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온 위베르 드 지방시 보그 온 시리즈
드루실라 베이퍼스 지음, 이상미 옮김 / 51BOOKS(오일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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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순함의 정수를 추구한 지방시

 

 

<보그>라는 잡지는 여성 패션 잡지로서 1892년 당시 사교계의 명사였던 뉴욕의 컨데나스트에 의해 월간으로 창간되었다. 벌써 120년 이상이 된 잡지로서 패션의 역사가 담긴 역사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보그는 발간되는 지역마다의 특색을 담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백과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프랑스판은 고답적인 취향이 강하고, 미국판은 일반성이 있는 내용에 취중하고, 영국판은 견실하고 수수한 면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부터 두산 잡지에서 발행하고 있다고 하니 패션에 대한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번에 그 잡지에서 패션계의 중요 인물을 집중 탐구하는 <보그 온> 시리즈를 내놓았다. <보그 온> 시리즈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된 인물들은 내가 읽은 위베르 드 지방시 외에도 랄프 로렌, 코코 샤넬,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등이 있었다. 다른 책들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오드리 헵번을 좋아하는 터라 지방시를 읽게 되어 반가웠다. 지방시는 오드리 헵번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녀를 자신의 뮤즈로 기용했는데, 특히,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사브리나> 등의 영화에서 지방시의 정수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처음에 입고 등장하는 드레스는 단순하지만 가장 완벽한 드레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찬사를 받았다.

 

 

 

지방시는 패션계의 미남 귀공자로서 40년에 이르는 활동 기간 동안 패션 뿐만 아니라, 영화 의상, 옷 원단, 모자, 화장품, 향수 등 외에도 무대 배경, 실내 장식 등에도 관심을 보이고 참여를 해왔다. 그에게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를 빼놓을 수 없는데, 지방시는 공공연하게 그를 존경하고 그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면모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다음 사진을 보면 지방시와 발렌시아가의 스타일이 비슷한 것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둘은 개인적으로도 친밀하여 <보그> 잡지를 통해서도 함께 협업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왼쪽이 지방시의 옷이고, 오른쪽이 발렌시아가의 옷이다.

 

 

지방시는 자신의 옷이 유행을 타지 않기를 바랐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역시나 품격을 잃을 것 같지 않은 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을 위해서 비싼 돈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옷이다. 지방시의 옷은 많은 유명 인사들이 즐겨 입었다. 코르셋처럼 몸의 라인에 딱 맞는 옷이 아니라 지방시는 여성들이 옷을 입고 편안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품이 넓으면서도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을 잃지 않는 디자인을 했다. 특히, 오드리 헵번 외에도 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도 지방시를 즐겨입은 유명인사였다. 재클린이 입은 지방시가 그녀의 우아하고 단아한 면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지방시는 다양한 모자를 만들었고 여성 옷감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다음 사진에서 지방시의 화려한 모자와 함께 그의 마지막 켈렉션에서 발표한 옷도 그가 아직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단순하고 우아함의 극치를 추구하는 면모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방시의 옷보다는 그의 향수와 립스틱을 먼저 접했다. 내가 브랜드를 많이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하고 유행을 타지 않고 그러면서도 활동하기에 편안한 스타일이 여성이라면 누구나 선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시의 철학을 읽으면서 향수와 립스틱 외에도 그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를 알게 되니,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역사, 가치관 등에 공감하고 공유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꿈을 좇았다._위베르 드 지방시

 

 

* 네이버 책콩 오일북스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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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 천천히 감상하고 조금씩 행복해지는 한글꽃 동심화
김문태 글.그림 / 라의눈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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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아름다운 재탄생, 동심화

 

'동심화'란 새로운 장르로 멍석 김문태 작가가 탄생시킨 것으로, 한글과 동양화를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나도 동심화 라는 장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한글이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 작품들도 하나같이 미적인 요소가 높아서 보는 눈이 즐거웠다. 그만큼 해외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더 많은 나라에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에게 '동심'이란 무엇일까? 머리말을 통해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동심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고향, 아련한 그리움이며, 진정한 사람다움이다. 세상을 밝고 맑게 바꾸어놓은 순순한 에너지이며, 항상 경이로운 눈으로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기계처럼 바쁘고 꽉 짜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아이들같이 천진한 시선과 옹달샘처럼 깨끗한 마음, 아주 작은 것까지 사랑하는 따뜻한 가슴을 되돌려 주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말)

