'을 논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예로 들면 70~80년 대에는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의식이 꽃을 피웠을 때였다. 그 당시 문화 예술 방면에서도 순수예술이냐, 아니면 참여예술이냐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반인들도 그 당시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도 있었고 아무 관심도 없이 먼 나라의 일로 여기며 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면 군부 독재 무리의 가해자였거나.

 

사회가 바뀌기 위해서는 '변혁'이 필요한데. 그 변혁의 힘은 일반 민중들의 '참여'에서 나오게 된다. 참여를 하기 위해서는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하고, 의식이 깨어 있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바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전제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참여형 정치를 논했던 그람시로서는 '무관심을 증오'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람시의 사상이 담긴 에세이 같은 것이다.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한 자신의 단상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글을 쓴 시기가 유럽의 파시스트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는 시기에 그에 대한 저항의 방향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 가치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시 사회주의를 옹호하던 그람시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게 된다. 자신이 믿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이다.

 

이 책은 1910년 대에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쓴 글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100년이 흐른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에 보내는 일침같은 느낌을 받았다. 미약한 군중들을 지배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정치 방식, 그에 저항하는 깨어있는 자, 하지만 대부분의 민중들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권력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한다. 아니, 관심 조차도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함께 행동해야 한다. 몇 명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 봐도 그것은 더디고 한계가 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개개인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나 다급한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들을 포기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자신의 '삶'까지도 포기할 지경에 이를 경우도 많아졌다.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감정을 자기 스스로 감당하지 못 할 수준에 이르르고 말았다. 그것이 그 현실은 본인의 잘못만 있는 게 아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죄라면 죄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희망'도 가지지 못하게 만든 우리 사회의 현실에 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아무리 돈을 열심히 벌어도,,,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는 삶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삶일 것인가?

 

희망 없는 사회! 더 나빠질 가능성이 너무나 확실한 절망적인 현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앞으로 걸어나가야 할 것인가,,,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다. 그람시는 말한다. "우리 스스로를 바꿀 필요가 있다."라고. 우리가 변해야 우리가 있는 사회가 변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몇 년 안 되어 전혀 다른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으로 무장해야만 한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표현, '외침'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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