 

자신의 삶에서 배어나온 철학과 영혼의 깊이에서 우러나온 사랑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작품들은 순수했고 천진난만 했다. 말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의 힘, '언령'이라고 하는데, 언제나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것만큼 한글을 그림으로 그린 작품들에서도 한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카가 처음에 한글을 배울 때, ㄱ,ㄴ,ㄷ 등의 글자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인식하고 그걸 따라 그리며 익혔다. 다른 외국의 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보면서 아이들의 순수함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한글을 너무 공부 수단, 지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 배워야 할 것으로만 인식해 왔던 것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색채도 화려해서 아이들이 봐도 재미있게 느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심화 옆에는 그 단어와 관련된 시, 단편적인 글들도 적혀 있는데, 그 문구들도 좋아서 자꾸 읽어보고 싶었다. 어른에게 힐링이 되는 기분이라 다른 사람에게 책 선물로 주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꽃

 

너의 향기 / 나의 향기 / 우리의 향기로 어우러진다.

 

사람보다 아름다운 꽃은 없고/ 사람보다 가슴 뛰는 약속은 없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 봄이면 다시 피는  꽃처럼 / 우리 그렇게 만나 / 찬란한 한 세상 펼치자꾸나.

 

어느 봄빛 찬란한 오후 / 꽃향기로 진동하는 세상을 꿈꾸며

 

 

 

춤춰라

 

꽃은 향기를 내붐으며 춤을 추고 / 바람은 나뭇잎을 흔들며 춤을 추고 /

새는 허공의 날갯짓으로 춤을 추고 / 아이는 함박 웃음소리로 춤을 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 일 년 365일이 춤을 추고 / 온 우주가 춤을 추고 있다.

 

우리도 춤추며 살지 않을 / 까닭이 없다.

 

 

* 네이버 책좋사 라의눈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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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여행자
한지혜 지음 / 민음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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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만남, 그리고 깨달음

 

길은 무수한 사람들의 여정을 담고 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의 발자국을 찍어 놓는다. 그 길을 걷는 또 다른 사람이 우리가 남겨 놓은 발자취를 발견할 것이다. 누군가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그 추억은 쌓이고 쌓여 이야기, 즉 역사가 되어갈 것이다.

 

 

<축제 여행자>의 저자 한지혜는 유명 배우와 동명이인이다. 하지만 그녀도 한국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적이 있다. 지금은 새로운 꿈을 위해 뉴욕 영화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참으로 자유롭고 무엇에든 도전을 하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몸집(?)-외국인들이 보기에-을 가진 그녀 속에 어떻게 그런 열정이 담겨져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게도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사고가 전해져서 흐뭇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추천한 여행지는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이탈리아의 유로 초콜릿 페스티벌,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스페인의 라 토마티나, 일본의 삿포로 눈꽃 축제, 미국의 뉴욕 타임스퀘어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외에도 베개 싸움 데이나 핼러윈 퍼레이드를 짧게 소개해 주고 있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그것은 칠십 대에 홀로 사하라 사막을 걷는 멋진 프랑스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니콜이라고 하는데, 노을을 보겠다면 길고 긴 여운을 남기는 미소를 남기고 사하라 사막을 터벅터벅 걸어갔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아니 더 젊었을 적에라도 모든 여행 경비를 대준다고 하면서 가라고 해도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데에는 많은 고민을 하고 두려워 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칠십 대에 그 뜨거운 사막을 걸어갈 수 있다니... 내가 그 나이가 돼서 니콜의 열정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우리나라의 지산 페스티벌과 유사하다.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이 역사적으로 더 오래되었고 세계적인 규모에 더 유명한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는 점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글래스턴베리는 닷새 동안 열리고 공연은 나흘 동안 밤낮없이 이어져서 전 세계적으노 13만 5000명이 참가한다. 이 축제는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소규모로 열린 행사를 계기로 지금까지 40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축제에서 놀라운 점은 이 축제가 한 농장에서 열리는데, 그 농장을 소유한 마이클 엘비스가 매년을 축제를 열기 위해 애쓰면서 농장을 관리한다고 한다. 게다가 농장 관리를 위해 5년 마다 한번씩을 축제를 쉰다고 한다. 2012년에 축제가 없었다고 하니, 2017년까지는 축제가 있을 예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까지 해서 앞으로 3년이 남은 걸까? 그리고 이 축제에서 열린 자선 행사 기금과 수익금의 일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쓰인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10만 명 이상이 모인 축제의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 부분에 상당한 공감이 되었다. 먼저 농장의 진흙이 너무 많아서 무릎까지 오는 두꺼운 장화를 신지 않으면 돌아다니기 힘들다는 것, 5일간 씻을 생각은 거의 못한 다는 것, 화장실 문제도 만만치 않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을 뛰어 넘어 많은 사람들이 노래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유명 연예인들이 깜짝 게스트로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설레임이 있다는 것, 그 외에 그곳에 있어야지만 알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이 축제의 묘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즐거움일 것이다.

 

 

어느 책에서 독일 맥주가 무척 맛있다는 글을 보고서, 언젠가는 독일에 가서 직접 그 맥주 맛을 보리라 다짐했었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독일의 옥토버페스트에 대한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그 축제에 갔을 때는 필히 그곳의 전통적인 의상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그 전통 의상이 가장 싼 것도 60유로(8만 6천원)라는 게 맘에 걸렸다. 하지만 텐트가 몇 십 개씩 되고 그 각각의 텐트마다 고유한 분위기가 있다는 말에 돌아다니며 구경할 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술에 취한 사람들의 행태가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것 같아서 밤에 다닐 때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뉴멕시코 열기구 축제는 정말 열기구가 이렇게 다양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마차, 고양이, 스파이더맨, 벌, 광대, 자명종, 젖소, 다스베이더 등 그 종류가 무척 많았다. 열기구를 직접 탈 수도 잇는데, 가격이 350~500달러로 조금 비싼 편이라고 한다. 아쉽지만 수없이 많은 열기구가 하늘에 수를 놓는 장관을 보는 걸로 만족해야 할 듯 싶었다. 어쨌든 그 큰 열기구가 멀리서 보니 풍선처럼 보여서 신기했다. 그 장관을 내 눈으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은 세계 3대 축제 중의 하나로 너무나 유명한 삼바 축제이다. 얼마 전에 브라질 월드컵이 열러 더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리우 카니발 자체보다는 저자가 브라질 유스호텔에서 만났다는 프랑스 청년들과의 인연이 더 반갑게 느껴졌다. 이 책에서 간간이 한국인을 만나거나 한국에 호감을 보이는 외국인을 만나는데, 이곳에서 프랑스 청년들은 우리나라의 태권도를 배우면서 친해져서 여행도 함께 오게 됐다고 한다. 그들은 태권도도 검은 띠이고 그에 따라 한국말도 조금씩은 할 수 있어서 반갑게 느껴졌다. 저자가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서 만난 한국 태극기도 한국에 있다가 떠난 영국인이 달아놓은 것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라 토마티나 축제도 유명한 축제이지만, 저자가 직접 체험한 것을 얘기해 줘서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특히, 물안경이 만드시 필요하고 신발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끈으로 묶어야 한다거나, 여자들의 옷을 찢는 전통(?)도 있다며 필히 위에 티를 세 겹 이상 입으라고 조언해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며 세계 곳곳의 셀레임과 즐거움을 맛 보았다. 나도 당장 가방 하나 메고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이 책의 저자는 혼자하는 여행에서도 즐거워 하며 혼자만의 외로움을 이겨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거기에다가 유스호텔이나 공동 생활 등으로 많은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하는 고통과 불편함을 즐거움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과 고통을 통해 세계 곳곳의 소소한 즐거움과 친구의 소중함을 느끼고 색다른 추억을 쌓아가는 사람이었다. 이 속에는 저자는 깨달았다. 무수한 희로애락과 그에 따른 번민과 고통,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는 수많은 인내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든 여행자는 각자의 추억을 만들며 여행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곳에서 자기만의 추억을 만든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각자의 추억은 모두 다르다. 마치 지하철의 환승역처럼 우린 서로의 길이 겹치는 곳에 있지만 어디서든 서로 다른 추억을 품고 떠난다.(120p)

 

인생도 꿈도 그 끝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 길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의심한다. 이 길에 끝이 있을까? 이 길이 내게 맞는 길일까? 누구는 더 빨리, 또 누구는 좀 더 먼 길로 돌아간다는 차이가 있긴 해도 어느 길이든 분명 끝은 있다. 이틀 밤을 달려 겨우 사하라 사막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비로소 모든 길에는 끝이 있다는 걸 배웠다.(138p)

 

어찌 보면 초콜릿의 맛은 사랑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초콜릿 맛처럼 사랑에는 달콤함과 쓴맛도 있다. 쓴맛을 보고 나면 그 맛이 싫어 다시는 맛보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지만, 달콤함을 잊지 못해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결국 그 뒤에 숨은 쓴맛을 또 맛보고 만다. 그렇다고 사랑이 언제나 쓴맛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영원한 달콤함을 찾아 헤매는 것은 그래서일까.(186p)

 

 

* 알라딘 민음인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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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시선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 에세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권오룡 옮김 / 열화당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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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연에 깊이 박힌 시선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은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하다. 그의 사진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을 보자마자 바로 사고 싶었다. 이 책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여러 단편적인 글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에 대한 철학과 사진을 찍었던 때의 추억, 사진과 함께 했던 동료들과의 추억을 얘기한 것들을 모으고 모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전체적으로 어떤 맥락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저 사진 자체에 대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개인적 입장과 사상, 사진을 찍었던 중국과 러시아와 쿠바에 대한 추억,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동료로 지냈던 사람들에 대한 개인사적인 친분에 대한 글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도 얼마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상과 감정과 추억들을 아는 것은 그의 사진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은 그 사진 한 장만으로도 많은 얘기를 전해주는 시적인 감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개인사적인 감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보다 보편적인, 사진작가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짧은 단편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프랑스어로 자필로 쓴 글을 보면 프랑스에 직접 가서 그의 사진 에세이를 사오고 싶었다. 몇 장의 사진과 사진작가 본인이 직접 쓴 글, 그리고 짧은 글들, 그 사이에 흐르는 여백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꾸 읽어보고 책 사이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에 내 짧은 생각도 담아보고 싶었다. 자주 갖고 다녀서 겉표지에 때가 탄다면 이 책에 더 애정이 생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두고 묵히면 묵힐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와인처럼. 그 그윽한 향기가 퍼지는 것 같았다. 

덧붙여서, <영혼의 시선>에 쿠바와 관련된 짧은 일화가 나오는데, 거기에서 체 게바라를 찍은 사진과 그와 관련된 얘기가 있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개인 감상처럼 사진 속의 체 게바라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어서 그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왜 그의 죽음 이후에 쿠바와 미국 등에서 컵이나 티셔츠를 이용한 상업적인 이미지 메이킹 소재가 되었는지 말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사진작가 중에서 좋아하고 존경하는 최민식의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사진 에세이와 함께 놓고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최민식의 사진은 인물 사진이 많고 특히 클로즈업한 사진들에 그 특색이 있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와인의 향기라면 최민식은 시장 바닥에서 떠도는 바다의 짠 내음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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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깨진 청자를 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 깨진 청자를 품다 - 자유와 욕망의 갈림길, 청자 가마터 기행
이기영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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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파리 속 역사의 한 자락 

가마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허허벌판이다. 이렇다 할 표식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기 일쑤다. 지나갔던 곳을 되돌아온 적도 많았다. 빙글빙글 아무리 돌아도 눈에 띄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이정표가 없기는 삶도 마찬가지다. (13쪽)

책을 읽으면서 한 가닥 기대를 품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빛깔이 나오면서 어떻게 그러한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 흐름을 되짚어 보거나 그 기술이 도자기를 굽는데 얼마나 정교하고 세련된 것인지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고려청자의 그 아름다운 빛깔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자신을 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읽어도 읽어도 빈 공간의 가마터와 깨진 도자기 그릇만 나올 뿐이었다. 어? 하다가 책이 끝나 버리고 말았으니 그 허황된 기대감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깨닫고 말았다. 

이 책의 지은이는 전국 방방곳곳을 혼자 돌아다니며 흔적이 거의 사라진 가마터를 찾아다녔다. 사람도 거의 없는 곳을 물어물어 겨우 찾은 곳은 사금파리 조각들이 몇 개 발견될 뿐, 옛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가마터를 지키고 그릇을 구해내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지은이는 청자 가마터를 기행하면서 생겼던 여러 에피소드들을 수필 형식으로 편하게 얘기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은이 자신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주저하며 고민했던 순간의 고통을 드러내었다. 몇 십 년을 붙잡고 있던 전공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우리의 '도자기'를 공부한 걸 보면 지은이는 스스로를 나약하고 부족하다고 평가하지만 그것보다 더 용기 있고 신념이 굳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선택' 후에도 자괴감을 느끼는 것 같아 지은이가 안타깝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자신이 하는 공부에 즐거움을 찾는 그가 자유로워 보였다.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가마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0년 만에 장보고의 푸른 꿈은 사그라지고 말지만 그 흔적은 점차 한반도로 퍼져나가며 통일신라 말 고려 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부를 갖춘 지방 호족의 권력욕에 대한 발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 가마터는 주인의 삶에 영향을 받다가도 다른 힘 있는 사람에게 넘어가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대부분은 현재 역사적인 사실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서 가마터 자체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떤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했는지는 추측일 뿐이지만 그 당시를 나타내는 퍼즐 조각을 맞추다 보면 지은이의 상상처럼 그럴 법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의 그 씁쓸한 뒤끝이라니... 도자기를 만드느라 북적거렸을 텐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허허 벌판이나 누군가의 묘지, 집터, 뒷마당, 골프장 등등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곳에서 만든 그릇들은 다 어디로 가고 사금파리 조각들만이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덧없는 야망의 끝자락과 무상한 세월의 스산함이 뒤섞인 현실을 보았다. (11쪽)' 라고 말한 지은이의 말처럼 허무한 우리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무리 화려하게 번성했던 것이라도 유구한 세월 속에서는 역사의 한 자락도 차지하지 못 한다고. 인간의 삶도 그 속에서 스러지고 스러져 사라질 뿐인 것이다. 

처음에 책을 읽기 힘들었던 것은 지은이가 가마를 찾던 개인적인 에피소드, 가마터가 만들어진 배경을 역사적인 사실과 함께 지은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까 추측하여 상상하는 부분, 그리고 그 가마터에서 발견된 사금파리 조각들을 보고 무엇을 만들고 기술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얘기하는 부분 등이 이어지는 게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가마터를 기행 하는 여행자의 입장에서 가벼운 수필 글인지, 가마터의 유례를 추측해 보는 역사학자의 입장이나 청자 조각을 보고 도자기의 역사를 추적하는 고고학자의 입장에서 쓴 전문적인 예술 서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수필 글에서는 가벼우면서 지은이 자신의 개인적인 삶이나 고뇌, 인생을 논하다가 갑자기 역사적인 내용으로 넘어갔다가 또 다시 유물의 얘기를 하는데, 어느 글에 초점을 맞춰 자세를 잡아야 하는 지 나 혼자 동분서주 머리를 굴렸다. 읽다보면 이 책의 방식에 곧 적응하고 말지만 말이다. 그리고 도자기 조각을 얘기하는 데, 그 용어를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으면 각 가마터에서 나온 청자 조각의 특징을 조금 더 쉽게 구분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어쨌든 아무도 찾지 않는 빈 가마터를 순례하며 우리나라 도자기의 흔적을 외롭게 되짚어온 지은이의 열정이 고마웠다. 우리에게 청자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책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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